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좌파일 수 없다"는 문형배와 내란세력의 망동

 

"좌편향? 나는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 찍은 사람"

"학술단체 우리법연구회…이념 놓고 얘기 안 해"

4대강 사업 이명박 정부 손들어준 판결 등 입증

"판사는 기본적으로 우파이지, 좌파가 될 수 없어"

인사청문회 땐 "동성혼 반대" "이석기 사면 자제"

헌법재판관 돼서도 이상민·이정섭 탄핵 기각 의견

'진보·좌파' '민주당 편' 도식적 틀로 규정 안 돼

오히려 이재명에 타격주기도…'친분' 허구성 명백

'문형배 죽이기' 여권 총공세, 극우 폭동 또 부추겨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심판' 원칙대로

김호경 에디터

조선일보보다 더 극단적인 월간조선은 이명박 정권 시절인 지난 2009년 9월호에 <[정밀분석] 법원 內 판사 모임 '우리법연구회'>라는 장문의 기획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매체의 성격대로 '우리법연구회'가 좌편향 판사들의 사조직 아니냐는 의심을 깔고 모임 구성원의 명단과 성향 등을 집중 해부한 보도였는데, 당시 우리법연구회 회장이던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와의 인터뷰도 담고 있다.

"나는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던 사람"이라며 월간조선 기자의 추궁성 질문과 몰아가기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문 판사의 단호한 언설은 현재 국민의힘과 극우 진영의 '문형배 죽이기'가 얼마나 모략으로 가득한지와 관련해 여러 시사점을 준다. 주요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명박 정권 때 월간조선 인터뷰 "한나라당 대선 후보 찍어"

"우리법연구회는 재판 잘하기 위한 헌법 중심의 학술단체"

-우리법연구회를 정의한다면.

"학술연구단체입니다. 우리 판사들이 헌법에 대해 연구가 부족합니다. 헌법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헌법을 연구하자는 것이죠. 남들이 별로 연구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판사가 꼭 알아야 할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지난번에 난민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법원 내에 이런 내용의 논문이 거의 없더군요. 통일 이후의 사법부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연구 대상입니다. 남북이 하나가 되면, 양쪽의 법제가 서로 달라 복잡한 문제가 전개될 겁니다. 이런 문제들을 사전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이죠. 독일 통일 사례를 보고 우리가 원용할 수 있는 부분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우리법연구회를 두고 '법원 내 사조직'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헌법을 잘 봐야 합니다. 우리 헌법은 잘돼 있어요. 그런데 헌법에 대해 판사들이 연구를 잘 안 해요. 예를 들어, 경제와 관련해 공공성에 기초해 일정 부분을 제한하도록 돼 있어요. 복지 제도도 마찬가지고요. 아무튼 그런 부분을 연구하는 겁니다. 우리 모임을 좌파라고 한다면 우리 헌법을 좌파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원으로 있는 일부 판사의 판결 내용을 보고 우리법연구회 전체를 좌파 성향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시환 대법관이 송두율 사건에서 내놓은 의견이 사례가 될 수 있겠군요.

"전임 이회창 대법관이 낸 소수의견을 본 적이 있습니까? 박시환 대법관과 이회창 대법관의 의견이 다르다고 보지 않습니다. 원정화 간첩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첩 혐의로 구속된 그의 계부에 대해 재판을 맡았던 신모(신용석) 부장판사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 부장판사가 좌파입니까. 저는 어떤 판결을 가지고 좌파적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이정렬 판사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좌파라고 하던데,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연구해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종교적 신념에 기초해 병역을 거부하는 것을 허용하는 입법례와 허용하지 않는 입법 사례를 따져 봐야지요. 가령 독일의 경우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있는데 그런 것을 먼저 정의하고 좌파냐, 우파냐를 따져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법연구회 회원들의 이념적 성향이 진보적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합니까.

"그것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진보라는 개념이 좌파와 구별되지 않고 사용되고 있어요. 저는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던 사람입니다. 제가 이 모임의 회장입니다. 우리 모임의 회원 성향은 다양합니다."

