"남북이 유치한 국제스포츠대회 계기에 체육교류 재개하자"
[인터뷰] 17년만에 국가보안법 굴레 벗은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 이승현 기자
- 입력 2025.01.31 03:09
- 수정 2025.01.31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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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고양시 원마운트 소재 남북체육교류협회 사무실에서 최근 17년만에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 항소심 무죄판결을 맏은 김경성 이사장을 만나 깊은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1/212680_106569_5351.jpg)
지난 18일 뜻밖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2025년 1월 16일 오후 2시 수원지방법원 603호실...국가보안법 위반혐의 항소심 무죄"
2014년 10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대응으로 벌어진 경기도 연천군 사격전, 2015년 8월 DMZ 목함지뢰 폭발사건의 와중에도 평양에서 남북유소년축구대회를 진행했던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전해 온 소식이다.
"무죄선고가 내려지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사법부에 깊이 감사드렸다. 가슴으로 몇번이고 고개 숙였다"고 한 문구에선 그의 회한이 고스란이 전해진다.
김 이사장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은 그가 40대 후반이던 2008년 7월 4일, MBC 사장을 지낸 최문순 국회의원(전 강원도지사)과 함께 '경평대항축구전' 평양 개최에 합의한 '조선일보-노동신문 금강산 실무회의'를 주선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1929년 제1회 경평대항축구전을 주최했던 [조선일보]는 승인배 문화사업단장과 최정태 위원을 금강산에 보내 북측 [노동신문] 관계자들과 접촉해 경평대항축구전을 양사 주최로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46년 3월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경평축구'를 평양에서 재개하면서 개막식에는 [조선일보] 사장의 방북을 추진한다는 합의도 이루어졌다.(김경성 저 『불굴의 스포츠 아리랑』 188~194p)
당시 김 이사장은 2006년 5월 처음으로 북측과 남북스포츠 정기교류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이후 2008년까지 3년간 매년 봄·가을에 여섯번 방북 경기를 했고, 같은 기간 북측 선수들을 남측에 4번 초청해 총 10차례의 정기교류를 할 만큼 북측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성사 가능한 일이었다.
이 합의는 일주일 뒤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인해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국내 정보기관은 이때부터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대북 정책기조가 달라지자 그를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북측과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던 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고 이에 응하지 않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를 진행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국가보안법 사찰과 수사, 기소와 재판이 17년을 끌어오다 찬양·고무(제7조)의 굴레를 마침내 벗게 된 것.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원마운트 사무실에서 만난 김 이사장은 "무죄! 정권의 성격에 따라 대북정책은 들쭉날쭉이었다. 어떤 정권에서는 평화상을 주고 어떤 정권에서는 수사와 기소를 했다. 저와 같이 남북교류협력과정에 성과를 냈던 사람들은 특히 국가보안법이 옭아매는 피해를 견디며 살아야만 했다. 이런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그는 '남북관계는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보이는 너머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으며 체득한 사람이다.
지난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한반도에서 개최가 확정된 메이저 국제스포츠대회를 통한 남북교류협력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2027년 충청권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2028년 평양 아시아탁구 선수권대회를 남북교류 재개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구상이다.
대회 준비과정에서부터 남과 북이 국제사회와 함께 3각 대화를 하면 지금과 같은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곧 한반도평화교류위원회도 출범시키려고 한다.
모처럼 홀가분한 심정으로 진솔하고 과감하게 털어놓은 그의 격정적인 토로가 반갑다.
17년만의 국가보안법 무죄..."이제 자신있게 일할 수 있겠다"
![지난 2018년 8월 18일 국제유소년축구대회 결승전이 끝난 후 김일성경기장에 모인 4만여 관중들이 '우리는 하나', '통일아리랑' 등 반주에 맞추어 대합창으로 선수들을 격려했다.[통일뉴스 자료사진]](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1/212680_106574_2047.jpg)
□ 통일뉴스 :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고생하다가 17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2심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건데, 먼저 그 과정을 설명해 주시죠.
