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읽고 미래를 쓴 세계 지도자들의 취임사
조일준기자
수정 2025-05-31 07:00등록 2025-05-31 07:00
만델라 “무지개 나라”, DJ “국난 극복”
한국선 내란사태로 새 대통령의 탄생
6월4일 우리가 듣게 될 메시지는 뭘까
민주주의 강화, 사회 안전망 확충 등
시대적 요구 부등하는 답변 제시해야
2025년 6월3일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 성격의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탄핵·파면된 뒤 치러지는 선거다. 윤석열 내란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 체제의 강점과 취약점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주권자 국민과 대표기관 국회가 헌법의 힘으로 끔찍한 사태를 막았지만, 내란 세력 역시 온갖 법 기술과 궤변으로 민주주의 회복과 정의 실현에 저항하고 있다. 윤석열 쿠데타에 편승한 극우세력은 노골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분열과 혐오를 확산시킨다. 6·3 대선이 단순히 정치적 심판이나 12·3 쿠데타 이전으로 헌정 질서를 되돌리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선거로 들어설 정부는 민주주의 강화, 불평등 축소, 사회안전망 확충, 한반도 평화 같은 시대적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최고 지도자들은 취임 연설에 시대를 읽고 미래를 제시하는 비전과 임기 중 정책 방향을 포괄적으로 담게 마련이다. 20세기 이후 세계는 냉전과 탈식민, 민주화와 세계화, 급속한 경제 성장과 환경 위기라는 거대한 변화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지도자들의 취임 연설은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 목소리로 지금도 큰 울림을 준다.
■ 존 F. 케네디
1961년 1월20일,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 앞에서 새 대통령이 취임 연설을 했다. 사람들은 44살 젊고 패기 넘치는 대통령의 탄생에 환호했다. 존 F. 케네디가 내세운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새로운 개척자)는 전후 냉전 체제의 한복판에서 미국의 이상주의를 상징하는 슬로건이자 세계 최강 대국으로 떠오른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케네디는 취임 연설에 핵전쟁 억지를 포함한 글로벌 리더십의 비전과 의지를 담았다.
“오랜 동맹국들에 약속합니다. 우리는 충실한 우방의 신의를 다하겠습니다. (…) 자유세계에 합류한 신생 독립국들을 환영하며 약속합니다. 식민 통치에서 벗어났는데 더 강력한 철권 독재가 들어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지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빈민가에서 궁핍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싸우는 이들에게 약속합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하겠습니다. (…) 주권 국가들의 연합체인 유엔에 약속합니다. 전쟁 수단이 평화의 수단을 훨씬 앞질러버린 시대에 유엔은 우리의 최후이자 최선의 희망입니다. (…) 우리를 적대하려는 나라들에게, 약속이 아니라 요청합니다. 과학이 풀어놓은 파괴의 어두운 힘이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모든 인류를 자멸로 몰아넣기 전에 양 진영 모두 평화를 위한 새로운 탐색을 시작합시다. (…)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십시오.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말고, 우리가 함께 인류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십시오.”
■ 넬슨 만델라
1994년 5월10일, 세계의 이목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집중됐다. 76살의 노전사 넬슨 만델라(1918~2013)가 이 나라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했다. 백인 지배 집단의 권력과 부의 독점을 수십년 지탱해온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 정책’의 종말, 나아가 모든 인간의 평등과 존엄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선포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앞서 1993년에는 인종주의 철폐와 평화적 통합에 기여한 공로로 백인 정부의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우다 1962년 수감돼 1990년 석방되기까지 28년이나 감옥에 갇혀서도 불굴의 투쟁을 이어왔다. 만델라는 취임 연설에서 벅찬 기쁨을 함께 나누며 통합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마침내 정치적 해방을 이뤘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을 빈곤과 수탈과 고통과 온갖 차별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것을 서약합니다. 우리는 완전하고 정의로우며 지속적인 평화를 건설할 것임을 다짐합니다. (…) 우리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든 국민이 어떤 두려움도 없이 당당히 걸어가는 사회, 양도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이 보장되는 ‘무지개 나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 모두에게 정의가 있기를.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우리 모두에게 몸과 마음과 영혼이 스스로를 성취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음을 우리가 깨닫기를. 이 아름다운 나라가 다시는, 절대로, 결코, 서로를 억압하고 세계의 천덕꾸러기로 치욕을 겪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2003년 1월2일, 브라질에선 최초로 노동운동가 출신 대통령 정부가 출범했다. 금속노조 위원장을 지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의 집권은 브라질 헌정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좌파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사건이자, 기득권 엘리트 집단이 아닌 민중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기념비적 이정표였다.