-우리법연구회가 일부 판사들의 사모임은 맞습니까.

"법원 내 민사판례연구회라는 게 있는데 그게 사조직입니까? 법원 내에는 이런 단체들이 많습니다. 민사판례연구회는 판사와 교수들이 모인 학술연구단체입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곳이 바로 민사판례연구회입니다. 대법원장도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입니다. 그 단체가 사조직이라면 모르겠지만…. 사모임의 정의가 판사들의 친목 도모를 위한 단체라면 우리법연구회는 사모임이 아닙니다. 우리법연구회는 학술연구단체입니다."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니 우리법연구회의 '박시환 정신' '한기택 정신'을 강조하고 있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박시환 대법관은 우리법연구회의 이름을 만든 분입니다. '외국법만 연구하지 말고, 우리법 좀 연구하자. 외국의 금과옥조 같은 이론만 소개하지 말고 좀 떨어지지만 우리의 법을 우리 실정에 맞게 해석하자'는 취지입니다. 그의 정신을 본받자는 뜻에서 박시환 정신을 강조한 겁니다. 고인이 되신 한기택 부장판사의 좌우명은 '목숨 걸고 재판하자'입니다. '재판을 잘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거죠. 재판을 잘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우리법연구회의 목적입니다."

-신영철 대법관의 문제에 대해 우리법연구회 회원들이 사퇴를 주장했습니다.

"법원 내부 게시판에 30~40건의 글이 올라왔는데 그중 우리 회원이 쓴 글은 30%에 불과해요. 70%는 비회원입니다. 비회원들이 왜, 무슨 이유로 글을 올렸는지 분석해 봐야 해요. 회원과 비회원이 쓴 글의 내용에 질적인 차이가 있다면, 우리법연구회가 조직적으로 뭐를 했다, 안 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올라온 글을 보면 회원과 비회원을 구분할 수 없어요. 판사회의에서 논의된 결과를 봐도 큰 틀에서 비슷합니다."

-요즘 세미나에서 토론된 주제는 무엇입니까.

"사이버모욕죄와 판사 임용 제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사이버모욕죄 조항을 신설하는 데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판사 임용 제도에 대해서는 연수원을 졸업하고 바로 판사가 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변호사 경험을 쌓은 후 판사로 임관되는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월간조선 2009년 9월호에 실린 '[정밀분석] 법원 內 판사 모임 우리법연구회' 기사. 월간조선 홈페이지 갈무리

정작 '사법부 하나회' 민사판례연구회 막강 위세엔 눈감은 언론

우리법연구회가 신영철 대법관 사퇴 몰아? 역대 최대 '사법 파동'

월간조선 인터뷰 당시 문형배 판사가 언급했던 민사판례연구회도 법원 내 학술단체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법연구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세와 네트워크가 강력한 보수 엘리트 판사 모임으로서 1977년 창립 이래 법원 주요 요직을 장악해 흔히 '사법부 하나회' '법조계 최대 사조직' '전관예우의 통로'로 지칭되곤 했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이었고 양창수 대법관은 이 모임 회장이었으며 박근혜 정권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도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었다.

그러나 수구보수 진영은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판사들 성향에 대해서는 일절 문제 삼지 않고 우리법연구회 또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대상으로만 마녀사냥을 일삼아왔다. 이들 단체의 어떤 활동이 심각한 폐해라는 아무런 실체적 근거도 없었다. 이명박 정권 때 촛불집회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해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 배당'을 했던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대법관이 되자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 일부가 사퇴를 주장했다고 하지만, 해당 사안은 전국 17개 법원 500여 명에 달하는 법관들이 연쇄 판사회의를 통해 들고일어났을 만큼 역대 최대 규모의 '사법 파동'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 및 월간조선 같은 수구 매체들은 신 대법관을 싸고돌며 다수 판사의 행동을 싸잡아 '좌파' '인민재판식 집단 몰매' '사법부 파괴 공작'이라고 맹비난했다.