■ 김경성 이사장 : 2007년 8월부터 9월까지 우리나라에서 17살 미만 월드컵(2007 FIFA U-17 World Cup) 이 열렸어요. 제가 그때 북측 선수단 단장 자격으로 선수들을 데리고 서울로 들어왔거든요. 그때가 노무현 정부때였는데, 국가정보원에서는 그 점을 의아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각각 두번씩 우리 유소년 선수들을 데리고 평양에 올라갔고, 2007년엔 북측 선수들을 4번 서울로 데려왔어요. 그러니까 2006~2008년까지 북에서 6번, 남쪽에서 4번, 총 10차례 경기를 했죠. 전부 다 2006년 5월에 체결한 남북체육교류 계약에 따라서 진행이 된 거예요.
특히 2007년 3월 한미연합훈련 기간에 북측 17살 미만 청소년축구대표팀이 한달동안 제주도 등에서 전지훈련을 하면서 거꾸로 남북간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게 됐거든요.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뒤 미국은 물론 중국까지 북한을 제재하고,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되던 때니까 군사적 긴장도 높고 남북관계가 경색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북한 청소년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남쪽에서 한달간 전지훈련을 하고 한 여름에 경기를 치렀으니까,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10.4공동선언을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아무튼 북한 선수단이 내려올 때는 항상 정보기관이 상황실을 운영하면서 통일부,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곳에서 실무자들이 나와서 편의제공을 하기도 합니다.
어떨때는 서로 모르는 척하고 넘어갈 때도 있지만, 그 사람들하고 부딪힐 때가 있죠. 그런게 조금씩 문제가 됐던 것 같아요. 이제 와서 뭐 그런 걸 다 공개할 수는 없죠.
□ 많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셔야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 북한 여자축구가 피파(FIFA, 국제축구연맹) 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게 2006년 8~9월에 러시아에서 열린 'FIFA U-20 여자 월드컵'이었어요. 그게 아시아 국가에서 처음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 거예요.
그때 1차 핵실험으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이 심각했던 북한은 굉장히 고무됐던 것 같아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 여자축구가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공로를 세웠다.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경성 교장선생을 위해 뭘 준비해라'고 해서 2007년도에 저한테 17살 미만 월드컵 단장을 맡긴 거예요.
월드컵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제가 운영하던 중국 쿤밍(昆明) 소재 홍타스포츠센터에서 훈련을 받았던 애들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17살 미만 월드컵 출전 선수 선발에도 일부는 제가 관여하기도 했어요.
북에서는 저한테 평양시 동평양 지역 송신역에서 얼마 안떨어진 곳, 지금은 신시가지가 들어선 곳에 35만 평방미터의 부지를 50년 사용허가 조건으로 주기도 했고, '김경성체육인초대소'를 지어 주는 등 많은 특전을 주었어요.
2007, 2008년에 이런 일들이 막 생기니까, 정보기관에서 2007년 8월부터는 슬슬 통제를 하기 시작하더라구요.
2007 FIFA U-17 월드컵 북측 선수단장으로 내려왔는데, 우선 저는 성적을 내야 되잖아요.
그때 8월 기온이 35~40도를 오르내릴 정도였거든요. 아시아에서는 한국도, 일본도 다 떨어지고 북한만 16강에 올라갔어요. 16강전 상대는 우승 후보인 스페인이었어요
저로서는 아시아에서 북한팀만 올라왔기 때문에 8강까지 올라가면 북 당국으로부터 좀 더 인정을 받아서 앞으로 남북교류에도 더 크게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선수들 컨디션을 관리하는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정보기관에서는 북 선수들이 공원에 가는 것도 너무 심하게 통제를 하고 방안에만 처박아 두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북) 선수들이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바깥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조금 부딪히게 된 거죠.
새벽에 문을 따고 들어오는 일이 있어서 항의했더니 사과 대신 위협을 가하기도 해서 '철수 기자회견'을 언급하며 따지기도 했어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친분이 생겨서 2008년 금강산관광 중단 전까지는 정보기관의 호의와 협조를 받기도 했어요.
□ 그 정도의 갈등은 있을 수 있고, 이후 협조가 이어졌다면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을텐데요.
■ 2008년 7월 4일 조선일보와 노동신문이 금강산에서 실무회의를 하게 되는데요. 최문순 국회의원(전 강원도지사)과 제가 조선일보와 노동신문의 만남을 주선했는데, 제가 그때 운전을 했고 최 의원이 옆 좌석에 앉았어요. 뒤에는 조선일보 승인배 문화사업단장과 최정태 위원이 탔구요.
