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라는 일자리는…양질 일자리 창출 위한 광산구의 녹서
김용희기자
수정 2025-05-07 08:03등록 2025-05-07 08:00
‘왜 광주에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적을까요?’ ‘안전이 보장되는 일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광주광역시 광산구 주민들이 지난해 6월부터 8개월간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며 얻은 질문들이다. 광주 광산구는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탈세계화 등 복합대전환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지속가능 일자리 특구’를 추진하고 있다. ‘지속가능 일자리 특구’는 기존의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유치하는 방식이 아닌 현재의 일자리 질을 개선하는 개념이다. 환경·사회·노동권을 강화하는 기업에 혜택을 제공해 현재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에 더 나은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광산구는 지속가능한 일자리 특구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사회적 대화 자리를 마련했다 . 정부나 대기업, 노동자단체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시민이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해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구조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성과와 한계
광주에서는 10년 전인 2014년 7월 ‘광주형 일자리’라는 이름의 상생형 지역 일자리를 시도했다. 당시 박병규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전 노조위원장(현 광산구청장)이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에게 제안했고 윤 후보가 당선되며 급물살을 탔다.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 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혁’ 등 4대 의제를 정립한 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현대자동차의 캐스퍼 차량을 위탁 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라는 구체적인 성과를 얻어냈다. 2019년 9월 출범한 광주글로벌모터스는 노동자 평균 초임을 동종 업계 절반 수준으로 책정하는 대신 자치단체가 주거·보육·의료 등 사회적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근무 환경·조건 등은 광주시와 현대차, 노동계가 체결한 ‘노사상생발전 협정서’의 ‘상생노사발전협의회’를 거치도록 했다.
하지만 최근 노조와 갈등이 심화하며 ‘상생형 지역 일자리’라는 명칭이 무색해졌다. 회사 쪽은 ‘노사상생발전 협정서’에 나온 ‘누적 생산 35만대’(현재 17만대)까지는 노조 대신 상생노사발전협의회와 협의한다는 입장이고 노조는 헌법에 나온 ‘노조 할 권리’를 위반했다며 맞서고 있다.
갈등 요소는 회사 설립 이전부터 잠재했다. 협정서를 만들 당시 광주노사민정협의회는 35만대 조항 등 현대차가 제시한 방안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대화기구에서 빠졌고,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주도하는 노조가 설립됐다. 광주형 일자리의 약점으로 꼽혔던 노동자와 시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소홀히 한 결과였다.
시민이 원하는 일자리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 기구로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지역 노사민정협의회를 꼽을 수 있다. 1998년 출범한 노사정위원회가 모태다. 그동안의 사회적 대화는 고용노동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한국노총이 진행하며 협의 과정보다는 미리 정해놓은 답에 대한 합의가 목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협의 과정에서 빠진 채 끊임없이 이들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광산구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독일의 ‘노동 4.0’ 방식을 참고해 시민 요구를 바탕으로 한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광산구는 지난해 5월 ‘지속가능 일자리 사회적 대화 추진단’, 6월 ‘지속가능 일자리 의제 발굴단’을 구성하고 ‘광산시민 지속가능 일자리 대토론회’에 나섰다. 시민 109명이 참여한 의제 발굴단은 매달 한차례씩 모두 다섯번의 토론을 진행했고 이들과 별개로 ‘찾아가는 마을 지속가능 일자리 사회적 대화 마당’도 12차례 열었다. 이를 통해 총 1436개의 기초 질문을 도출해 20대 핵심 질문으로 압축했다.
광산구가 지난 3월 말 펴낸 ‘지속가능 일자리를 위한 녹서’의 20대 핵심 질문을 보면 ‘새로운 노동보상체계’ 부문에서는 △투명하고 공정한 임금 결정 △유사한 업무의 임금 격차 △임금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공공복지 강화에 대한 질문이 꼽혔다. 녹서는 영어 ‘그린 페이퍼’에서 나왔다. 정책이나 전략 수립 전 여러 이해관계자 의견을 담기 위한 공식 문서를 뜻한다.
‘일하는 방식의 개혁’ 부문에선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일자리 △일과 삶의 균형 보장 △자발적으로 일하는 문화 △안전 보장 등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일터 내 세대 간 갈등 △일터 내 원활한 소통 구조(이상 ‘일터 내 사회적 관계 재구성’ 부문) △여성·장애인·이주노동자에게 좋은 일자리 △고령자를 위한 맞춤형 일자리 △디지털·기후위기 전환에 대비하기 위한 교육정책 △마을 일자리에서 봉사와 업무의 불명확한 경계 해소 방안, 지자체·정부의 지원 방안(이상 ‘사회구조 혁신과 일자리 변동’ 부문)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광산구는 올해 7월까지 ‘녹서’의 답을 담은 ‘백서’(정책보고서)를 발간하고 8∼9월 구체적 실행 계획을 담은 청서를 제작해 내년부터 지속가능 일자리 특구 시범사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광산구는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열린 ‘차기 정부 일자리 정책 방향 제안을 위한 지속가능 일자리 정책 토론회’에서 녹서와 시민 참여형 사회적 대화를 소개했다. 박 구청장은 발표자로 나서 성장 크기에 반비례하는 삶의 만족도를 지적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해답으로 제시했고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노동포럼 대표) 등 참석 의원들은 지원과 관심을 약속했다.
명등용 광산구 지속가능일자리특구추진단장은 “독일은 백서 단계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진행했다면 광산구는 질문을 만드는 녹서 단계부터 시민이 참여했다”며 “기초지자체로서 제도와 예산 측면에서 어려운 점은 크지만 시민들과 밀접하다는 점과 마을 단위 특성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살린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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