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학교급식노동자의 절규, ‘로봇팔’로는 해결 못 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②] 반복적인 폐암 산재, 대통령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
- 남소연 기자 nsy@vop.co.kr
- 발행 2025-09-15 17:34:47
- 수정 2025-09-16 05:46
부산교육청이 지난 12일 학교급식실에 도입한 '다기능 조리로봇' ⓒ부산교육청
‘조리 로봇(로봇팔)으로 학교급식노동자의 안전을 보호하겠습니다.’ 최근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떠들썩하게 홍보하는 내용 중 하나다. 튀김과 볶음, 국 등을 조리할 수 있는 조리 로봇을 급식실에 도입해,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2023년 서울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시범 도입한 데 이어 이달 부산교육청도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했다. 각 교육청은 조리 로봇 도입을 두고 “폐질환 예방 등 조리 환경 개선에 도움”을 주고 “조리 종사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학교급식실 내부에 있는 폐암 유발 물질(조리흄)을 외부로 배출하는 게 핵심인데 조리 로봇은 그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조리 로봇 도입으로 인해 업무 경감 효과는 있는지, 실제 조리흄 노출 빈도는 낮아지는지에 대한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반복적인 폐암 산재를 막기 위해 학교급식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지금과 같은 막연한 장밋빛 청사진이 아닌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종합 대책이다.관계 기관 책임 미루기 속 늘어나는 폐암 산재
‘범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이유지난 2022년,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급식 운영 촉구 기자회견에서 폐암으로 산재사망한 학교급식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2022.06.15 ⓒ민중의소리
일반 기업에서 지난 5년간 14명이 업무상 재해로 숨졌다면 어땠을까. 책임자들이 고개를 숙여 사죄하고, 서둘러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에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저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돌아오는 현실이다.
지난 7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은 처음으로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산재 대책을 두고 공개 토론을 벌이며 이같이 말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 이 예상할 수 있는 일을 방어하지 않고 사고가 나는 건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다. 아주 심각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닌가. 죽어도 할 수 없다, 죽어도 어쩔 수 없지 이런 생각을 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담하다.” 이 지적은, 비단 사고성 재해만이 아니라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과 같은 업무상 질병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문제가 처음 공론화 된 게 2018년의 일이다. 이로부터 7년이 지난 2023년에야 교육부는 ‘학교급식실 조리 환경 개선 방안’이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주된 내용은 ‘환기설비 개선 및 지원’이다. 당시만 해도 “2025년까지 6개 교육청이 개선 완료 예정이고 나머지 11개 교육청도 2027년까지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개선이 완료된 시도교육청은 단 한 곳도 없을뿐더러, 평균 개선율(41%)보다 지나치게 낮은 지역도 많아 2027년 내 개선을 확신하기에도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나 전국에서 두 번째로 학교급식실이 많은 서울 지역의 경우, 1,002곳의 개선 대상 학교 중 고작 117곳만 환기설비 개선이 이뤄졌다. 그사이 전국 곳곳에서 폐암 산재로 고통받는 학교급식노동자는 늘어나고 있고, 지난달에는 1명이 숨져 폐암 산재 사망자는 14명에 이르렀다.
환기설비 개선은 정부도, 노동조합도 공통으로 인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대책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속출하는 폐암 산재를 해결할 수 없어 종합적인 대책도 뒷받침돼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환기설비 개선조차 기약 없이 늦어지는 데다가 교육청과 교육부, 고용노동부는 서로에 책임을 미루며 ‘제 할 일은 다 하고 있다’는 식의 도돌이표 논의만 반복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단독] 14명 숨질 동안 ‘폐암 유발’ 학교급식실 개선은 ‘미적’…서울은 고작 12%)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곳도, 실효성 있는 종합 대책을 주도적으로 마련하는 곳도 없다 보니, 각 시도교육감의 ‘의지’에만 달린 문제로 방치돼 있다. 시도교육청마다 관련 대책이 모두 제각각인 상황에서 학교급식노동자는 자신이 일하는 지역에 따라 안전한 환경이 보장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범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야 정부 차원에서 환기시설 개선을 책임지고 추진할 수 있고, 이를 포함한 예방 대책과 사후 조치들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이재진 노동안전국장은 “각 시도교육청마다 똑같은 게 아무것도 없다. (폐암) 검진 주기도, 검진 비용 지원도 그렇다. 똑같이 산재 승인을 받고도 사후 조치에 대한 부분도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환기시설 개선도, 피해자 지원도 관련 내용들은 어느 정도 다 마련돼 있다. 그것들이 권고 수준에만 머물러 있거나 각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구체적으로는 폐암 유발 물질인 조리흄을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계 법령상 ‘유해인자’로 규정해야 한다고 학교급식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조리흄이 유해인자로 지정될 경우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등 체계적인 대책 마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정부는 현재 조리흄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며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이민정 노동안전국장은 “결국 조리흄이 법적으로 관리돼야 할 유해 물질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청별로 노동조합이 협상을 통해 하나씩 관련 대책을 만들어가는 상황”이라며 “(환기설비 개선 등) 교육부 대책은 의무가 아닌 권고일 뿐이다.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교육부나 교육청 모두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종합대책을 세우고 최우선적으로 했으면 이렇게까지 지연되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의 생명과 안전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성토했다.
