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도 등 돌린, 삼성 반도체 몰락 이유

 [반도체 특별 과외]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 요구, 과연 맞는 해법일까

25.01.23 07:06최종 업데이트 25.01.23 07:06

삼성전자가 5세대 D램의 설계 변경을 추진 중이라는 <전자신문>의 보도전자신문

"삼성전자, 5세대 D램(D1b) 설계 변경 추진"

지난 22일 <전자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입니다. 반도체에 관심 없는 독자들이 제목만 보면 삼성전자가 최신 반도체 메모리의 성능과 수율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전 이 기사를 보고 왜 지난 6개월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이 22조 원 넘는 삼성전자 주식을 순매도했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사가 보여주는 삼성전자의 현 상황에 대해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메모리 반도체의 세대 구분

우선 제목에서 언급한 "5세대 D램"이 뭔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TSMC와 삼성전자가 서로 3나노 혹은 2나노 공정을 가지고 경쟁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을 겁니다. 여기서 나노란 반도체 칩 안에 새겨진 회로의 폭으로, 1나노는 10억 분의 1미터이며 현재 2나노 공정까지 상용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팹의 경우에 한합니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는 아직 10나노대 공정이 최신입니다. 단순화해 설명하면 트랜지스터를 최대한 작게 만들면 되는 시스템반도체와는 달리 데이터를 저장하는 셀(커패시터)까지 촘촘히 집어넣어야 하므로 물리적으로 미세하게 만들기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메모리 반도체 회사별로 선폭에 따라 66나노, 44나노, 30나노…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20나노대가 되면서 정확한 숫자 대신 20나노대에서 x, y, z 등으로 세대를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x를 20나노 1세대라고 부르며 y는 2세대, z는 3세대가 됩니다. 공정 미세화가 진행되면서 10나노대로 들어선 이후에도 x, y, z로 명명했지만, z 이후 한 자릿수 공정으로 내려가지 않고 10나노대에서 더 줄어들 여지가 생기는 바람에 a, b, c라는 이름이 더 생겼습니다. 여기서 b가 바로 5세대입니다.

5세대 D램은 2022년 말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2023년 5월에 양산을 시작했습니다. SK하이닉스도 그해 5월 말에 양산을 시작했습니다. 2024년까지는 그 전 세대인 1a가 D램 시장의 주력 모델이었으나, 2024년 4분기부터 1b가 주력 모델로 바뀌었습니다. 이 1b로 그래픽 D램(GDDR), 모바일 D램(LPDDR) 등을 생산하고 있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역시 1b 메모리를 위로 쌓아 올린 겁니다. 1b 메모리의 성능이 곧 메모리 반도체 회사의 주력 제품의 성능이 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설계부터 다시 해야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 개막을 하루 앞둔 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 내 미셀로브 울트라 아레나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기조연설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7일,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의 HBM은 새로운 설계(design)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공급하려는 HBM은 5세대 제품인 HBM3E이며, 여기 사용되는 메모리는 4세대 제품인 1a입니다.

여기에 더해 <전자신문> 은 1b 메모리의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젠슨 황이 언급한 HBM3E의 설계 문제가 HBM조립이 아니라 1a 메모리 자체에 대한 것이라면 현시점에서 삼성전자 주력 메모리인 1a와 1b 모두 설계 문제가 있다는 게 되고, 이는 향후 1c 개발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만듭니다.

삼성전자 1b의 수율, 즉 완제품 중 불량을 제외한 제품의 비율은 60% 정도로,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양산 수율이라는 80~90%에 한참 모자란다고 합니다. 수율이 낮으면 그만큼 제품 원가가 높아지게 되므로 판매하더라도 이윤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발열은 휴대전화처럼 들고 다니는 전자제품에는 치명적일 뿐 아니라, 대용량 서버를 구성하면 추가 냉각이 필요하므로 고객사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삼성전자 스스로 문제가 된다고 판단하고 재설계에 들어간 제품을 구매할 고객은 없을 테니까요. 고객사 입장에서는 대체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마이크론 역시 1b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니까요.

다른 고객사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삼성의 새로운 휴대전화인 갤럭시 S25에 사용될 메모리의 1차 공급사가 삼성전자가 아닌 미국의 마이크론으로 결정된 바 있습니다. 삼성전자도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를 거부하는 상황입니다.

삼성전자의 새 휴대폰 갤럭시 S25에 삼성의 메모리가 아닌 마이크론의 메모리가 탑재된다는 언론 보도SBS

그렇다면 1b만 최대한 빨리 재설계해 생산을 재개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요? 지난 20일 <머니투데이>는 삼성전자가 10나노급 6세대 D램 개발 목표를 6개월 미뤘다고 보도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1b가 5세대고 1c가 6세대입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HBM인 HBM4에는 1c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c의 개발이 6개월 뒤로 밀리면 HBM4의 개발 역시 그만큼 뒤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주력 제품인 1b 메모리는 재설계를 해야 하고, 차세대 제품인 1c 메모리는 개발이 지연되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삼성전자가 1b를 개발한 건 2022년 12월이었습니다. 지금 1b를 재설계하겠다는 건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2년 전으로 되돌아갔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SK하이닉스는 이미 작년 8월에 1c 개발에 성공했고, HBM4 역시 TSMC와 손잡고 곧 개발을 완료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마이크론은 올해 4월을 목표로 1c를 개발하는 중이며, 올해 초에는 싱가포르에 10조 원을 투자해서 HBM 공장을 짓겠다며 착공식을 가졌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문제라는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뒷걸음질하는 중에 경쟁회사들은 저 멀리 뛰어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가 전사적인 역량을 동원해 집중하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력에 대한 노동 시간 규제 완화를 위해 법으로 정해진 주 52시간 근무제에 예외 조항을 둬야 한다며 정부와 여야 정당을 대상으로 설득하고 있는 겁니다.

삼성전자의 어처구니없는 이런 행보를 두고 많은 반도체 종사자는 반도체 분야에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을 두면 안 그래도 의대나 법대를 선호하는 학생들이 반도체 관련 전공으로 지원할 것 같냐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 마이크론이 HBM 생산 확대를 위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한국 반도체를 따라잡기 위해 각각 한국의 반도체 종사자들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유치경쟁을 하는 와중에 삼성전자에서 하는 일이 고작 직원들 일을 더 시키기 위해 법을 바꾸는 일이라는 걸 바라보는 맘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삼성전자 제품에조차 삼성전자 반도체를 쓰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과연 52시간 이상 일하지 않아서 생긴 일일까요? 혹시 기어코 52시간 이상 일을 시켜야겠다는 최고경영자의 생각이 지금의 삼성전자 문제를 만들어 낸 건 아닐까요?

삼성전자의 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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