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원전, 덤핑 수주 논란 빚더니 최종 계약도 불발
장박원 에디터
“한국 원자력발전 업계가 프랑스, 미국 등 원전 강호를 제치고 콧대 높던 유럽 시장에 깃발을 꽂았다. 오는 7일 체코 정부와 신규 원전 건설 본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프로젝트 사업비는 4000억코루나(약 26조 원)에 달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주축으로 한 ‘팀코리아’가 거둔 성과다. 탈원전으로 몸살을 앓던 국내 원전 생태계가 재도약하고 세계 무대로 지평을 넓히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한국경제신문 5월 2일자)
일주일 전 국내 주류 언론들은 한국의 체코 원전 수주 소식을 전했다. ‘쾌거’라는 논조 일색이었다. 체코 원전은 수주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자사의 원천기술을 도용했다며 문제 삼기도 했다. 프랑스전력공사(EDF) 등 경쟁업체들은 절차상 불공정한 점이 있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덤핑 수주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지율 하락으로 원전 수출 성과가 절실했던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든 수주하려고 했다. 윤석열이 파면된 이후에도 정부의 조급증은 계속됐다. 체코 정부와 최종 계약하기로 합의하고 체결 날짜가 잡히자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국내 언론들은 정부가 발표한 자료 그대로 보도하기에 바빴다.
윤석열 정부의 거의 유일한 성과가 될 뻔한 체코 원전 수주가 최종 계약을 앞두고 무산 위기에 직면했다. 체코 법원이 EDF가 제기한 계약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는 6일 외신과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7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열기로 했던 원전 수주 계약 체결 행사가 무산됐다고 전했다. 체코 법원이 EDF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본안 판단 때까지 신규 원전 건설 계약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체코 법원이 신규 계약 체결을 중지시킨 것”이라며 “체코 발주사와 대화하고 있지만 7일 행사 진행이 어려울 것”고 밝혔다. 한수원과 체코 발주사는 이날 양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약 서명식을 열 예정이었다. 법원 가처분 인용 소식이 전해진 시각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체코에 도착했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프라하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탑승한 상태였다. 정부 관료뿐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다수 동행했다.
체코 법원은 6일(현지시간) EDF가 제기한 행정소송의 정식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수원과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CEZ) 자회사 간 최종 계약 서명을 중지해야 한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 계약이 체결되면 프랑스 입찰 경쟁자인 EDF가 법원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더라도 공공 계약을 따낼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게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이유다. EDF는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기 전에 체코 반독점 당국에 이의 신청을 했으나 기각됐다. 그러자 체코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에 1GW(기가와트)급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추진 중이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가 수주 경쟁을 벌였다. 유럽에 짓는 원전인 만큼 EDF가 유리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원전 수출에 집착했던 윤석열 정부가 수주에 적극성을 보이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뒷말이 많았다. 지난해 1월 자격 미달로 탈락했던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자사의 원천기술을 사용했다며 시비를 걸었다. EDF는 수주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와 협상을 통해 ‘원전 산업 협력’이라는 모호한 합의로 갈등을 봉합했다. 원전 업계에서는 기술료 지급 등을 약속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게 사실이면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체코 정부가 원전 건설에 투입되는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유럽연합(EU)이 원전을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며 2031년까지 사고저항성핵연료(ATF)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는 점도 문제다. 이때까지 ATF가 개발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ATF가 개발되지 않으면 원전 건설이 지연되고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한마디로 체코 원전은 불확실성이 큰 프로젝트다. 체코 법원이 계약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위험성이 더 커졌다.
윤석열 파면과 조기 대선으로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정부가 ‘원전 수출’이라는 성과를 보여주려고 너무 서둘렀다는 비판도 나온다. 체코 법원이 EDF의 가처분을 받아들일 가능성까지 고려해 최종 계약 일자를 여유 있게 정해야 했다는 것이다. 만약 본안 판결에서도 계약에 문제가 있다는 법원 결정이 나온다면 체코 원전 수주는 최악의 경우 무산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윤석열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다 실패한 사업이 또 하나 추가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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