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대선 승리 원한다면 지금 움직여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지금이 남북대화 선제 제의 적기"
2016.11.29 18:01:00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요구가 봇물 터지듯 나오는 가운데에도 박 대통령은 끝내 검찰의 수사를 거부하는 등 민심에 맞서는 형국이다. 정치권에서는 탄핵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야당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을 토대로 탄핵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지만, 정국을 주도하지도, 촛불 민심을 제대로 흡수하지도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대안 세력이 없다는 평가와 함께 '대한민국호'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인터뷰가 진행된 다음 날인 29일 제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탄핵을 사실상 거부하는 입장을 밝혔다. 편집자)
특히 미국이 정권 교체기에 진입한 상황에서, 현재 권력의 붕괴와 대안 권력의 부재가 맞물린 한국 정치의 혼란은 남북 관계에도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북한이 이틈을 노리고 핵 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감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누구도 북한을 막을 수 없고 말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핵실험이든 미사일 발사든 뭐든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더 이상 북한이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둬야 한다"며 북한과 탐색적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0.26 직후인 1980년 2월, 북한이 남한에 대화 제의를 한 적이 있다며 이는 남한의 상황을 파악해보려는 '탐색적 대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남한은 리더십이 붕괴한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군사적인 행동은 혼란을 가중시킬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정 전 장관은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 전 장관은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특히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권을 잡고 상황 관리를 위한 남북 간 탐색적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여당이나 박근혜 정부를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관련 부처 장관들을 불러내서 정책 질의를 하든 간담회를 하든 어떤 방식이든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도록 권고 및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민주당이 이 정도 시도도 하지 못하면 집권할 능력이 없는 것"이라며 "지금 여기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실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인데, 이거보다 확실한 능력 검증이 어디 있나"라고 반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빠르면 6개월 내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우리의 대북 및 대외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문제는 제대로 된 대안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단 한 번도 국정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단지 '주워 먹으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향후 어떻게 정국을 이끌어갈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청사진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주판알을 튕기면서 손익 계산하고 '밥그릇 싸움'만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세현 : 우리가 새 정권이 들어서는 시기와 미국 새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이 갖춰지는 시기가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내년 6월 사이에 북한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누구도 북한을 막을 수 없고 말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핵실험이든 미사일 발사든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북한이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둬야 합니다. 지금 통일부 장관이야 박근혜 정부 내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고 지금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니 기대할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회가 나서야 합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식물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살아있기 때문에 국회가 직접 정책을 집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국회가 정책 사안을 공론화해서 방향을 잡고 밀고 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래야 북한이 마음 놓고 사고 쳐도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핵 실험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면 안보에도 문제가 생길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탄핵이냐, 좀 있으면 임기 끝나는데 이 위기는 넘기고 가자는 식으로 여론이 생겨날 겁니다. 이 '국난의 시기'에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대화를 통해 북한의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야권과 비박계는 북한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북한이 더 이상의 사고를 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야당은 "대북, 대외 관계를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에 맡길 수 없다"고 밝히고 국회가 대북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렇지만 북한은 이미 5차 핵실험까지 진행했습니다. 핵을 가진 북한과 무슨 대화를 하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습니다.
정세현 : 그건 남북 관계를 아예 하지 말자는 겁니다. 원래 참여정부 때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병행이라는 '투 트랙'을 견지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이런 전략은 없어졌습니다.
만약 야당이 집권해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면 지금부터 목소리를 내서 정부를 압박해야 합니다. 지금 미국도 북한을 제어하지 못하는 정권 교체기에 놓여 있습니다. 북한이 사고를 치기가 딱 좋은 시기입니다. 이 시간 동안 사고 치지 못하도록 전략적인 차원에서라도 남북 대화를 진행해야 하고, 이를 통해 안보에 빈틈이 없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그게 수권 정당의 면모입니다.
실제 과거 권력의 격변기 때 남북 대화가 종종 일어났습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인 1980년 2월, 북한은 느닷없이 총리급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남북회담을 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이건 사실 대화보다는 남측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남북 대표들이 만나면 그 과정에서 낌새를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를 통해 감이라도 잡아보겠다는 겁니다. 사실 회담만큼 훌륭한 '휴민트(HUMINT)'도 없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이 회담에 응했습니다. 신군부인 전두환이 직접 회담의 수석대표를 지명했습니다. 이후 이 회담은 그해 8월까지 10번이나 개최됩니다. 접점을 만든다기보다는 상대의 의중을 탐색하는 대화였습니다.
