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앞에 두고 합의? 민주주의의 '은밀한 붕괴'

 

[굿모닝 퓨처] 대통령 탄핵과 '합의'의 함정
25.01.29 19:11l최종 업데이트 25.01.29 19:11l
 

'굿모닝퓨쳐'는 전문가들의 자발적인모임인 '지속가능한우리사회를위한온라인포럼'이 현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제안하기 위해 '굿모닝충청'과 '오마이뉴스'를 통해 우리사회와 대화하는 창구입니다.[기자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대한민국은 지금 현직 대통령 탄핵과 구속기소 그리고 법원을 대상으로 한 폭동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혼란에 직면해 있습니다. 탄핵 절차가 진행될수록 갈등이 깊어지고, 온갖 프레임 전쟁이 극에 달하면서 일반 국민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거기다가 날이 갈수록 계엄에서 탄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소위 '중립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계엄을 했겠느냐는 동정론부터 '니는 잘했나'라는 양비론까지, 이런 관점은 여야의 강대강 구도에서 파국을 우려하는 고위 정책 당국자들과 선의의 중도 여론 층에서도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특히 물가·환율·주식 등 일상의 삶에 미치는 계엄과 탄핵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여야 합의'에 기초하는 국정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더해갑니다.

그렇지만, 합의가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이라 해도, 모든 경우에 합의를 통한 해결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나 정의(正義) 실현을 위한 윤리적 판단이 우선해야 할 때는 양비론적(또는 양시론적) 관점에서 정치적 타협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함정이고 덫이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합의보다 우선인 가치가 있다

 구속중인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인선서하고 있다. 오른쪽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앉아 있다.
구속중인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인선서하고 있다. 오른쪽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앉아 있다. ⓒ 헌법재판소 화면 캡춰

첫째, 헌법과 법률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사안에서는 정치적 합의보다 법적 원칙과 절차적 정당성이 우선해야 합니다. 살인죄나 부정부패 사건에서 법원 판결이 정치적 합의에 따라 처벌 수위를 달리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가 무너질 것입니다. 야당 대표의 부패 의혹을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법치주의라는 헌법적 원칙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지 않나요?.

대통령 탄핵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지닙니다(헌법 제 65조). 그런데 오히려 헌법을 위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면, 이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물어야 하고, 이것이 탄핵의 본질입니다. 탄핵은 대통령의 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적 원칙이자 법적 절차이므로,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헌법 질서와 법적 책임의 명확화를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헌법과 법률 위반이 분명한데, 여야 합의를 내세워 탄핵을 미루거나 절충하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닌 권력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거래일 뿐입니다. 만약 여야가 정치적 안정을 이유로 이 거래에 합의한다면, 법의 지배와 법 앞의 평등, 법적 책임성과 법의 안정성 등 법치주의의 원칙을 순식간에 무너트려 민주주의의 근본을 붕괴시키고 말 것입니다.

둘째, 어떤 정치적 합의도 윤리적 기준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사회 제도의 제1덕목은 정의이며, 어떤 합의도 정의를 희생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헌법과 법률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사안에서 정치적 타협이 정의를 훼손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입니다.

민주적 헌정 질서는 제헌의회 이래 우리 국민이 맺은 사회협약의 요체로서, 특별히 이를 다른 사회협약에 따라 다른 가치로 대체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우선'의 보편적 정의입니다. 만일 탄핵이 정치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지금 여야가 타협하고 절충한다면, 이후에 어떤 권력자가 헌법을 어긴 후 정치적 타협으로 그 책임을 피해 가려 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탄핵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헌정 질서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문제입니다.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국회와 사법부를 포함한 모든 국가 기관은 대통령이 헌법 질서를 교란했다고 판단하는 순간, 탄핵 절차를 명확한 기준에 따라 신속하고 단호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헌정 질서 수호와 같은 근본적 가치가 걸린 사안에서 이를 지연하거나 절충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 사회의 정의를 송두리째 흔드는 중대한 위헌적 행위로 기록될 것입니다.

셋째, 대통령의 헌법 위반이 명백한 상황에서 탄핵을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을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위험한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가 반복되면 결국 민주주의 자체의 퇴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회와 사법부를 비롯한 모든 국가 기구들은 헌정 질서를 수호할 헌법적 책무를 지닙니다. 그러나 이 책무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고, 합의라는 명분 아래 헌법 절차가 지연되거나 왜곡된다면, 국민은 민주주의를 기득권 세력 간의 이해 조정 수단 정도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정당성 희석(Legitimacy Dilution)'이라고 합니다. 즉, 겉으로는 민주주의의 형식이 유지되는데 실질적으로는 법치주의와 대의제 등 헌법적 원칙이 흐려지며 이를 정치적 거래가 대체하는 것입니다. 헌법적 판단이 정치적 타협으로 변질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국가의 핵심 제도들은 원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국민은 그 존재 이유조차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가장 은밀한 방식입니다. 법치주의의 훼손을 넘어, 모든 국가 기관의 민주적 정당성을 붕괴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헌법적 가치와 법적 원칙들을 무분별한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탄핵은 헌법적 책임을 묻는 절차로서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속하고 단호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기계적 중립의 덫

헌법재판소 도착하는 윤석열 호송차 1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건 변론기일이 열리는 가운데, 수감중인 서울구치소에서 윤 대통령을 태운 법무부 호송차가 헌법재판소에 도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도착하는 윤석열 호송차1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건 변론기일이 열리는 가운데, 수감중인 서울구치소에서 윤 대통령을 태운 법무부 호송차가 헌법재판소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사실, 정치적 대립과 사회적 혼란의 와중에 '합의'를 강조하는 논리 안에는 '기계적 중립'의 양면성이 잠복해 있습니다.