남북 양쪽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두 신문이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줄이고 우호적인 보도를 한다면 남북이 동질감을 회복하고 남북교류에도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됐죠.
1, 2회 경평대항축구전을 조선일보가 주최했었는데, 1946년 서울대회를 끝으로 중단됐거든요. 그 경평축구를 평양에서 다시 열고 경기장에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조선일보 사장이 인터뷰를 한 뒤 그 내용을 가감없이 조선일보에 보도하기로 기본적인 합의를 했어요. 굉장히 만족스러운 합의였죠.
그런데 7월 11일에 금강산관광객이 피격되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합의는 없었던 일로 되어 버렸죠. 당시 정보기관에서 저에게 편의를 보장하던 북측 고위급 인사를 거론하며 대단히 부적절한 요구를 해왔습니다. 제가 그 요구를 단칼에 거절한 것이 빌미가 된 거죠.
'나름대로는 남북체육 교류에서 독보적인 대한민국의 자산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나한테 그런 일을 하도록 해서 그게 국가에 무슨 실익이 되겠느냐', '나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도 북한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남북 관계를 개선시키고 또 남북 관계의 위기마다 축구를 통해서 남북대화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해 온 사람이다'라고 정면으로 반박을 하니까 '이 놈은 사상이 이상하다'고 해서 불법사찰을 시작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2008년 연말부터 불법사찰이 시작된 건데, 나중에 기소당했을 때 보니 그 내용만 1m 50cm 정도 높이로 쌓여 있었어요.
그는 불법사찰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중국 등지에서는 드러내놓고 사진 촬영을 하거나 차량 미행을 하고, 지인들과 포천시, 경기도 등 관련 공무원들에게는 노골적으로 사찰 사실을 알리는 식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해왔다고 말했다.
또 2014년 수사로 전환된 후 2015년에 자택과 사무실을 동시에 압수수색을 한 이후에는 직원과 거래처, 가족까지 조사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8차례 걸쳐 매번 20시간씩 조사를 했다고 했다.
"여기서 꼭 말하고 싶은 건 남북교류의 실적이 많은 사람들은 그 국가보안법이라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그는 "정권의 성격에 따라 들쑥날쑥한 대북정책 때문에 우리처럼 남북교류 성과가 많은 사람들은 늘 불안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일을 과연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힘겹게 말을 꺼내고는 "이번에 무죄가 나온 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 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이정표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자신의 무죄를 계기로 '남북교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분명히 세워서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 혐의를 적용하는 일은 없애거나 완화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 2008년 조선일보-노동신문 사이에 경평축구부활을 위한 금강산 실무회의가 당시 보도가 됐었나요?
■ 당시 비공개로 하기로 했어요. 조선일보는 주 독자층이 보수층인데,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도 없이 덜컥 보도했다가 역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노동신문도 마찬가지이고. 양측 모두 비공개 진행으로 가기로 했던 거죠.
![지난 2018년 8월 10일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 참가한 남측 방북단이 평양 양각도호텔에 도착해 기념촬영을 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1/212680_106571_129.jpg)
□ 사찰이 있었다는 기간에도 이사장께서는 계속 축구교류를 하시지 않았나요?
■ 물론 약 7년정도의 사찰기간에도 저는 남북교류를 한반도 중단하지 않았지만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모두 중단됐어요. 제가 인천공항을 드나들때마다 매번 조사를 받게 됐는데요. 그러면서 불법 사찰의 강도도 아주 심해졌어요.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에는 스포츠교류를 모두 불허해서 중국으로 장소를 옮겨서 2013년까지 '인천평화컵'이라는 명칭으로 축구대회를 네번 했어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게 된 것도 이런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텐데, 당시 박근혜 정부가 남북대화 재개로 연결시키지는 않았죠.
그해 10월 10일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삼아 연천 일대에서 남북간 사격전이 벌어지면서 최악의 군사적 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에 당초 연천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1회 국제유소년축구대회-아리스포츠컵 대회도 무산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국 해냈잖아요.
다들 북한 선수단이 99%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11월에 김경성이 데리고 오니까 또 난리가 난거죠.
정보기관에서도 '저 놈은 이제 수사로 전환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탈북자를 회유해서 근거서류를 만들어서는 제 사무실과 집을 압수수색하고, 참 난리도 아니었어요.