1970년 초에 열린 적십자 회담 역시 탐색 목적이 강했습니다. 당시는 미국이 자기들의 국제 정책 필요에 의해 소련, 중국에 화해의 손짓을 보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이 한반도에 개입을 줄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한미 동맹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정희는 미국이 한국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빠져나가기도 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김일성도 소련이나 중국이 미국과 대화하려는 것을 보면 저들이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불안한 상황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북쪽의 손을 한 손이라도 잡고 있으면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낌새라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도 비슷한 목적이었을 겁니다. 남한 및 국제 정세에 격변이 일어나는 상황을 파악해 두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양측의 의도가 맞아 떨어져서 남북은 적십자회담을 열었고 결국 7.4 남북 공동성명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스스로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현실 인식을 통해 방어적인 차원에서 회담을 진행한 겁니다.
이번에도 남한은 격변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북한은 남한의 동태 파악이 필요할 겁니다. 우리 역시 북한의 위협을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대화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남한이 먼저 차관급 수준에서 회담을 제의하면 북한도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겁니다.
일단 아직까지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동향이 있었으면 벌써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이를 흘렸을 텐데 그런 소식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어느날 갑자기 뒤통수 때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미국의 새 정부에서 누가 국방장관, 국무장관 등을 하게 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 당장은 군사 행위를 벌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압박 일변도로 나올 것 같다는 것이 분명해지면 북한은 "그래? 한 번 해보자는 거냐" 라는 식으로 더 세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우리가 북한을 관리하는 목적의 남북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파악한 "북한은 살살 달래야 하더라"라는 이야기를 미국에도 해줘야 하고. 미국에 새로 들어오는 외교안보팀에 우리가 조언을 해줘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북한은 지금 남한의 권력 공백기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야당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대단히 높다는 점에 착안, 군부가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을 이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북한이 호응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야당이 상황 수습과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는 있습니다.
대선 이기고 싶다고? 지금 주도권 잡아야 한다
프레시안 : 북한 변수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접촉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일단 야당에 이 정도의 전략 또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또 국회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추진한다고 해도 여전히 1당이자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세현 : 민주당이 이 정도 시도도 하지 못하면 집권할 능력이 없는 겁니다. 여기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실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인데, 이거보다 확실한 능력 검증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현재 국회를 움직일 추동력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다음 대선에서 이기고 싶다면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나중에 대선이 본격화 된 이후에 외치는 구호나 연설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선거운동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여당이나 박근혜 정부를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회 이름으로 통일부 장관에게 대북 제의를 하도록 압박하고 국가안보실장도 국회로 불러내서 정책 질의를 하든 간담회를 하든 어떤 방식이든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도록 권고 및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국회가 나서야 할 명분도 있습니다. 미국은 시스템이 움직이는 국가지만,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힘이 빠지면 국정이 사실상 마비됩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힘이 빠지면 다음 선출 권력인 국회가 움직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국회의 힘은 현재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오는 겁니다.
따라서 어찌 보면 지금이 국가 전체적으로 지금은 굉장한 위기이지만,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야당에게는 국정 수행 능력을 보여주고 신임을 받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당에서는 별로 이러한 노력이 안보입니다. 190만 명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데, 야당은 '남의 불에 게 잡는다'는 생각으로 거저 얻어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야당이 지난 다섯 차례의 집회에서 보여준 국민 수준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야당이 하는걸 보면 박근혜 정부가 계속 죽 쑤길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지금 대표적인 대권 후보와 당 대표 모두 쉽사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 대표도 대권 주자도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당에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움직여야 합니다.
특히 외치 문제는 외교 안보와 관련해 국정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책기구를 만들어서 북한을 관리하는 부분을 신경 써야 합니다. 비상대책기구나 이른바 '섀도우 캐비넷'을 구성해서라도 책임질 수 있는 정당이라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국정의 주도권을 잡고 다른 당도 따라 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국회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이제 국정조사도 곧 시작될 것이고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국회가 대정부질문을 통해 얼마든지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는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기능을 최대한 확대하고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전환시키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당장 박근혜 정부의 관리들에게 지금까지의 정책 방향에서 벗어나서 각성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외치 부분은 특히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의 경우,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를 국민의 여론과 반대로 성급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해야 합니다. 설사 대통령이 이 건의안을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보여주는 조치로 필요합니다.
잠시 GSOMIA 이야기를 해보자면, 매년 이 협정을 이어갈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협정을 종료하려면 협정을 종료하려는 날짜로부터 90일 전에 통보해야 합니다. 협정 최종 서명을 11월 23일에 했으니까, 만약 협정을 중지하려면 내년 8월 23일에 통보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정치 일정상 일본에 협정 무효를 통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통보한다면 아마도 2018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을 비롯해 야권의원 52명이 함께 효력 정지 특별법을 발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안보 문제라서 잘못 건드리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을 겁니다.
