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산망 마비, 단순 화재 아닌 ‘디지털 재난’ 경고음

 

임두만 | 2025-09-30 08:49:04



국가 전산망 마비, 단순 화재 아닌 ‘디지털 재난’ 경고음


지난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는 단순한 사고로 끝나지 않았다. 화염은 곧바로 냉각장치와 전산 장비를 마비시켰고, 정부는 모든 서버를 긴급 셧다운했다.

▲ 아직도 70여 개의 정부 서비스가 불통인 상태다    

그 결과 무려 647개의 정부 시스템이 일시에 멈춰섰다. 정부24, 나라장터, 모바일 신분증은 물론이고 우편과 택배 서비스까지 중단되면서 국민 생활 전반에 혼란이 파급됐다. 우리가 의존하는 ‘디지털 국가’의 민낯이 한순간에 드러난 것이다.

이후 정부는 항온항습기 복구와 보안·네트워크 장비 점검을 서둘렀고, 일부 시스템은 28일부로 재가동됐다. 29일에는 우편과 택배 서비스 정상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국민신문고, 국가법령정보시스템, 온나라 시스템 등 화재로 전소된 96개 시스템은 최소 2주 이상 복구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 불편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불의 사고’로 치부될 수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예견된 참사”라 진단한다.

첫째, 카카오 먹통 사태(2022년), 새올 행정 시스템 장애(2023년)를 겪고도 정부는 이중화 체계나 재해복구센터(DR)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 국가 핵심 인프라를 단일 거점에 집중시킨 채 “언젠가 생길 사고”를 외면한 것이다.

둘째, 윤석열 정부 시절 시스템 정비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노후 장비 교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실제로 이번 화재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된 배터리는 10년 이상 사용된 것으로, 지난 6월 점검에서 교체 권고가 내려졌지만 무시됐다.

셋째, 교체 작업조차 전문 인력이 아닌 제3의 하청업체 직원에게 맡겨졌다. 국가 정보 인프라마저 ‘외주 관리’라는 관행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이 일련의 사실은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과연 대한민국은 ‘디지털 선진국’을 자처할 자격이 있는가? 이번 사고는 단순한 행정 지연이나 불편을 넘어, 국가 신뢰와 안보의 영역까지 건드린다. 정부 시스템이 멈춘다면 세금 납부·법령 검색·공문 결재 등 행정 전반이 정지되고, 이는 곧 국가 운영의 공백을 의미한다. 전산망의 마비가 전기·수도·통신 마비와 다르지 않은 이유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국가 전산망은 ‘효율’이 아니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재난 대비를 위한 이중화·분산화 체계는 비용이 아니라 ‘필수 보험’이다.

둘째, 예산은 정치적 변수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눈앞의 재정 절감이 훗날 사회적 비용을 폭발적으로 키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전문 인력의 책임 체계가 확립돼야 한다. 핵심 장비 점검·교체를 외주 하청에 맡기는 구조에서는 언제든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이번 복구 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데이터 유실 여부, 복구 지연 원인, 책임 소재를 국민 앞에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단순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메시지로는 국민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이번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는 “디지털은 편리하다”는 믿음 뒤편에 “디지털은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던졌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화재가 아니라,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의 무능과 무책임이 빚어낸 ‘디지털 재난’이다. 이 경고음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면, 다음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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