□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혐의외에 다른 법적 제약은 없었나요?
■ 제일 심각하게 말하고 싶은 게 뭐냐 하면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로 전환이 되니까 바로 출국금지가 되는 것 같더군요.
중국이나 평양에서 축구대회를 할 때 여권이 있어야 되잖아요. 여권을 받으려면 경기북부경찰청, 담당 검사, 판사한테 다 허가를 받아야 되니까 시간이 많이 걸려요.
구청에 여권을 받으러가면 주민등록번호를 딱 넣어보고는 국가보안법 관련 기소 사실이 확인되니까 담당공무원들이 쑥덕거려요. 그런 말못할 불편함이 있죠.
압수수색할때는 집에 새벽부터 들이닥쳐서는 수사관 20~30명이 파란 박스를 들고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물건을 다 싣고 가니까 그걸 본 주변에서 저한테 접근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결국 집도 이사하고 아이는 놀림받으니 유학 보내고, 저는 2014년 경기도 공무원할 때인데 사직서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죠.
불법 사찰과 동시에 저를 위험인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예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서 굉장히 일하기가 힘들었어요. 대부분 사람들이 남북체육교류협회에 등을 지는 거예요.
2007년 노무현 정부 때까지만 해도 남북체육교류협회 후원회원이 500명이 넘어서 연간 후원금도 10억원이 넘기도 했는데, 그 뒤로는 한명도 안남았어요.
내가 누구한테 피해를 준 건 하나도 없는데, 자기네한테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법 사찰을 시작한 것 아니에요. 1m도 훨씬 넘는 사찰 자료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국민 예산을 썼겠어요.
□ 국가 상대 민사소송도 생각하고 계신가요?
■ 과연 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또 무슨 한풀이를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예요.
전 15년동안 불법사찰, 압수수색, 수사, 기소, 재판을 받는 압박속에서도 한번도 남북교류를 중단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제 무죄를 받았잖아요.
남북체육교류협회를 떠났던 사람들이 '아, 이제 괜찮구나. 새롭게 힘을 합해서 이제 새로운 남북교류 시대를 맞이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일에 대해서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면 안된다는 차원에서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찰은 법에 정한 요건에 따라 정해진 기간안에 끝내야 하고, 압수수색과 조사도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반복적으로 할 수 없도록 하며, 기소도 기한을 정해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피의자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27 하계 유니버시아드·2028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는 절호의 기회
![김 이사장은 2027년 충청권에서 열리는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2028년 평양에서 열리는 아시아 탁구선수권대회를 남북협력사업의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1/212680_106572_134.jpg)
□ 원래 역량을 발휘했던 남북체육교류 분야에 대한 새로운 구상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제 트럼프 시대에 들어와서 북미 정상회담이 재개될텐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가 고민거리이겠죠.
러시아가 북한에 손을 벌렸는데, 북한은 이 과정에서 과거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로 경제5개년계획의 기틀이 될만한 자금을 확보한 것과 유사한 경제적 효과를 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ICBM 개발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마지막 고리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보구요.
지금 북한은 49년만에 2028년 평양 아시아탁구선수권 대회 유치를 확정했어요. 정상국가로 나아가겠다는 거예요.
핵을 가졌고, 핵을 실어나를 장거리미사일을 완성시켰어요. 극초음속미사일도 개발했고. 그 다음에 돈도 어느 정도 있어요. 그러면 이제 국제대회 유치를 통해서 교통 인프라 개선 같은 곳에 눈을 돌리겠죠.
우리는 2027년도 충청권에서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가 확정됐어요.
우리나라에서 2027년에 열리는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2028년 평양에서 열리는 아시아 탁구선수권대회라는 거의 같은 시기에 열리는 메이저 국제스포츠대회를 남북협력사업의 계기로 삼아야 할 절호의 기회라고 보죠.
□ 남북이 몇년 이내 유치를 확정한 메이저 국제스포츠대회를 계기로 어떤 협력모델이 가능할까요?
■ 먼저, 2027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는 대전, 세종, 충남·북 지역에서 2027년 8월 1~12일까지 150개국 대학생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에요.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무주 동계), 2003년(대구 하계), 2015년(광주 하계)에 이어 4번째 개최됩니다. 아시는대로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에는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했어요.
