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떠나보낸 교사들 “언제까지 죽어야 하나... 다신 반복돼선 안돼”
동료 떠나보낸 교사들 “언제까지 죽어야 하나... 다신 반복돼선 안돼”
전교조, 창립 36주년 전국교사결의대회 개최
- 윤정헌 기자 yjh@vop.co.kr
- 발행 2025-05-24 18:24:16
- 수정 2025-05-24 18:41: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36주년 전국교사결의대회 ⓒ전교조 제공
24일 오후 2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36주년 전국교사결의대회가 열리는 서울 경복궁 영추문 앞 도로에 검은 물결이 생겨났다. 최근 제주에서 돌아가신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모인 3천여명(주최 측 추산)의 교사들이 만든 광경이다. 이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교사들이 죽어야 하나.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성토했다.
앞서 지난 22일 새벽 제주의 한 중학교 창고에서 40대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이었던 교사는 학칙을 위반한 학생을 생활지도 했는데, 최근까지 학생 가족으로부터 지속적인 민원을 받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의대회가 열린 영추문 앞 인근 도로 한편에는 집회 참가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과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임시분향소를 세웠졌다. 집회시간 임박했는 데도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동료 교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를 마친 교사들은 눈시울을 붉힌 채 연신 “너무 참담하다”, “안타까워서 어떻게 하냐”고 읊조렸다.경복궁 영추문 앞에 차려진 제주 교사 임시분향소 ⓒ민중의소리 교사들 “더 이상 교사 죽이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
이날 결의대회는 당초 계획과 달리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는 사망한 제주 교사에 대한 추모대회로, 2부는 전국교사 결의대회로 치러졌다.
추모식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신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승혁 전교조 부위원장은 “‘잘 될 거로 생각한다. 잘 자고 내일 보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제주의 선생님이 전날 학생과 나눴던 카톡 내용이었다”며 “그 누구보다 학들을 사랑하고, 악성민원에 괴로운 상황에서도 상대 학생을 성심성의껏 교육하기 위해 애썼던 내용이라 기사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전 부위원장은 “‘잘 될 거로 생각한다’ 우리 모두 학생을 대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선생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진상이 규명되고 부당한 교육활동 침해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그 대가와 책임을 지도록 여러분들이 끝까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고인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 ▲(교육당국)학교민원처리방안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 마련과 악성민원인에 대한 강력 대응 ▲(국회)악성민원인 처벌제도 마련을 위한 법 개정 등을 촉구했다.
김상미 전교조 제주지부 사무처장은 “사건 이후 지부로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그 시작은 ‘내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라는 짧지만 무거운 말이었다”며 “그 말속에는 교사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지금도 겪고 있을, 그리고 언제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현실이 담겨 있었다”고 우려했다.
김 사무처장은 “과도한 행정, 혼자 감당해야 하는 민원, 마음을 다한 학생 관계 속에서 돌아오는 차가운 비난. 그래도 우리는 언제나 아이들 곁에 있으려 애썼다. 그리고 고인은, 바로 그런 분이셨다”며 “요즘은 안심번호를 통해 개인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아도 됨에도 고인은 아이들과 진심으로 다가가고, 신뢰를 쌓기 위해 기꺼이 연락처를 공개하시면서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소통하며 지내셨다. 그래서 수없이 걸려 오는 전화를 모두 받아야 했고, 감당하기 힘든 말들을 감내해야 했다. 결국, 그 모든 고통을 혼자 감당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정말 묻고 싶다. ‘왜 고인은 끝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는가’, ‘왜 교사는 항상 혼자 싸워야 했는가’, ‘우리는 이 죽음 앞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며 “대선을 앞둔 이 시점. 후보들에게 외치고 싶다. 더 이상 교사를 죽이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제주 교사 추모대회 ⓒ전교조 제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36주년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는 참가자들 ⓒ전교조 제공 전교조, ‘교육 대개혁 실현’ 위한 10대 요구사항 발표
이날 추모대회를 마치고 진행된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교사들은 ‘교육 대개혁 실현’을 위한 10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 교사 교육권 쟁취 ▲교육권보장법 개정 ▲교사정원 학급 수 기준으로 법제화 ▲필수 교사 정원제 도입 ▲교원 임금 수당 인상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 ▲졸속 늘봄 지자체 이관 ▲졸속 유보통합 폐지 및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고교학점제 폐지 ▲성평등·기후정의 학교부터 실현 등이다.
박영환 전교조 위원장은 “국민의 삶을 위협했던 윤석열은 파면됐지만, 교사들의 삶은, 교육은 어떤가”라며 “서이초 투쟁에 수십만 교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되묻고 있다. 예비교사들은 자퇴하고 현장교사들의 탈출과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마음속에는 분노를, 한 손에는 우리의 요구를, 또 다른 한 손은 주먹을 쥐고 외치자.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교사 정치기본권을 쟁취하자. 학생도 교사도 죽어가는 절망의 시대를 끝내고, 교육대개혁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며 “저와 17개 시도지부장이 날카로운 송곳의 끝이 되어 뚫고 가겠다. 교육대개혁의 길로 함께 달려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교사들이 직접 경험한 교육 현장 발언이 이어졌다.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일반사회과를 가르치는 정환윤 교사는 “고교학점제와 연계된 수시 모집 전형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진로 변경을 저해한다”며 “고교학점제는 학생 개개인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 정서적 지원과 생활 지도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공립 유치원에서 일하는 홍양희 교사는 “아무런 기준 없는 예산 지원, 개인 소유 기관까지 무차별적인 통합을 통한 지원은 평등이 아니라 특혜”라며 “현장의 유치원 교사들은 이미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과의 유아모집 경쟁 속에서 민간 기관의 회계 비리, 교사 처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진정한 유보 통합은 국공립 확대와 사립 기관의 법인화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결의대회는 경복궁 영추문에서 시작해 안국역 사거리, 조계사 등을 거쳐 청계광장으로 향하는 행진으로 마무리했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36주년 전국교사결의대회 참가자들 ⓒ전교조 제공 결의대회 후 행진 중인 전교조 조합원들 ⓒ전교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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