우리법연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한 법조인 또한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우리법연구회의 성격에 대해 "재판을 잘하는 방법을 같이 모색해 보는 모임"이라고 전했다. 기자가 "우리법연구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좌파 성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고 유도성 질문을 하자 이 법조인은 이렇게 답했다.

"판사 집단은 굉장히 보수적이며 좌우를 따진다면 우파 집단입니다. 우파와 중도우파만 있지요. 우리법연구회는 판사 집단 내에서 약간 진보 성향을 보여 왼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전체로 볼 때는 중간에서 오른쪽에 있는 분들입니다. 중도우파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법연구회를 좌파 집단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부정확하다고 봅니다."

판사들이 기본적으로 사회 평균보다 훨씬 보수적이며 우파 집단이라는 설명은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저서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묘사했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법원에서 '여러 필터링'을 거친 분들이어서 보수적인 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은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온 사람들'인데, 원래 보수적인 법원에서 그 바늘구멍을 뚫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보수적인 사람임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문형배 판사는 우리법연구회가 학술단체로서 '외국법만 연구하지 말고 우리법 좀 연구하자'는 취지 아래 헌법을 기둥 삼아 재판을 잘하기 위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던 사실까지 밝혔다. "우리법연구회는 이념을 놓고 얘기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모든 토론의 출발점은 '판사'라는 점이다. 우리의 세미나에 직접 참여해 본다면 우리에 대한 시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그 뒤에도 맹목적인 낙인찍기는 계속됐다.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오른쪽)가 9일 오후 속개된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여상규 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제출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19.4.9. 연합뉴스

"본의 아니게 '좌파'란 딱지가 붙었는데 판사는 기본적으로 우파"

27년 법관 생활에 본인 재산 불과 4억…"정치적 이념 추구 안 해"

그는 부산지법 행정2부 부장판사를 맡고 있던 2010년 12월 환경단체를 비롯한 진보 진영 시민사회의 간절했던 바람과는 달리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관련한 '낙동강 살리기' 하천공사 시행계획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홍수 예방과 수자원 확보라는 사업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이를 위한 사업 수단의 유용성이 인정된다"면서 원고 1819명이 참여한 국민소송단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것이다. 그때도 문 판사는 "판사는 사실과 법률, 결론이라는 프로세스를 따를 뿐"이라며 "정해진 법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평가를 받으면 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좌파'라는 딱지가 붙었는데 판사는 기본적으로 '우파'지, 좌파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판사는 2019년 4월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 자리에 섰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7대 기준'을 모두 통과한 최초 사례였고, 특히 국회에 제출한 재산 공개 내역은 총액이 6억 70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부친 재산인 2억 7000여만 원을 제외하면 문 판사 부부의 재산은 부산 양정동 소재 아파트(3억 800만 원)를 포함해 4억 원이 채 되지 않았다. 기존 헌법재판관들 재산 평균은 20억 원대였다.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헌법재판관이 되면 가장 적은 재산을 가진 재판관이 되겠다. 27년간 법관을 했는데 너무 과소한 거 아닌가?"라고 의아해하자 그는 도리어 '반성'의 뜻을 나타냈다.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최근 통계를 봤는데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재산이 한 3억 원 남짓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재산은 한 4억 조금 못 되는데요. (백 의원이 '신고하신 6억 7000이 아니고요?'라고 캐묻자) 그건 아버님 재산이 (포함된 것이)고요. 제 재산은 4억이 안 됩니다. 평균 재산을 좀 넘어선 거 같아서 제가 좀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에 백 의원은 기가 찬 듯 멋쩍게 웃으며 "청문회를 하는 저희들이 오히려 좀 죄송한 느낌"이라고 했고, 뒤이어 박지원 의원도 질의를 하면서 "거듭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고 했다. 문 판사는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전관예우를 비판하면서 "퇴임 후 영리 목적의 변호사 개업은 하지 않겠다"고도 다짐했으며,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묻는 질문에는 '겸손함'을 꼽았다. 도덕성 문제를 꼬투리 잡을 게 없자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은 또 이념 성향을 물고 늘어졌다. 이에 문 판사는 모두발언과 답변 등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스스로 나태와 독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부산판례연구회나 우리법연구회 등의 학술단체에 가입했을 뿐, 결코 정치적 이념을 추구해 단체에 가입한 적은 없습니다. 1996년 (우리법연구회) 가입 당시 편향적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직전 회장이 사법연수원 17기였는데, 18기 중에서 회장을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여러 번 제의를 받고 맡게 된 것입니다. 회장 재임 시절 회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원 명단을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논문을 내고 공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학술단체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는 법관으로 재직하는 기간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였다' 그렇게 감히 자부합니다. 오로지 증거에 의해서 사실을 인정하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법리를 도출한 다음 당해 사건에 적용하였을 뿐 그 외의 것은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는 지적을 받은 판결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임명권자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상태에서 공정한 재판을 하는 데에 저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점은 이 자리를 빌려 명확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실제로 문형배 판사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한 헌법 제103조를 벗어나 '진보·좌파' 진영에 유리한 판결만 내렸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식의 규정은 악의적이거나 무지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일 뿐이다. 앞서 거론한 대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진보·좌파' 진영을 낙담케 했던 그는 인사청문회 때도 "동성결혼에 반대한다" "군대 내 동성애 처벌은 합헌이다"라는 견해를 드러냈다. 종교인 과세에 대해서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돼야 하지만 종교활동은 보장돼야 한다"며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고,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사면은 자제돼야 한다"고 사실상 반대했으며,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신뢰한다"고 확언했다. 오히려 '보수·우파' 진영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입장 개진이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법재판관 미임명 관련 권한쟁의심판 1차 변론에 참석해 있다. 2025.1.22 [공동취재] 연합뉴스