야당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을 토대로 탄핵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지만, 정국을 주도하지도, 촛불 민심을 제대로 흡수하지도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대안 세력이 없다는 평가와 함께 '대한민국호'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인터뷰가 진행된 다음 날인 29일 제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탄핵을 사실상 거부하는 입장을 밝혔다. 편집자)
특히 미국이 정권 교체기에 진입한 상황에서, 현재 권력의 붕괴와 대안 권력의 부재가 맞물린 한국 정치의 혼란은 남북 관계에도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북한이 이틈을 노리고 핵 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감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누구도 북한을 막을 수 없고 말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핵실험이든 미사일 발사든 뭐든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더 이상 북한이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둬야 한다"며 북한과 탐색적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0.26 직후인 1980년 2월, 북한이 남한에 대화 제의를 한 적이 있다며 이는 남한의 상황을 파악해보려는 '탐색적 대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남한은 리더십이 붕괴한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군사적인 행동은 혼란을 가중시킬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정 전 장관은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 전 장관은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특히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권을 잡고 상황 관리를 위한 남북 간 탐색적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여당이나 박근혜 정부를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관련 부처 장관들을 불러내서 정책 질의를 하든 간담회를 하든 어떤 방식이든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도록 권고 및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민주당이 이 정도 시도도 하지 못하면 집권할 능력이 없는 것"이라며 "지금 여기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실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인데, 이거보다 확실한 능력 검증이 어디 있나"라고 반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빠르면 6개월 내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우리의 대북 및 대외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문제는 제대로 된 대안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단 한 번도 국정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단지 '주워 먹으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향후 어떻게 정국을 이끌어갈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청사진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주판알을 튕기면서 손익 계산하고 '밥그릇 싸움'만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세현 : 우리가 새 정권이 들어서는 시기와 미국 새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이 갖춰지는 시기가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내년 6월 사이에 북한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누구도 북한을 막을 수 없고 말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핵실험이든 미사일 발사든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북한이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둬야 합니다. 지금 통일부 장관이야 박근혜 정부 내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고 지금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니 기대할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회가 나서야 합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식물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살아있기 때문에 국회가 직접 정책을 집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국회가 정책 사안을 공론화해서 방향을 잡고 밀고 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래야 북한이 마음 놓고 사고 쳐도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핵 실험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면 안보에도 문제가 생길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탄핵이냐, 좀 있으면 임기 끝나는데 이 위기는 넘기고 가자는 식으로 여론이 생겨날 겁니다. 이 '국난의 시기'에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대화를 통해 북한의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야권과 비박계는 북한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북한이 더 이상의 사고를 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야당은 "대북, 대외 관계를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에 맡길 수 없다"고 밝히고 국회가 대북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렇지만 북한은 이미 5차 핵실험까지 진행했습니다. 핵을 가진 북한과 무슨 대화를 하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습니다.
정세현 : 그건 남북 관계를 아예 하지 말자는 겁니다. 원래 참여정부 때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병행이라는 '투 트랙'을 견지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이런 전략은 없어졌습니다.
만약 야당이 집권해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면 지금부터 목소리를 내서 정부를 압박해야 합니다. 지금 미국도 북한을 제어하지 못하는 정권 교체기에 놓여 있습니다. 북한이 사고를 치기가 딱 좋은 시기입니다. 이 시간 동안 사고 치지 못하도록 전략적인 차원에서라도 남북 대화를 진행해야 하고, 이를 통해 안보에 빈틈이 없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그게 수권 정당의 면모입니다.
실제 과거 권력의 격변기 때 남북 대화가 종종 일어났습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인 1980년 2월, 북한은 느닷없이 총리급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남북회담을 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이건 사실 대화보다는 남측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남북 대표들이 만나면 그 과정에서 낌새를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를 통해 감이라도 잡아보겠다는 겁니다. 사실 회담만큼 훌륭한 '휴민트(HUMINT)'도 없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이 회담에 응했습니다. 신군부인 전두환이 직접 회담의 수석대표를 지명했습니다. 이후 이 회담은 그해 8월까지 10번이나 개최됩니다. 접점을 만든다기보다는 상대의 의중을 탐색하는 대화였습니다.