기계적 중립은 대체적 분쟁 해결(ADR)의 조정 원칙 중 하나로, 갈등하는 집단간 합의를 촉진하기 위해 객관적인 규칙을 균등하게 적용하여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는 접근법입니다. 이를 통해 특정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감정적 개입을 최소화하며 논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런 방식은 특히 대립이 심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이견을 조율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정책적 문제 해결 과정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기계적 중립이 언제나 효과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탄핵처럼 법적·윤리적 판단을 바탕으로 정의를 회복해야 하는 사안에 있어서는 오히려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여야가 합의한다고 해서 비상계엄 절차의 위법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를 주도한 세력의 법적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허위 균형(False Balance)'의 오류에 빠져 헌법적 원칙이자 법적 절차의 문제를 단순한 '의견 차이'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야 모두 현 상황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든가 '정쟁을 멈추고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그렇습니다. 이는 내란 피의자와 심판자를 같은 위치에 놓는 오류로서, 헌법을 위반한 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을 같은 선상에서 타협하게 만들어 오히려 정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책임의 크기가 다르다면, 균형 있는 합의가 아니라 책임에 따른 명확한 처벌을 우선해야 실질적 정의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또, 탄핵 과정에서 계엄 선포가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회피한 채 여야 간 균형을 맞추려 한다면, 헌법 가치는 사라지고 형식적인 법 논리만 남을 것입니다. 이런 접근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봉합하고 넘어가는 것이고, 심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덮고 가는 것일 뿐입니다.

탄핵과 같이 중대한 헌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에서는 양비론적 균형을 맞추는 형식적 공정성이 아니라, 실질적 공정성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즉, '대통령의 헌법 위반이 한국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헌법적 원칙과 민주주의 수호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합의가 필요한 것들

 우원식 국회의장 및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월 17일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및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 및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월 17일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및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렇다면, 탄핵 국면에서 여야 합의는 불필요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국정운영의 연속성과 국민 통합을 위한 합의는 '나라 살리기'에 필수적인 요건이고 대통령의 헌법 위반이 우리 민주주의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는 데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소식에 이어 탄핵 소식을 접한 주요국 언론의 첫 번째 반응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Democratic Resilience)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여기서 회복력이란 '회복'과 '강화'가 결합한 개념으로, 단순히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면서 더 강한 상태로 이행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민주주의 회복력이란 민주주의가 한 번 위기를 겪고 난 뒤에 같은 위협에 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시민적·제도적·정치적 면에서 더 성숙하고, 더 강해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정치적 합의는 바로 이 회복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미래 협력 과정에서 꼭 필요한 기제입니다.

첫째, 탄핵 절차의 공정성과 신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합의가 필수입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이 정치적 공방으로 지연되지 않도록 헌법적 원칙을 준수해야 하며, 여야는 법적 판단을 무조건 존중한다는 원칙에 합의해야 합니다. 또한 탄핵 찬반을 떠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고 승복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탄핵 절차가 정치적 거래가 아닌 법적 판단임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둘째, 탄핵 이후 국정 공백을 방지하기 위한 협력은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할 경우, 국정운영이 마비되지 않도록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회가 긴밀히 협력해야 합니다. 여야는 국정의 연속성을 위해 내각 운영과 주요 정책 기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하며,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가 안보나 비상사태 대응과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사전에 국회와 협의하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탄핵 이후에도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국민 통합을 위해서도 정치적 합의가 필수입니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정치적 보복이나 극단적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여야가 국민 통합 메시지를 발표하고, 상호 간에 정치 공세를 자제해야 합니다. 탄핵을 단순한 정권 교체 수단이 아니라, 헌정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정치권이 민주적 질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공고히 하는 데 제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탄핵 이후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치적 책임을 분명히 하되,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탄핵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과 정권 이양 과정에서 질서 있는 이행을 위한 초당적 합의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 일정이 혼란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선거 절차를 공정하게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탄핵 과정에서 깊어진 정당간 갈등이 선거 과정에서 과도한 정치적 대립으로 귀결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합니다. 나아가 국가공동체가 나아갈 미래 비전과 실행 전략을 두고 경쟁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손으로 뽑은 국정 책임자들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정파적 이익에 함몰되지 않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우리 국민도 이 어지러운 탄핵 국면에서 정의보다 조화를 우선하는 감정적 온정주의를 경계하며, 원칙 없는 정치적 합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은재호씨는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입니다.


#탄핵#윤석열#합의#파면

评论

此博客中的热门博文

[인터뷰] 강위원 “250만 당원이 소수 팬덤? 대통령은 뭐하러 국민이 뽑나”

‘영일만 유전’ 기자회견, 3대 의혹 커지는데 설명은 ‘허술’

윤석열의 '서초동 권력'이 빚어낸 '대혼돈의 멀티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