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적은 윤석열이다

 [대통령의 배신 ②] 부정하고 또 부정하지만... 점점 꼬이는 변명

25.01.25 11:37l최종 업데이트 25.01.25 11:37l 박소희(sost)

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라는 선서를 한다. 그러나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공화국을 공격했다. <오마이뉴스>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드러나는 그의 '배신'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 기사는 그 두번째다.[편집자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이 윤석열을 부정하고 있다.

모두가 기억하는 문제의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TV 화면에 나와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파렴치한 종북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국회, 사실상 야권을 "범죄자"라 했고, "종북반국가세력"이라고 칭하며 "반드시 척결하겠다"는 말까지 남겼다. '야권 등 반대세력=반국가세력'이란 인식은 이후 윤 대통령 탄핵심판 법률대리인단의 변론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반국가세력이 내란죄로 몰아서 대통령까지 구속"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측은 '새로운 질서'를 꿈꾼 일이 없다고 부정한다. 법률대리인단은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포고령 1호 1항 '국회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대목을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한 게 아니라 반국가적 활동을 못하게 막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21일 탄핵심판 3차 변론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가결을 막기 위해 국회에 군을 투입했다는 혐의에 대해 "아까 (CCTV 영상을 보면) 군인들이 본청사에 진입했는데 직원들이 저항하니까 스스로 나오지 않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군인들은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국회에 투입됐다가, 현장에서 '이상하다'고 감지했을 뿐이다. '경고성 계엄이니 살살 움직이라'는 대통령의 지시 같은 것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1월의 윤석열'은 '12월 12일의 윤석열'도 부정한다. 계엄 선포 후 두번째 대국민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그동안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전면에 내세웠다. 각종 보고를 받았다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도 남겼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탄핵심판에선 "선거가 너무 부정이어서 믿을 수 없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팩트를 확인하는 차원이었다는 걸로 이해해달라"며 그 의미를 축소했다.

12월 3일의 윤, 12월 12일의 윤, 그리고 1월의 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계엄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윤 대통령의 말은 자백에 가깝다.

윤 대통령은 헌재에서 "국회 독재가 망국적 위기 상황의 주범이란 차원에서 질서유지, 상징성 측면에서 국회에 군을 투입"한 것이라며 군 투입 지시 자체를 인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계엄 선포의 전제조건은 명백하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2024년 12월 3일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소수든 대규모든 국회와 선관위에 군을 투입하는 일 자체가 헌법 위반이다.

최측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가장 먼저 증인으로 불러 다른 관련자들의 진술을 뒤엎으려던 작전도 실패했다. 23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직접 주고받은 질의-응답이다.

- 윤석열 대통령 "그때 제가 (장관이) 써온 계엄 담화문하고 포고령을 보고, 포고령에 사실 법적으로 검토해서 손댈 것은 많지만, 어차피 이 계엄이라는 게 길어야 하루 이상 유지되기도 어렵고, 그러니까 국가비상상황, 위기상황이 국회 독재에 의해서 초래됐으니, 포고령이 추상적이긴 하지만, 상위 법규에 위배되고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집행가능성이 없지만, 그냥 놔두자고 한 것 기억나는가."

- 김용현 전 장관 "대통령이 평상시보다 꼼꼼하게 안 보시는 걸 느끼면서… 평상시 업무하는 스타일이 항상 법전을 찾는다. 좀 이상하면 법전부터 가까이 찾는데, 분명히 그리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찾으시더라."

- 윤 "어쨌든 실현가능성이 집행가능성이 없는데, 상징성이 있으니까 (제가) 그냥 놔두자고 한 걸로 기억하고. 또 '전공의 이걸 왜 집어넣었냐'라고 웃으면서 얘기하니까 '계도한다는 측면에서 넣었다'고 해서 저도 웃으면서 그냥 뒀는데 기억나는가."

- 김 "네. 지금 말씀하시니까 기억난다."

마치 짜고치는 듯한 상황은 별개로 하고, 윤 대통령은 이 신문에서 ▲포고령 작성을 김 전 장관이 주도했고 ▲어차피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킬 것이기 때문에 진지한 의도로 포고령을 만들고 선포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대화는 ▲윤 대통령이 포고령의 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파업 전공의 의료현장 복귀' 같은 세부 내용 역시 명확하게 알고 있었음을 보여줄 뿐이다.

자백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2024년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무장한 계엄군들이 투입되고 있다. ⓒ 유성호

자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계엄 전) 물어봤다. '계엄 선포하고 군 이동을 지시하면 얼마나 걸리나' (그러자 김용현이) '그럼 1시간 이상 걸리는데, (국회의원 중) 들어갈 사람은 들어갈 것'(이라더라)"라고 발언했다. 또 국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이를 대체할 국가비상입법기구를 세우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야당이) 민생입법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서 긴급재정명령 같은 걸 제가 대수비(대통령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얘기하고, (김용현 전) 장관도 아마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모두 윤 대통령이 국가 안보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계엄을 생각해왔고, 사전 점검도 하는 등 전체 과정을 주도했음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설령 윤 대통령이 국가비상입법기구 설립이 아니라 긴급재정명령을 검토했어도 위헌이다. 헌법 76조는 대통령이 ①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이거나 국가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일 때 ②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거나 국회 개회가 불가능할 때만 긴급재정명령 발동이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12월 3일은 이런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기는커녕, 국회는 신속히 열려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윤 대통령 쪽은 줄곧 김 전 장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질문을 던졌고, '충신'은 포고령 작성부터 소위 '최상목 문건'까지 전부 본인 주도라며 호응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포고령을 작성한 문서프로그램은 무엇인가'란 간단한 질문조차 방어하지 못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종이를 받았다'던 최 부총리 국회 발언을 뒤엎지도 못했다. 심지어 후속조치 문건의 추가 존재를 인정했고, '계엄이 빨리 끝날 것을 예상했다'는 윤 대통령 주장과 달리 일정 기간 유지되는 상황을 전제하고 준비했다고 증언했다.

우두머리답지 않은 우두머리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윤 대통령의 '내란우두머리'답지 않은 면모는 다른 하수인들의 증언을 부정하는 장면에서도 재연된다. 당사자의 직접 증언과 검찰 공소장 등에 따르면, 그는 12월 4일 0시 20분쯤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국회)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라'고, 0시 30분~1시경에는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 곽 전 사령관은 22일 국회 청문회에서도 "(의원들을 끌어내란 대통령 지시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명확히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윤갑근 변호사를 통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계엄업무를 수행하거나 질서유지 업무를 수행한 장관, 사령관 등 장군들, 경찰청장 등이 구속된 것을 너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는 21일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의 관련 질문에 "(곽종근, 이진우 사령관에게 지시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이런 지시를 안 했는데, 부하들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지시를 두고 거짓말할 이유가 뭔가"라는 국회 쪽 반문에 시원하게 해소해줄 만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약 12년 전인 2013년 10월, 윤석열 검사는 상부의 부당한 수사 개입을 폭로하며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시 자체가 위법한데 어떻게 따르냐"고도 했다. 2025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은 위헌적이고 위법한 지시를 내린 당사자가 됐을 뿐 아니라, 자신을 따른 부하들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윤석열은 윤석열의 적(敵)이 되어버렸다.

[대통령의 배신 ①] '중국·민주당·부정선거'...음모론으로 뒤덮인 '윤석열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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