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참사·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이곳에서 희망 찾았다

 [소셜 코리아] 송경용 신부 특별기고 : 참된 사랑 얻기 위해선 관심·책임·지식·존경 필요

25.01.02 06:59최종 업데이트 25.01.02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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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현장 부근에 하얀 국화가 놓여 있다.연합뉴스

새해에는 '사랑'이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집단·계층 간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사랑이 흘러넘치기를 바란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국내에서는 끔찍한 내란이 진행 중이고, 세월호와 이태원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179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가 일어난 시점에 사랑을 논한다는 것이 한가하고 낭만적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사랑을 더욱 강하게 소망하기로 했다. 국민 모두를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짙은 절망, 깊은 우울증으로 빠뜨려버리는 이 모든 사건이 결국은 '사랑의 부재와 결핍, 집착과 왜곡' 때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1956년에 발간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사랑에도 필요한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은 훈련으로 길러질 수 있다고 했다. 가장 안정되고 편안한 어머니의 자궁, 조건 없는 사랑인 어머니의 품에서 분리된 순간부터 인간은 불안과 공포, 고독을 느낀다. 인간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나, 사랑도 상품이라는 교환가치로 거래되는 물신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필연적으로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온전한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사랑하는 기술'이 훈련되지 않은 인간은 유아적 애착, 집착, 약물 의존, 성적 쾌락 탐닉 등의 일탈, 자신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투사하면서 주체성이 사라져 버리는 우상숭배 등 가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불안과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결국은 실패하거나 파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의 기술'은 강력한 철학적, 실천적 처방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함께하고 있다.연합뉴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은 개인의 실존과 남녀 간, 혹은 모든 인간관계에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물신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과 인간 존엄성의 파괴를 치료할 수 있는 강력한 철학적, 실천적 처방전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나도, 상대방도 인간으로서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회복하면서 안정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참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네 개의 핵심 요소는 계층, 젠더, 동서, 세대, 이념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관심(Care)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까지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면, 진실로 사회적 약자를 사랑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면, 남과 북이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지속 가능한 지구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약자가 당하고 있는 소외와 불평등, 불공정에 대해, 지구 생태계를 망치고 있는 반 생태적 산업과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은 나와 현실을 분리해서 그저 바라보거나 평론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보내는 것이고, 손길을 내밀어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서 해답을 찾기 위한 실천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 이념, 지역, 세대, 계층 간에 드러나는 차이와 다름을 형식으로 구별(distinction)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나와 상대가 지닌 내면의 역사성과 철학, 가치의 차이와 다름을 식별(discernment)하면서 그 차이와 다름을 보듬어 안는(Care)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이러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둘째, 책임(Responsibility)이다. 책임은 주어진 관계와 조건, 상황, 지위와 직책에 따라 그 내용과 범위가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대상과 상대의 필요와 욕구, 행위와 결과에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끊임없는 갈등과 크고 작은 참사를 겪으면서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문제가 쌓여만 가는 이유는 바로 책임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대국과 문화 강국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위상에 걸맞지 않은 후진적인 사건과 사고가 빈발하고 있는데, 이는 특별히 정치와 관료집단,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권력을 가진 집단의 무책임과 책임에 대한 무감각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믿고 있다.

책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표현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반응(Response)하는 '능력'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책임은 결과에 대한 '태도'로서 책임의 한 부분일 뿐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문제의 뿌리까지 치고 들어가 끝내 해결책을 찾아내는, 내가 책임져야 할 일과 사람의 욕구와 필요가 충족될 때까지 반응하는 적극적인 태도와 실천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행동이 없는 사랑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고 하듯이!

나와 진영, 경계와 경계 넘어서는 지식 원해

2024년 1월 10일 우크라이나 도네츠쿠주 쿠라호베 지역의 한 유치원.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난장판이 된 교실에 노란 꽃이 보인다.셔터스톡

셋째, 지식(Knowledge)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리라'라는 말이 있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잘 알고 싶어지고 '관심(Care)'과 '책임(Responsibility)'도 높아지게 되어있다.

'관심과 책임'이 있는 사랑이 사람을 움직이듯이,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 반응하는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을 말함이다. 더 정의롭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벽돌 한 장이라도 움직이고 얹을 수 있고, 갈등과 폭력, 전쟁을 조장하는 불의를 끊어낼 수 있으며,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지식이다.