1970년 초에 열린 적십자 회담 역시 탐색 목적이 강했습니다. 당시는 미국이 자기들의 국제 정책 필요에 의해 소련, 중국에 화해의 손짓을 보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이 한반도에 개입을 줄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한미 동맹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정희는 미국이 한국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빠져나가기도 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김일성도 소련이나 중국이 미국과 대화하려는 것을 보면 저들이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불안한 상황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북쪽의 손을 한 손이라도 잡고 있으면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낌새라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도 비슷한 목적이었을 겁니다. 남한 및 국제 정세에 격변이 일어나는 상황을 파악해 두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양측의 의도가 맞아 떨어져서 남북은 적십자회담을 열었고 결국 7.4 남북 공동성명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스스로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현실 인식을 통해 방어적인 차원에서 회담을 진행한 겁니다.
이번에도 남한은 격변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북한은 남한의 동태 파악이 필요할 겁니다. 우리 역시 북한의 위협을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대화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남한이 먼저 차관급 수준에서 회담을 제의하면 북한도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겁니다.
일단 아직까지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동향이 있었으면 벌써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이를 흘렸을 텐데 그런 소식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어느날 갑자기 뒤통수 때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미국의 새 정부에서 누가 국방장관, 국무장관 등을 하게 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 당장은 군사 행위를 벌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압박 일변도로 나올 것 같다는 것이 분명해지면 북한은 "그래? 한 번 해보자는 거냐" 라는 식으로 더 세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우리가 북한을 관리하는 목적의 남북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파악한 "북한은 살살 달래야 하더라"라는 이야기를 미국에도 해줘야 하고. 미국에 새로 들어오는 외교안보팀에 우리가 조언을 해줘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북한은 지금 남한의 권력 공백기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야당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대단히 높다는 점에 착안, 군부가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을 이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북한이 호응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야당이 상황 수습과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는 있습니다.
대선 이기고 싶다고? 지금 주도권 잡아야 한다
프레시안 : 북한 변수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접촉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일단 야당에 이 정도의 전략 또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또 국회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추진한다고 해도 여전히 1당이자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세현 : 민주당이 이 정도 시도도 하지 못하면 집권할 능력이 없는 겁니다. 여기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실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인데, 이거보다 확실한 능력 검증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현재 국회를 움직일 추동력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다음 대선에서 이기고 싶다면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나중에 대선이 본격화 된 이후에 외치는 구호나 연설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선거운동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여당이나 박근혜 정부를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회 이름으로 통일부 장관에게 대북 제의를 하도록 압박하고 국가안보실장도 국회로 불러내서 정책 질의를 하든 간담회를 하든 어떤 방식이든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도록 권고 및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국회가 나서야 할 명분도 있습니다. 미국은 시스템이 움직이는 국가지만,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힘이 빠지면 국정이 사실상 마비됩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힘이 빠지면 다음 선출 권력인 국회가 움직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국회의 힘은 현재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오는 겁니다.
따라서 어찌 보면 지금이 국가 전체적으로 지금은 굉장한 위기이지만,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야당에게는 국정 수행 능력을 보여주고 신임을 받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당에서는 별로 이러한 노력이 안보입니다. 190만 명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데, 야당은 '남의 불에 게 잡는다'는 생각으로 거저 얻어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야당이 지난 다섯 차례의 집회에서 보여준 국민 수준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야당이 하는걸 보면 박근혜 정부가 계속 죽 쑤길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지금 대표적인 대권 후보와 당 대표 모두 쉽사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 대표도 대권 주자도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당에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움직여야 합니다.
특히 외치 문제는 외교 안보와 관련해 국정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책기구를 만들어서 북한을 관리하는 부분을 신경 써야 합니다. 비상대책기구나 이른바 '섀도우 캐비넷'을 구성해서라도 책임질 수 있는 정당이라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국정의 주도권을 잡고 다른 당도 따라 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국회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이제 국정조사도 곧 시작될 것이고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국회가 대정부질문을 통해 얼마든지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는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기능을 최대한 확대하고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전환시키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당장 박근혜 정부의 관리들에게 지금까지의 정책 방향에서 벗어나서 각성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외치 부분은 특히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의 경우,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를 국민의 여론과 반대로 성급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해야 합니다. 설사 대통령이 이 건의안을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보여주는 조치로 필요합니다.
잠시 GSOMIA 이야기를 해보자면, 매년 이 협정을 이어갈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협정을 종료하려면 협정을 종료하려는 날짜로부터 90일 전에 통보해야 합니다. 협정 최종 서명을 11월 23일에 했으니까, 만약 협정을 중지하려면 내년 8월 23일에 통보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정치 일정상 일본에 협정 무효를 통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통보한다면 아마도 2018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을 비롯해 야권의원 52명이 함께 효력 정지 특별법을 발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안보 문제라서 잘못 건드리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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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이사장,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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