2028 평양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는 북한이 지난 1979년 평양 탁구세계선수권대회 이후 49년만에 유치를 확정한 메이저 국제대회에요. 내년에는 아시아 주니어 탁구선수권대회도 열립니다.
제가 갖고 있는 계획은 2027년과 2028년 남북 지역에서 개최되는 국제 스포츠대회에 아프리카 등 취약 국가에 대한 지원사업 프로그램을 접목시켜서 남북 교류와 대화의 길을 열자는 거에요.
충청권에서 서해안 길로 올라간다면 개성, 동해안 길을 열면 금강산을 경유해서 평양이나 원산으로 가는 육로가 있을 수 있고, 그 다음 항구와 공항을 통해 남북을 오갈 수 있는 하늘·바다·땅을 이용한 교통로를 모두 열자는 거죠.
이 길을 연다면 앞으로 남쪽에서 북한지역을 관광하는 데 있어서나 향후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으로 보아서나 남북에 엄청난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대회기간 중 취약 국가 지원 사업에 쓰는, 남북 지역을 왕래하는 지원 비용은 경제적 효과에 비해서는 아주 미미한 거에요.
저는 이미 2024 강원청소년동계올림픽 준비위원장 자격으로 이같은 구상을 가지고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의 지지도 약속받은 바 있고, 아프리카 대륙 IOC 총회에도 참석해 계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실제 실행도 된 일이구요. (관련기사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918)
북한 입장에서도 받아 들이기가 좋은 게 남한 사람들이 오는 것도 아니고 북에 우호적이거나 관계개선의 필요가 있는 아프리카 선수들과 관광객들이 들어오는 거니까 마다하지는 않겠죠.
![지난 2024년 강원도 동계청소년올림픽 지원프로그램으로 평창을 방문한 아프리카 선수들. [사진-아프리카대륙 IOC 발간물]](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1/212680_106573_1530.jpg)
□ 가능하기만 하다면 우리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죠.
■ 당연히 그렇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이제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우리도 북한과 교류하는 흐름으로 가야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입니다.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미국과도 보조를 맞춰야 할테니까요.
이런 시기에 잘못하다가는 우리만 도태됩니다. 지금 북한이 받을 수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야겠죠.
저는 지금 서울과 평양이 할 수 있는 일은 정치회담이 아니라 동질성을 확대하는 스포츠교류와 경제교류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교류를 통해서 경제교류를 재개하고, 경제교류가 확대되면 사이가 나빠지더라도도 그것 때문에 관계를 끊을 수 없잖아요.
비핵화나 대북제재 해제를 따지는 일은 남과 북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실익도 없이 군사적 긴장만 높아지니까. 특히 논란은 있지만 트럼프가 북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해 버린 상황에서 우리가 그 앞에 비핵화 목표를 가로막아 놓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정부간 대화만 추진할 일이 아니라 스포츠 교류같은 분야에서는 민간에 넘겨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또 남북교류는 진보정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요. 보수를 싸악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성과로 가져가니까 보수정권은 들어서자마자 확 뒤집어 버려요. 괜히 나같은 사람은 보수정권에서 앙갚음을 당하게 되는 거에요.
남북교류는 보수정권에서 추진해도 더 후퇴하지 않습니다. 만약 진보정권이 남북교류를 한다면 조금 더디더라도 보수의 동의를 얻어서 추진해야 일관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남북교류가 활발해져야 북한의 변화도 오는 것이고, 북의 변화가 남북한 경제를 키우고 그렇게 성장한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거예요.
북한은 압박해서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보수는 남북교류야말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진보는 남북교류를 보수와 나눠야 한다는 대승적 차원을 견지해야 합니다.
□ 한반도평화교류위원회를 준비하고 계신다구요.
■ 남북체육교류협회 조직을 중심으로 곧 한반도평화교류위원회를 만들 계획입니다. 대표는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가 하시고, 제가 부대표를 맡을 거예요.
남북 평화교류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모실 계획입니다.
거기서 2027·2028 국제스포츠대회 교류사업을 추진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무죄도 나왔고해서 자신있게 출발할 겁니다. 국내 정치상황도 많이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대선공약으로도 받아준다면 여야 구분없이 도울 생각도 있어요.