예수와 부처, 수운과 해월 모두 인류를 변화시킨 지식의 원천으로서 '말씀(경전)'을 남겼다. 그들의 말씀은 그냥 활자로 된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말씀', 즉 이 땅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땅에 쓰는 말'이기 때문에 세대와 세대를 넘고, 문명과 문명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게 됐다.

지금 우리는 나와 진영을 넘어서는, 경계와 경계를 넘어서는(Beyond boundaries) 지식을 원하고 있다. 분열과 대립, 반 생명의 물신적 행태가 일상화하고 문화가 되어버린 끔찍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 다름과 차이를 감싸안고 넘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로서의 지식이 필요하다. 분열과 대립이라는 척박한 땅을 기름진 땅으로 바꾸기 위한 거름으로 쓰이지 않는 지식은 한낱 허공에 홀로 나부끼는 깃발일 뿐이다.

넷째, 존경(Respect)이다. 존경은 존재에 대한 전폭적인 인정과 수용이다. 전폭적인 인정과 수용은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듣고, 보고, 알게 되고, 접촉하면서 생겨나는 마음이고 태도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 중 하나는 '경청과 환대'이다. 경청은 귀를 기울여 듣는 일이다. 환대는 조건이나 처지와 관계없이 받아들이고 친절을 베푼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도 '본다, 듣는다, 안다, 행한다'라는 말이 연결되어 자주 언급된다. 보고, 듣고, 알려고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존경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일어난다. 특별히 '소리 없는 자들의 소리(Voices of the Voiceless)'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죽어가고 소멸해 가는 자연의 뭇 생명들, 존재하지만 비존재로 취급받는 그림자와 같은 이주노동자들, 알고리즘에 의해 기호로 호명되면서 과로로 녹아내리는(Melting) 불안정 노동자들,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불안과 공포로 빛나는 청춘을 저당 잡힌 청년들,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었으면서도 모욕을 당하며 보호받지 못하는 산재와 참사로 희생당한 사람들과 유족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청과 환대'는 존경의 조건이자 존경을 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광장이 최고의 정치무대이자 학교였다

지난 12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트랙터와 시민들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연합뉴스

우리는 2024년이 끝나가는 최근 몇 주 동안 혼란과 절망, 허탈과 분노라는 아픔을 이겨내고 광화문에서,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기어이 희망을 일으켜 세웠다. 좀체 답이 보이지 않던 세대 간, 계층 간 화합을 일시적으로나마 이뤄낸 자랑스러운 시민을 보유한 나라를 만들어 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광장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광장이 최고의 정치무대이자 학교였다. 특별히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 약자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들을 돕는 기관과 단체에 대한 기부금이 급증한 것은 가장 감동적인 일 중의 하나였다.

'관심과 돌봄(Care)'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주체적 시민으로서 이런 위기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책임(Responsibility) 있게 행동해야 하는지, 더욱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위해,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가고(Knowledge)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존중하고 존경(Respect)을 표하는 모습은 절망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빛나는 희망이었다.

새해에도 계속될 불의한 세력에 대한 탄핵과 심판은 과거를 밀어내는 일이다. 정의를 세우기 위해 반드시 과감하고 신속하게 해야 할 일이다. 동시에 우리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촛불 혁명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광장의 요구와 호소를 헌법과 법률과 제도에 담아야 한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추진체를 만들어야 한다.

헌법과 법률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목숨 걸고 추진한 시민혁명과 개혁운동을 헌법과 법률에 구체적으로 반영하지 않고서는 '사회 대개혁'을 위한 우리의 호소와 외침이 그저 '아름다운 말씀'으로 그칠 공산이 너무나 크다. 미래를 위해 불의한 세력을 심판하는 일과 사회 대개혁 운동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하느님 나라는 언제 오느냐는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는 이미 너희들 안에 와있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를 나에게 묻는다면 2024년 겨울의 광화문과 여의도 광장을, 남태령을 떠올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광장에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사랑이 희망이다!

송경용 성공회 사제· (사)나눔과미래 이사장송경용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송경용은 40여 년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대변해 온 성공회 신부입니다. 한국 복지국가 발전의 이정표라 할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에 큰 역할을 했고, 재난과 참사로 고통받는 피해자나 유족들에게 곁을 내주는 일에 늘 앞장서 왔습니다. 현재 주거복지법인 (사)나눔과미래와 생명안전시민넷 등에서 각각 이사장과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회적경제를 지원하는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최근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원하는 불안정 노동자들과 함께 한국노동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저서로 <사람과 사람>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내란 #참사 #무안공항 #촛불혁명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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