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기업이 불러온 재앙... '가뭄' 강릉에 더 큰일 생길 수도
[강인규 리포트] 물 부족 사태의 주범이 된 인공지능 데이터 센터, 장기 대책 세워야
25.09.16 07:00ㅣ최종 업데이트 25.09.16 07:00
강릉이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12일 비가 내려 상황이 다소 나아졌지만, 물 부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강릉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다 결국 재난사태를 맞았습니다. 강릉 일대 식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한계 수준인 15% 이하로 떨어지면서 식수마저 끊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8월 30일 긴급히 저수지를 방문해 재난사태 선포를 지시했습니다.
강릉의 물 부족 사태로 전국에서 소방차 71대와 군부대 물탱크차 141대가 동원되었고, 독도 경비함까지 출동할 만큼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재난사태'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아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이 필요할 때 선포됩니다. 과거에 재난사태는 대규모 기름 유출이나 대형 산불 발생 시에 선포되었으며, 가뭄으로 인한 재난사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 부족 문제는 동해안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30년간 기온은 지속적으로 상승한 반면, 강수량은 점차 감소해 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4년에는 강원도와 경기도가 심한 가뭄을 겪었고, 2015년에는 충청북도와 충청남도까지 가뭄이 확산되었습니다. 이후 2017년에는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등 남부 지역 전반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최근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까지 광주와 전남 지역에는 기상 관측 이래 최장기간인 227.3일간 가뭄이 이어지다가, 올해는 강릉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건강 및 기후 변화에 관한 란셋 카운트다운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가뭄 발생 지역의 면적이 3배나 늘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기후변화로, 이 문제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세계자원연구소(WRI)는 한국을 "중간에서 높은 수준의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합니다. 물 스트레스(Water Stress)란 수자원에 비해 물 사용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비율이 클 수록 물 부족 위험도 높아집니다. 한국에서 상시화된 집중호우도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줍니다.
단시간에 퍼붓는 비와 가뭄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이 두 현상은 밀접히 연결돼 있습니다. 가뭄이 지속되면 땅이 건조하고 단단해집니다. 이 상태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채 표면을 따라 흐르게 되지요. 그 결과 홍수 위험은 커지고, 지하수로 유입되는 양은 줄어듭니다. 결국 빗물은 땅속에 저장되지 못한 채 하천을 타고 바다로 흘러가 버립니다.
게다가 집중호우는 댐과 같은 인공 저장 시설에 갑작스럽고 큰 수량 변화를 유발해, 물 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국지성 호우가 실질적인 수자원 확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이지요. 챗지피티 등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곳곳이 데이터센터 조성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데이터센터가 물 부족 문제를 심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입니다. 공교롭게도, 현재 가뭄으로 고통받는 강릉에도 대규모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물 부족과 무슨 상관이냐고요?
인공지능이 막대한 전력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챗지피티, 제미나이 등 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인공지능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실시간으로 처리합니다. 이 작업을 위해 고성능 그래픽 처리장치(GPU)가 대량으로 사용되는데, 이 장치들은 전기만 많이 쓰는 게 아니라 고온의 열도 쏟아 냅니다.
그래픽 처리 장치는 일정 온도 아래로 식혀주지 않으면 수명이 급격히 줄기 때문에, 계속 냉각장치를 가동해야 합니다. 생성형 인공지능 이전에도 데이터센터가 존재했고, 서버를 식히는 냉각장치도 오랫동안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데이터센터는 인터넷이 대중에 개방된 1990년대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대량의 서버를 갖춘 대규모 시설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상업적 클라우드 서비스가 등장한 200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클라우드', 즉 '구름'이라는 이름과 달리, 클라우드 서비스에 필요한 정보는 지상에 세워진 데이터센터 안의 컴퓨터에 저장됩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사용자가 서버나 저장장치를 소유하지 않고, 원격 접속을 통해 저장공간이나 소프트웨어 등을 필요할 때 빌려 쓰는 방식을 말합니다. 네이버나 다음 이메일,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의 동영상 플랫폼, 멜론이나 스포티파이 등의 음악 서비스,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가 모두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입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인터넷 환경의 중추로 자리 잡으면서 지난 20년간 데이터센터 건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설들이 물 부족 위기를 부추기는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2022년 말 챗지피티가 공개되면서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이 일었고, 이후 데이터센터의 규모와 에너지 소비 양상은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네이버, 다음, 구글 등의 검색 엔진을 통해 정보를 찾았지만, 이제는 챗지피티에 문의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이 경우 기존 웹 검색에 비해 10배에서 40배에 달하는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과거에는 대개 팬을 돌려 공기로 냉각하는 방식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인공지능용 설비는 물로 식혀야 하고, 그것도 많은 물로 식혀야 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2024년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과 함께 챗지피티 등 인공지능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물을 소비하는지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챗지피티-4 모델로 100단어로 된 이메일을 작성할 때 0.14킬로와트의 전력이 소모되는데, 이는 '엘이디(LED 발광다이오드)' 전구 14개를 1시간 동안 켤 수 있는 양입니다. 