헌재 들어와서도 민주당에 불리한 결정…이재명에 직접 타격 주기도

내란 사태 이전엔 '친분설' '불공정' 시비로 윤 정권 표적 된 바 없어

헌법재판관이 돼서도 그는 여러 헌법소원과 탄핵심판 사건에서 진보·좌파와 민주당 편을 들기는커녕 보수·우파와 윤석열 정권이 쾌재를 부를 의견을 여러 차례 표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시켰던 12·16 부동산 대책을 두고 헌법재판소는 "주택시장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문형배 재판관은 과잉금지원칙 위반을 들어 반대 의견을 냈다.

10·29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물어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사전 예방 조치 의무, 사후 재난 대응, 국회에서의 사후 발언 등 모든 쟁점에서 탄핵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사건을 기각하고 이 장관의 직무 복귀 결정을 내릴 때 문형배 재판관은 이에 동참해 윤석열 정부 측 손을 들어줬다. 야권이 강력 반발했음은 물론이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대한민국이 무정부 상태임을 공식적으로 확인시켜준 결정"이라며 절망 속에 울부짖었다.

역시 민주당 주도로 국회가 의결한 이정섭 검사 탄핵 소추 사건에서도 문 재판관은 진보 진영의 기대와는 반대로 갔다. 이 검사가 처남에 대한 경찰의 마약 수사를 무마해주고, 서울 강남구 도곡동 거주지에서 딸의 진학을 이유로 인근 아파트로 위장 전입을 했으며, 남의 전과 기록을 무단으로 조회하고, 호화 리조트에서 재벌기업 임원으로부터 각종 접대를 받는가 하면, 선후배 검사들에게 골프장 편의를 봐주는 등 숱한 비위를 저지른 구체적 사실과 정황이 제기됐는데도 파면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국회는 이 검사가 과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죄 형사재판에서 증인신문 전 증인 최모 씨를 면담해 무죄 선고의 빌미를 줬으므로 국가공무원법·검찰청법 등을 위반했다고 탄핵소추 사유에 포함시켰지만 문 재판관은 "이 검사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헌법상 공익 실현 의무를 위반한 것은 맞지만 사전 면담이 파면할 정도의 행위는 아니다"라는 별개 의견을 내는 데 그쳤다.