브라질은 1964년부터 1985년까지 군부 독재를 겪었다. 대선이 국민의 직접 선거로 치러진 것은 1989년부터다. 룰라는 이때부터 대선에 출마해 네번째 도전 끝에 당선했다. 새 정부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았다. 정경 유착과 부패, 극심한 빈부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 높은 실업률과 만연하는 빈곤, 외환 위기와 구제금융 사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였다. 룰라의 취임 연설에는 이런 위기를 극복해 가자는 의지와 호소가 담겼다.
“제가 임기를 마칠 때, 브라질의 모든 국민이 하루 세끼를 먹는다면 제 일생의 과업을 완수한 것일 겁니다. 새 정부의 중심적이고 영속적인 목표는 부패와 싸우고 공공기금 운영의 도덕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패와 조세 회피와 낭비가 브라질 국민에게서 그들 소유의 자원을 약탈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 오늘 우리는 브라질 역사의 새 장을 시작합니다. 계급, 인종이나 민족, 성별, 신념에 따른 차별이 없음을 확인하는 고귀하고 자랑스러운 국가로 활동합니다. (…) 오늘은 브라질이 자신을 재발견하는 날입니다. 앞으로 4년 동안 날마다 제가 브라질 국민 각자와 연결돼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신에게 지혜를 구합니다.”
■ 앙겔라 메르켈
2005년 11월22일, 독일 연방의회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첫 정책 연설을 했다. 메르켈이 당 대표인 중도우파 기민련(CDU-CSU),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이 이날 대연정에 합의했다. 앞서 9월 총선에서 기민련은 과반에 못 미치는 35.2% 득표율로, 2위 사민당(34.2%)보다 1%포인트 앞선 박빙의 차로 승리했다. 메르켈은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였다. 메르켈 연정의 출범은 독일 통일의 완성을 상징했고 유럽 정치에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을 알렸다. 메르켈은 연설에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의 가치와 통합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사회적 약자의 돌봄을 강조하며, 독일의 재도약을 선언했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누가 오늘 대연정이 결성돼 우리 나라를 미래로 함께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누가 사민당과 기민련이 공동 정책을 마련할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는 걸 생각이나 했을까요? 누가 여성이 정부의 최고위직에 임명될 거라고 예상했을까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내 일생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1989년(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까지 모든 길은 조국의 분단이 영원할 것 같았던 장벽 앞에서 막혔습니다. (…) 우리는 10년 안에 독일이 유럽의 3대 국가로 복귀하는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과감히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말했습니다. 장벽 건너편의 (동독)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름다운 음악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연설에서 ‘과감히 더 많은 자유’를 말하겠습니다. (…) 특별히 한 그룹을 언급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연대와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 아픈 사람, 젊은이, 노약자들입니다. 우리 사회의 휴머니티를 가늠하는 척도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습니다.”
■ 버락 오바마
2009년 1월20일,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회 앞 광장에선 미국 역사상 첫 아프리카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소수자 대표성의 상징성이 컸다. 오바마는 8년 재임 내내 명료하고 지적이며 확신에 찬 연설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취임 연설은 경제와 외교·안보, 사회 통합에 초점을 맞춘 정책 비전이 중심으로, 정서적 감동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가 당선의 의미를 담은 것은 2008년 11월5일 선거 당일 밤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서 한 당선 연설이었다.
