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물고문’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재탄생
6월10일 개관식
고경태기자- 수정 2025-05-21 08:01
- 등록 2025-05-21 06:00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린 20일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대공분실 구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좁은 세로 창문이 보이는 곳이 박종철 열사와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이 고문당한 5층 조사실이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의 고문 현장인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이 6·10민주항쟁 38주년을 맞아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정식 개관해 관람객을 맞는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운영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0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음달 10일 정부 기념식과 함께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국가폭력의 상징이 된 남영동 대공분실의 현장을 보존하고 고문과 고문 피해자에 대한 기록·전시물을 볼 수 있는 구관(M2)과 대구 2·28항쟁부터 4·19혁명, 6·10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신관(M1)으로 구성된 민주화운동기념관은 10일부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1976년 내무부장관 김치열이 건축가 김수근에게 설계를 의뢰해 지어진 남영동 대공분실은 국방부 산하 보안사 서빙고분실, 남산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정원)와 함께 독재정권 시절 대표적인 고문시설로 꼽힌다. 1985년 김근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고문사건으로 실체가 처음 알려졌고, 1987년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지면서 대규모 시민항쟁을 불렀다. 사업회는 2018년부터 경찰청 인권센터로 사용되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위탁관리를 맡아 기념관으로 조성해왔으며, 외부 건축공모 절차를 거친 뒤 2021년 6월10일 기념관 착공식을 연 바 있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다음달 10일 개관할 예정이다. 기자간담회가 열린 20일 오전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구관(대공분실동) 5층 509호 조사실 모습. 이곳에서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다 숨졌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재오 사업회 이사장은 “이곳은 지을 때부터 고문해서 사람 잡기로 작정한 건물”이라며 “조사실이 있는 구관(대공분실) 내부를 가급적 원형 그대로 복원하려고 했다. 이 현장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쳤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6·10 기념일에 맞춰 개관하기로 했는데 (비상계엄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줄 몰랐다. 어떤 정권이든, 어떤 혼란이 오든 민주주의를 지켜가야 한다는 의미가 있어 6월10일에 개관하는 의미가 각별하다”며 “청소년들이 이곳을 많이 방문해 민주주의 산 교육장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민주화운동기념관 구관(대공분실) 5층은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운영된 각 기관 조사실 중 유일하게 현장이 보존된 곳이다. 통상 지하에 있었던 여타 정보기관들의 조사실들과 달리 지상 5층에 자리 잡았다. 15개의 조사실(건축 당시 18개) 각각의 문 위에는 층수 없이 호수만 작게 표시돼 있다. 고경태 기자 이 이사장은 1979년 8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뒤 남영동 대공분실 514호실로 끌려와 40일 동안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당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신축된 교육동(E동)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 하며 발언을 이어가던 이 이사장은 “이곳은 경찰들의 체력단련장이었다. 고문 잘하기 위해 훈련을 한 셈”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 이사장은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는 “계엄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비상계엄이라는 것은 나라가 내란이나 폭동 위협에 빠졌을 때 치안 유지하기 위해 내리는 조치”라며 “야당이 말을 안 듣는다고 계엄을 하나? 대화해야지. 비상계엄은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왔다. 대법원의 (내란 여부) 판단이 서면 (비상계엄과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거도)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과 여당이 (대선) 후보 단일화 관련 막장드라마를 연출한 일도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지적했다.
3층 동쪽에 있는 ITV 모니터실은 3층과 5층에 있는 피의자조사실에 설치된 감시용 카메라와 고성능 마이크로부터 영상과 음향을 수신하는 곳이자 감시하는 장소였다. 고경태 기자 남영동 대공분실의 현장을 보존한 구관 5층의 509호엔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당했던 욕조가 그대로 있다. 515호실은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이 고문당한 곳이다. 조사실에서는 음향을 녹화하는 장치와 시시티브이에 해당하는 아이티브이(ITV) 연결장치가 발견됐다. 3층에는 각 조사실 영상을 감시하는 모니터실과 전기고문을 가하고 멍석말이를 하던 특수조사실을 볼 수 있다.
새로 건립된 신관에는 1960년부터의 민주화운동을 시기별·부문별로 정리한 디지털 미디어 패널이 세워져 있으며 민주주의에 관한 사물·장소·노래를 터치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다. 주말에는 파노라마 영상으로 펼쳐지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배경으로 두 명의 무용수가 몸짓을 통해 항쟁의 날들을 표현하는 특별 도슨트를 진행한다. 신관 중앙에서는 문화운동을 주제로 특별전이 열리며 개관 기념 무용 공연, 전통음악회, 포럼 등도 이어진다. 신관에는 민주화운동 사료 60만건도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린 20일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 전시관에서 특별 도슨트가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편 기념관 민주광장에서 다음달 10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기념식 및 개관식 주제는 ‘다시, 민주주의’다. 새롭게 문을 여는 기념관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금 성찰하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과거 국가폭력의 아픔을 간직했던 익명성과 침묵의 공간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주의를 계승하는 기억과 성찰의 공간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고 사업회 쪽은 설명했다.
기념관 관람은 6월10일부터 매주 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에 가능하며, 관람료는 무료다. 관람은 누리집을 통한 사전 예약제를 통해야 한다. 구관(대공분실)은 하루 2회(40분), 신관은 하루 2회(20분) 관람할 수 있다.
다음달 10일 열리는 제38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 및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식에는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키비주얼(Key Visual)이 제작됐다. 고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법전 등이 포함됐으며, 붉은색·푸른색·보라색·흰색 꽃들이 어우러져 화해와 치유, 화합을 통해 나아가는 민주주의의 미래를 표현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001년 출범해 국가기념일인 6·10 민주항쟁 기념식 개최를 포함하여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사업,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 수집 사업 등의 과제를 수행하는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법은 1960년 2·28대구민주화운동, 6·3한일회담반대운동, 5·3민주항쟁, 6·10항쟁 등 11개를 민주화운동으로 공식인정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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