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송금선”에 매달린 탈북민들

 한승동 에디터

sudohaan@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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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 입력 2025.09.15 20:40

  • 수정 2025.09.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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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탈북민 “가족 두고 온 죄책감 때문에 송금”

조사대상 탈북민의 40%가 최근 5년 북 가족에 송금

수수료와 뇌물 빼고 송금액의 60%만 가족 손에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 단속으로 송금망 70% 끊겨

통일부 “법 준수와 가족 지원 인도 측면 다 고려해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두만강 너머 함경북도 남양 시를 망원경으로 살펴보고 있는 사람. 가디언 9월 15일

탈북민인 박승환(가명) 씨는 혼자 있을 때 인터넷 ‘구글 어스’(Google Earth)에 들어가 자신이 13년 전에 떠나 온 북쪽의 집을 검색한다. 지붕이 수리됐는지 농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 변화들은 그가 보낸 돈이 북의 가족에게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돈을 보내는 것은 가족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돈을 보내지 못하면 형이 징집돼 러시아의 전투지역에 투입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 돈이 없으면 북의 가족이 형의 징집을 면제받기 위해 필요한 뇌물을 마련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가디언> “북한 가족 살리는 비밀 송금망”

영국 <가디언>은 15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금융통로 중의 하나”(one of the world’s most dangerous financial routes)에 매달려 서로의 생사와 생계를 확인해야 하는 한국의 ‘탈북자’들 얘기를 실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북한 가족을 살리는 비밀 송금망’(From Seoul to Pyongyang: the secret remittance networks keeping North Korean families alive)이란 제목의 이 서울발 기사는 조사대상 탈북민의 40%가 그 송금망을 통해 북의 가족에게 돈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대북 송금은 여러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남한 거주 탈북민들이 중개인들(대부분 동료 탈북민들)에게 돈을 건네면, 중개인은 원화를 중국 위안화로 환전한다. 이 돈은 다시 중국 중개인을 거쳐 북중 국경을 넘어 북으로 밀반입되고, 북한 중개인이 그것을 가족에게 전달한다. 북중 국경 근처에서 작동되는 중국 휴대폰을 통해 연락하며, 가족들이 받은 돈을 세는 영상을 보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2500명이 넘는 탈북민의 탈출을 돕고, 다수의 북쪽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법을 주선했다는 주수연 씨는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탈출하기 시작하면서 북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했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탈북민 3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지난 5년 동안 북한에 돈을 보냈다고 대답했다. 주 씨는 비밀송금에 필요한 수수료와 뇌물을 빼고 송금액의 약 60%가 가족들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남쪽 전망대에서 바라다보이는 북한의 선전마을. 가디언 9월 15일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송금

2012년에 탈북해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는 박 씨의 경우 한 번에 보통 200만~300만 원을 송금했다. 그는 “북한에서 흰 쌀밥은 특권과 안정의 가장 큰 상징”이라며, 자신이 보낸 그 돈은 “우리 가족이 1년 동안 흰 쌀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액수라고 했다. “한국에 온 뒤 처음 몇 년 동안은 가족들을 두고 온 것에 대한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박 씨는 “송금은 내가 멀리서나마 그들을 돌보면서 그 죄책감을 덜어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박 씨는 그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다 해봤다”고 했다. 대학 다닐 때는 한 푼이라도 더 남겨 가족에게 보내려고 저축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때도 많았다.

코로나 팬데믹 때 북 국경 폐쇄+한국의 송금단속

그런데 그 송금망이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때 북한이 국경을 폐쇄하면서 거의 파괴됐다. 게다가 2년 전부터 한국이 전례없는 송금 단속에 나섰고,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동안 송금을 못본 척했던 한국 경찰은 2023년에 탈북민 조직망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는 탈북민 보호 담당 경찰들이 탈북민들이 돈을 북에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면서 시작됐다. 국가안보 관련 차원에서 시작한 그 수사는 간첩 증거가 나오지 않자 금융범죄 수사와 기소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한국 법률상으로 환전업은 정부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지금도 남북이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여서 남에서 북으로 돈을 보내는 합법적인 통로가 없기 때문에 등록이 불가능하다.

최소 10명이 송금 관련 수사받고, 3명이 재판 중

그 때문에 적어도 10명이 대북 송금을 도운 혐의로 수사를 받았으며, 지금 최소 3명이 외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새로운 관련 수사는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

사기를 당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박 씨는 믿었던 브로커들이 영업을 중단하는 바람에 약 2년 동안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 없었다. 그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사용하면 거짓말에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송금 루트 70%가 사라져

주 씨는 “우리가 사용하던 통로와 네트워크의 약 70%가 사라졌다”고 했다. “이 네트워크를 재건하고 되찾는 것은 매우 어려워,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최근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며 남북간의 비밀 송금망은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 중의 하나가 됐다. 한국 정보기관은 오랫동안 이런 연결망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정보에 의존해 왔다.

주 씨는 “한국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를 이용해 왔다”고 했다.

일부 정치인들이 최근의 대북 비밀송금망 위기와 관련해 법률적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인요한 의원(국민의힘)은 인도적 목적의 소액 송금을 합법화하는 법 초안을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 “법 준수와 인도적 측면 다 고려해야”

통일부 관계자는 법적 제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 문제는 “외환거래법 준수와 가족 생계 지원이라는 인도적 측면을 모두 신중하게 고려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박 씨에게 이 문제는 매우 개인적인 일이다. 그는 최근에 결혼했지만 북의 가족들은 그 사실조차 전혀 모른다. 여전히 송금 방법을 찾고 있는 그는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는 좋은 소식을 북의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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