“아직도 미국이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민주주의의 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이 그 모든 의문에 관한 답입니다. 청년과 노인, 가난한 자와 부자, 민주당과 공화당, 흑인과 백인, 라틴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인, 아메리카 원주민,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들, 모든 미국인이 내놓은 답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단순한 개개인의 집합이나 붉은 주(공화당)와 푸른 주(민주당)의 집합이 아닌 ‘아메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며 항상 그럴 것임을 알리는 메시지를 세계에 보냈습니다. (…) 오늘 밤 우리는 미국의 참된 힘은 우리 무기의 위력이나 부의 규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영원한 이상들, 민주주의, 자유, 기회, 그리고 불굴의 희망에서 온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 호세 무히카
지난 5월13일,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8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 무히카는 반자본주의 도시 게릴라 운동에 참여했고, 1970~80년대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14년이나 감옥에 갇혔다. 그가 2009년 대선에서 중도좌파 ‘광역전선’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 나이는 75살이었다.
무히카는 5년 임기 내내 대통령 관저가 아닌 수도 몬테비데오 외곽의 허름한 집에서 낡은 승용차로 출퇴근하고 텃밭 농사를 지었다. 대통령 월급의 대부분은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 가장 마음을 많이 둔 곳은 가난하고 취약한 하층민들이었다. 2010년 3월 취임 연설에서도 빈곤 퇴치와 인권 향상을 역설하며, 교육·에너지·환경·치안을 4대 중점 과제로 꼽았다.
“제 법률 지식이 부족해서 제가 당선자 신분에서 벗어나 대통령이 되는 정확한 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시점이 지금인지, 아니면 조금 뒤 대통령 상징물을 받는 순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당선자라는 호칭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호칭은 오직 유권자의 뜻으로 제가 대통령이 된 사실을 환기시키고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 헌법은 우리에게 감옥을 모욕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인종·성별·피부색의 차별을 인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고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진보와 변화를 원합니다. (…) 환경 보호와 생산 증대(경제개발) 사이의 긴장은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정부는 양쪽을 중재하며 결정하겠습니다.”
■ 김대중
1998년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1961년 군인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지 37년 만에 국민의 직접 선거로 군부가 권력을 잃고 정권이 교체됐다. 야당 지도자로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납치돼 일본 앞바다에 수장될 뻔했고(1973년 8월), 전두환 정권의 대법원이 내란 음모 조작 사건으로 사형 판결을 확정(1981년 1월)하는 등 숱한 박해와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마침내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을 때는 심각한 외환 위기로 나라 살림이 파탄 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때였다.
“오늘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 교체가 실현되는 자랑스러운 날입니다. 모든 영광과 축복을 국민 여러분께 드리면서, 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봉사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이 중차대한 시기에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외환위기가 닥쳐왔습니다. (…) 잘못은 지도층이 저질러놓고 고통은 죄 없는 국민이 당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는 아픔과 울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 노인이나 장애인들도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합니다. 저는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숨짓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 지금 우리는 전진과 후퇴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 우리 국민은 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선두에 서겠습니다. 우리 다 같이 손잡고 힘차게 나아갑시다.”
민주주의는 현대 국가에서 최선의 정치 체제이자 모든 사람의 보편적 권리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것을 성취하고 지키기는 쉽지 않다. 2011년 봄, 아랍 이슬람권 국가들에선 민중의 거대한 민주화 요구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갔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었다.
기자는 이집트 카이로로 급파돼 세계사적 격동의 현장을 취재했다. 30년째 철권통치를 하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은 전국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국민에게 무차별로 총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응했다. 불과 18일 새 최소 846명이 숨졌다. 사태를 관망하던 이집트 군부가 개입하면서 학살극은 일단 멈췄다.
수십만명이 모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시위에 11살 딸과 함께 나온 30대 여성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집트 국민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길 바라느냐”고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신세대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사고를 한다. 단지 정권을 바꾸거나 내각을 개편하는 것은 아마추어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어젠다를 원한다.”
2025년 봄, 뜻밖의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답변을 찾아야 할까?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과학·예술·역사·사회·철학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안들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 지식 그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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