이처럼 문 재판관의 판단은 도식적으로 '진보·좌파'라는 틀로 규정 짓기 힘들고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법관의 직무상 의무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도 없다. 그래서 내란 사태 이전까지는 문 재판관이 특별히 윤석열 정권의 표적으로 부각되는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친분 때문에 불공정한 판결을 내린다는 따위의 흑색선전이 횡행하지도 않았고 여론에 먹힐 리도 없었다.

일례로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던 시절 벌어진 경기도와 남양주시의 첨예했던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 문 재판관은 "경기도가 남양주시 권한을 침해했다"고 인정해 이 대표를 정치적으로 큰 낭패에 빠뜨린 바 있다. 경기도는 남양주시가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지 않자 2021년 4월 종합감사를 위한 자치사무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이에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지방자치 권한 침해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는데, 2022년 8월 헌재 결정 때 문 재판관이 결과적으로 조 시장 주장을 지지하면서 5대 4로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헌재 측이 최근 환기한 대로 문 재판관이 개인적 사정에 의해 헌법 재판 심리에 영향을 받을 사실이 결코 없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이재명 대표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측 주장을 전하는 언론 기사들. 포털 다음 화면 갈무리

윤석열은 과동기를 헌재소장 임명…권성동 동기는 '주심' 정형식

악랄 선동에도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심판" 꼿꼿이 고수해야

문 재판관은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이 2024년 10월 퇴임하면서 공석이 된 소장의 직무를 대행하는 중이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가 본격화하자 내란 수괴와 그 잔당 세력의 '헌재 흔들기'는 최우선적으로 '문형배 죽이기'에 집중되고 있다. 여론 선동 및 헌재 내부 갈라치기를 겨냥해 가히 총공세를 벌이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은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이재명 대표와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라서 공정성이 의심스럽다고 호들갑을 떨고 상당수 친윤 언론도 맞장구를 치고 있지만, 그런 소리는 윤 대통령이 자신의 서울 법대 79학번 동기인 이종석 헌법재판관을 소장으로 지명했을 때 했어야 최소한의 설득력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헌재에 입성해 윤 대통령이 임명한 이종석 소장이 낙태죄에 대한 시대착오적 합헌 의견 제시와 안동완 검사 탄핵 기각 등 시종일관 수구보수적 노선을 견지할 때 국민의힘은 박수를 보냈을 뿐 공정성 문제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비슷한 성향의 김형두·정형식·김복형·조한창 재판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노골적인 가짜뉴스 전파에 대해 헌재 측이 "명백히 사실에 반한다. 문형배 권한대행은 이재명 대표의 모친상에 문상을 한 적이 없으며 조의금을 낸 사실조차 없다" "문 권한대행은 공정성을 의심받을만한 어떤 언동도 한 적이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지만 권 원내대표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그 뻔뻔한 낯빛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헌법재판관의 '친분'이 제척 사유가 된다면 권 원내대표 자신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과 사법연수원 17기 동기인데도 그 어처구니없는 부조리에는 눈을 감고 오직 '문형배 축출'에만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급기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단은 문 대행을 직권남용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헌재 앞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열릴 때마다 극렬 시위대가 몰려와 문 대행을 향해 적나라한 욕설을 내뱉고 "탄핵을 인용하면 절대 가만히 못 있는다" "윤석열을 파면하는 판사(재판관)들은 그날로 죽음"이라고 외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등 극우보수 성향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위협이 난무한다. 여권과 언론의 물어뜯기에 문 대행도 견디기 어려웠는지 X(트위터) 계정을 삭제했다. 이 같은 내란 동조 세력의 악랄한 공격을 지켜보는 대다수 국민은 초조한 가운데 단 한 가지 소망을 품고 문 대행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법치주의를 능멸하고 폭동을 부추기는 숱한 망동에도 불구하고 문 대행이 지금까지 그래왔듯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원칙을 꼿꼿이 실행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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