그래서 다음 정권에는 누가 됐든 이 사업을 반드시 같이 추진해서 한반도의 평화를 꼭 가져오겠다는 각오를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초 ‘1120 2024 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기쁨을 만끽하는 북한 여자축구 선수들. [사진-FIFA 홈페이지 갈무리]](https://cdn.tongilnews.com/news/photo/202501/212680_106570_823.png)
□ 북측 17살, 20살 미만 여자축구가 세계 1위의 경기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보다 잘 아는 분야이어서 특별한 계획도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만.
■ 제가 제일 크게 기여한 게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북한의 아홉살부터 성인까지 훈련지원을 한 거잖아요.
북한 여자 축구의 경우, 아홉살 때는 남자애들하고 똑같이 10m 왕복달리기를 하는데, 그때는 여자애들이 키도 더 크고 기록도 더 좋아요. 경기를 해도 남자애들하고 대등하게 합니다.
고학년이 되면 남녀 차이가 나긴 하는데, 여자애들이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많이 하니까 인프라는 여자축구가 더 좋아요. 훈련량도 어마어마합니다.
아홉살짜리가 스스로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줄넘기도 300개씩하고 알아서 뜁니다.
'저 언니들 보면서 나도 열심히 해서 대표가 돼 가지고 꼭 우승을 해서 우리 부모님 잘 모시겠다'는 편지를 쓴단 말이에요.
그런 각오를 가지고 훈련을 하다 보니까 15살짜리 여자 중학생들이 서울시청 여자축구단이나 프로축구단 선수들을 다 이겨요.
우리쪽 관계자들이 '나이를 속인 거 아니냐'고 하지만, 실제 북쪽 여자축구선수들은 기술이나 체력면에서 남자선수 못지 않아요.
그런데다가 우승경험이 많으니까 인프라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커지죠.
또 하나는 요즘 여자축구가 미국이나 중국이 잘하다가 유럽이나 남미로 넘어갔거든요. 그런데 북한 여자축구선수들은 체격이 상대적으로 작잖아요.
대신 빠르고 짦은 패스 위주의 공간활용으로 남미와 유럽의 축구를 이겨낸 거에요.
□ 당분간 여자축구의 추세는 크게 변동없겠네요.
■ 북한은 늘 그런 축구를 추구해왔어요. 유럽과 남미선수들은 몸이 커서 회전반경도 크고 순발력은 작은 애들보다는 떨어진단 말이에요.
따다닥 뛰는 선수와 성큼성큼 뛰는 선수가 비교가 되죠. 제공권 장악이나 롱패스, 운동장을 넓게 활용하는 측면에서 보면 유럽이나 남미선수들의 드리볼이 강력하지만 지금은 드리볼 축구가 아니라 패스가 중요한 속도축구이거든요.
빈 공간으로 뛰고 그 공간으로 차주고 그러는 건데, 드리볼로 하면 몇분씩 걸리던 것이 골키퍼가 상대편까지 공을 보내는데 2, 3초면 된단 말이에요.
체격이 작고 순발력이 좋은 선수들이 공간 침투능력이 있다 보니까 이번에 북한팀 우승에도 역할을 했다고 봐요. 실제 훈련과정에서도 그렇게 해 왔고.
□ 미국과 북한 여자축구팀이 하는 친선경기 같은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 2008년 11월 뉴질랜드 17살 미만 월드컵에서 북한이 우승을 했는데, 애들이 쿤밍에서 3년간 훈련을 받은 선수들이었어요.
그때 미국을 결승전에서 2 대 1로 꺾고 우승을 했는데, 북한은 중국을 이기는 것 보다는 일본이나 미국을 이기는 걸 어마어마하게 큰 성과로 보더라고.
그런 경기를 트럼프가 추진할 것 같지는 않고, 우리가 추진했을 때 반대하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분쟁을 겪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남북 또는 이란, 이스라엘 같은 나라들을 서로 초청해서 평화대회를 여는 것도 괜찮겠지만 실현은 쉽지 않겠죠.
미국에는 전국유소년축구대회 우승팀이 시애틀에 있어요. 예전에 남북 유소년축구선수들이 시애틀에 가서 멕시코나 캐나다 등 주변국 팀과 함께 국제유소년축구대회를 추진한 적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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