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주시'에 일베는 지금 내분


16.11.08 20:37l최종 업데이트 16.11.08 20:37l





이 기사 한눈에

  • JTBC 특종이 있었다. 청와대 뉴미디어실이 일베를 모니터링하고 특정 게시물을 확산케 했다는 것.
  • 일베에선 '짤게이'와 '정게 할배'의 반목이 포착된다. 지금 그들은 진보좌파를 낙인찍었던 방식대로 그들끼리 낙인을 찍고 있다.
일베 이용자 100여 명이 2014년 9월 단식 투쟁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을 조롱하며 '폭식 투쟁'을 벌인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50대 사업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일베 이용자들에게 피자를 나눠준 인물이 있었다. 오마이TV는 당시 그의 설교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도한 바 있다(관련 기사: 피자 100판 먹으며 "일베가 나라의 중심" 폭식 투쟁).

이 남성은 당시 일베 이용자들에게 "일베가 이 나라의 중심을 지키고 있어요. 불순세력들이 지금까지도 분탕을 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년이 지난 지금 뒷문장은 몰라도 앞 문장이 일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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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폭식 투쟁'을 벌인 일베 이용자들에게 음식을 공급했던 정체불명의 남성.
ⓒ 오마이TV

일베가 이 나라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는 그의 사뭇 진지한 말은 최근까지 인터넷상에서 일종의 밈(사람의 문화심리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 돼 우스개 반 진담 반으로 떠돌았다. 실제로 일베가 2012년 대선 문재인 후보 임스 라운지 체어 논란, 2014년 세월호 참사 폭식 투쟁, 2016년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빨간 우의 가격설 등 굵직한 사건마다 논란을 몰고 다닌 것도 사실이다.

일베에 관한 연구, 비평 역시 일베를 부조리한 한국 사회가 가장 성공적으로 생산해낸 주체로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일베가 나라의 중심'이라는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다. 비슷한 말인 '만물 일베설'도 다소 과장됐으나 꼭 일베 이용자가 아니더라도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 사회 어디에나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옳다.

그런데 정말로 권력 기관인 청와대까지 일베에 개입한다면 어떨까? JTBC는 7일 단독 보도로 청와대 뉴미디어실이 일베를 모니터링하고 특정 게시물을 확산케 한 증거를 공개했다. 또한 청와대에 이른바 '최순실 사단'으로 불리는 핵심 인물들이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큰 파장이 예상된다(관련 기사: [단독] 최씨 사단 '청와대 뉴미디어실' 카톡... '극우 글' 보고).

청와대에서 회자된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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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7일 단독 보도 방송 화면 캡쳐.
ⓒ JTBC

JTBC에 따르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내에는 사실상의 비선 조직이 있었다. 이중 9명이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캠프 때는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사이트의 글을 SNS에 공유하고 청와대에서는 진보 성향의 인사들의 온라인 활동을 감시한 정황이 나타났다. JTBC는 이 정황을 박근혜 캠프의 디지털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던 박철완씨와 인터뷰로 파악했다.

박씨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박근혜 후보를 둘러싼 의혹을 공개적으로 해명하겠다는 취지의 사이트(www.Truebank.co.kr)가 발견됐고, 도메인 등록자 '마레이 컴퍼니'는 최순실의 태블릿 PC 명의자인 김한수 행정관의 개인 회사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대선 후보의 치부를 드러낼 우려가 있어 사이트를 닫을 것을 요청했지만 이 조직이 자신의 통제 밖에 있어 거절당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현재 이 사이트의 URL로 접속하면 해당 사이트로 접속되지 않는다. 위키피디아의 '최순실 게이트' 페이지로 접속된다.

JTBC가 입수한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에 따르면 '청와대 뉴미디어실'은 일베 사이트의 게시물 현황을 공유하고 특정 게시물 확산을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야당을 비하하는 은어를 사용하는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내용들을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베 사이트와 운영자에 대한 압수수색, 조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로 찢어지고 의심하는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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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베 내에서 세대 갈등, 노인 혐오 양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 '틀딱'이란 용어 사용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 일베 갈무리

한편 일베 이용자들은 '멘붕'에 빠진 상황이다. 일베 내에서는 농담 반으로 '일베가 이러다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일베 이용자들은 다 똑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주의 깊은 관찰자들은 일베가 오랫동안 분열을 겪어온 것을 알고 있다.

일베는 주류 이용층인 '짤게이(짤방 게시판 이용자)'와 비주류 이용층인 '정게 할배(정치게시판 할배)'로 나뉘어 사이가 좋지 않고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며 믿지 못한다. 짤게이들은 대체로 보수적 성향이나, 문체나 설교조의 말투 등 기성세대일 것으로 추정되는 정게 할배들과는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진지한 이념을 공유하며 연대를 이루는 전통적 의미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소속감 따위는 없다'.

애국심과 의리를 강조하며 정부·여당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면 당장 '틀딱(틀니 딱딱)'이라는 조롱이 돌아오는 이유다. 따라서 짤게이들은 "일베가 이 나라의 중심을 지키고 있어요"라는 말을 기성세대의 시대착오적인 의식 과잉 정도로 생각해왔는데, 이번 JTBC 보도로 권력 기관의 조직적인 모니터링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확실해져 '멘붕'에 빠진 것이다.

짤게이들은 기성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조롱함으로써 오는 쾌감에 주화입마된 젊은 우익들이기 때문에 정게 할배들의 의식 과잉에는 꾸준한 거부감을 표현해왔다. 이처럼 일베 내에도 세대 갈등이 작동하는 데다가, 일베 이용자들의 유난스러운 대인 불신에 청와대의 모니터링 파문이 기름을 끼얹었다. 현재 일베는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방불케 하고 있다.

가령 '국정원일베담당'이라는 이용자는 "현재 틀딱충들 수준이 이렇다....(feat 우병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정치 게시판에서 고운호 <조선일보> 객원기자가 팔짱을 끼고 검찰조사를 받는 우병우씨를 찍은 특종 사진에 대한 조작설을 제기하면서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을 비호하려는 정게 할배들을 공격했다. 자기가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추천 못지 않은 반대를(추천 357, 반대 299) 기록했다.

댓글을 보면 "작성자도 분탕... ㅁㅈㅎ(반대)"(시진핑도적떼), "댓글 하나 가져와서 XX하네 XX아 뒤져라 진지충들까지 아주 지라를 하네"(심리학과생), "틀딱 XXXX들이 와서 ㅁㅈㅎ 누르네"(변수능봄) 등 실체적 진실이 분명한 사건까지 댓글에 대댓글까지 달리면서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고,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싸우고 있다. 일베에서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이런 식의 분위기를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일베는 그동안 진보좌파들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나라를 '분탕'친다고 여겨왔다. 집회 현장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수만 가지 선택을 할 수 있고 집회의 전반적인 경향성을 입증하지 못 하는 이상 각각의 선택은 맥락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일베는 손쉽게 '변질' '불법' 딱지를 붙이며 정리 처분해왔다. 이제는 본의 아니게 그들이 진보좌파를 낙인찍어왔던 바로 그 방식대로 그들끼리 '분탕'으로 낙인 찍고 또 낙인 찍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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