조리흄 노출 빈도를 줄이기 위해선 근본적인 ‘인력 충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특히 학교급식실의 경우 다른 공공기관(65.9명)에 비해 급식노동자 한 명이 책임져야 할 식수인원(114.5명)이 두 배에 달한다. 일상적인 산재 위험과 고강도, 저임금 노동에 학교급식노동자 신규 채용은 전국적으로 미달되고, 결원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이를 해결할 적극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국회에 출석한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한 그간의 정부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1인당 식수인원’에 대해 묻자, 이 전 장관은 “정확한 숫자는 제가…(알지 못한다)”라며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장관이 생각하는 적정 식수인원을 묻는 말에도 “20~30명”이라고 답하며, 학교급식실 현실과 동떨어진 답변을 내놨다.1년 넘게 계류 중인 학교급식법 개정안,
노동계·시민사회, ‘제2의’ 대국민 운동 돌입작업복을 입은 학교급식조리사들이 지난 7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급식 노동자 건강과 안전 확보를 위한 학교급식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07.02 ⓒ민중의소리
국회가 입법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학교급식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현행 학교급식법은 ‘학교급식의 질 향상과 학생들의 식생활 개선’만을 목표로 하는데, 여기에 학교급식실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도 담아내는 것이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학교급식도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학교급식노동자의 건강 보장을 위한 책임을 부여하는 내용을 핵심적으로 담았다. 또한, 교육감 산하 학교급식위원회에서 1인당 식수인원과 학교급식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에 대한 사안을 논의하도록 했으며, 학교급식노동자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책임자에 대해 징계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조항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22대 국회가 개원한 직후 발의됐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해당 개정안에 대한 전문위원 검토 보고서를 보면, 윤석열 정권의 교육부는 개정안의 주요 내용에 대해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안전과 건강 등에 관한 사항은 산안법 등 관계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어서”, “다른 노동관계 법령과의 이견 발생으로 혼선이 야기될 수 있어서”, “식수인원을 획일적으로 정하는 건 현실성이 결여될 수 있어서”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 정혜경 의원은 15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학교급식노동자들의 문제를 보면, 책임을 져야 하는 교육부는 노동부에 떠넘기고, 노동부는 교육부에 떠넘기는 전형적인 상황”이라며 “폐암 산재 문제가 드러난 건 오래됐지만, 이렇게 ‘핑퐁’하면서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고, 그동안 학교급식실은 다른 곳보다 5배 정도 산재율이 높은 상황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정 의원은 “교육부와 노동부 사이, 또 교육부와 교육청(등 여러 곳이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대통령이 나설 수밖에 없다”며 “산재 근절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말이 진심이라면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하반기 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고민정 의원도 지난 7월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아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고 의원의 개정안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학교급식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명시했으며, 교육부 장관에게는 학교급식노동자 등의 의견을 들어 3년마다 학교급식에 관한 기본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나아가 교육부 장관이 1인당 식수인원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 및 조사를 시행토록 했으며, 그 결과를 공표하도록 의무를 부여했다.
시민사회와 노동계도 학교급식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 당장 오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전한 노동, 행복한 급식’ 100만 청원 운동 돌입을 선포하고, 학교급식법 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쓰러지는 현실에서는 무상급식도 지속될 수 없기에 ‘제2의 무상급식 운동’과 같은 대국민 운동에 나서겠다는 목표다.관련 기사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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