이때 냉각수로 사용되는 물은 약 519밀리리터로, 흔히 마시는 생수 한 명보다 많은 양입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오픈에이아이, 아마존, 엑스에이아이(xAI) 등 주요 테크 기업들은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세우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지역은 산업 시설 유치에 적극적인 곳이 많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세금 감면 등 혜택을 베풀며 수용하지만, 막상 시설이 들어서고 나면 지역 주민들과 충돌을 빚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수질 악화나 고갈, 전기 요금 폭등, 전력 공급 불안정으로 인한 정전 사태 등을 둘러싼 불만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전기요금 상승과 생활용수 고갈을 부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가정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주범이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카네기 멜런 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분석을 인용해, 2030년까지 전국 평균 전기 요금이 8% 오르고, 버지니아 등 일부 지역은 25%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유는 데이터센터의 전력사용량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리건 주 일부 지역은 지난 4년간 전기요금이 무려 50%나 올랐습니다. 오리건 시민 전력 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데이터센터가 증가하면서 전력망에 과부하가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한 시설 투자 비용이 시민들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시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은 이곳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는 현재 루이지애나에 첨단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발전소의 전력 공급량만으로는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기엔 부족합니다. 전력회사에 추가 발전소를 건설하도록 요구했고, 현재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문제는 이 추가 비용을 수혜자가 전액 부담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새 발전소를 짓는데 약 32억 달러(약 4조 4000억 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가운데 4억 7000만 달러, 즉 6500억 원 이상이 전기요금에 포함돼 주민들에게 청구될 예정입니다. 인공지능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삼키는지는 테크기업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메타는 미국에서 최소 두 곳에 '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데,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이후 첨단 인공지능 훈련에 얼마나 큰 에너지가 필요한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인공지능 모델 하나를 훈련하는 데 필요한 전력이 제법 큰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 하나가 생산하는 전력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다소 과장돼 있지만, 실제로 1기가와트급 발전소는 80~90만 명 인구의 도시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데이터센터가 1년 내내 최대치로 가동될 경우, 이 시설 한 곳이 성남이나 수원에서 사용되는 총 전력량과 맞먹는 전기를 소비하게 됩니다. 데이터센터는 전기요금 인상뿐 아니라, 전력망 과부하로 인한 전력공급 불안정 문제도 일으킵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탄소 배출을 늘려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이로 인해 기온 상승과 가뭄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대량의 물을 소비해, 물 부족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지요. 많은 데이터센터는 생활용수 수준으로 정화된 물을 사용하는데, 염분이나 미생물 같은 불순물이 냉각 시스템의 배관, 펌프, 열교환기를 부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데이터센터와 주민들이 물을 놓고 갈등하는 사태가 늘고 있습니다. 조지아 주 뉴턴 카운티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선 후, 인근 주민들이 물 부족 사태를 겪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 데이터센터 한 곳이 사용하는 물의 양이 카운티 전체 사용량의 10%에 달할 만큼 막대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매일 50만 갤런, 다시 말해 거의 2백만 리터에 가까운 물을 쓰는데, 이것은 500밀리리터 생수병으로 370만 병이 넘습니다. 부산 시민들에게 매일 생수 한 병씩 주고도 남는 양이지요.
인공지능, 기후위기와 물 부족을 감수할 만큼 중요한가?
전 세계가 인공지능으로 떠들썩합니다. 기술에 대한 열망이 강한 나라답게, 한국의 열기는 그 어느 나라보다 뜨겁습니다. 새 정부 역시 독자적인 인공지능 개발을 '주권' 차원의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고 있고,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경제를 다시 도약시키기 위한 핵심 정책 수단으로 이 기술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인공지능은 기술 주권을 지켜줄 '은인'이자, 한국 경제를 다시 도약시킬 구세주일까요?
제가 우려하는 점은, 한국 사회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장밋빛 전망 외의 목소리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인공지능의 종주국으로서 이 기술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갖고 있지만, 동시에 이 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뚜렷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데이터센터의 전력 및 물 자원 소비 문제는 제가 현재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라면, 이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정확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테크 기업들이 과장된 보도자료를 일상적으로 내놓고, 언론은 이를 여과 없이 전달하면서 허황된 기대를 증폭시키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를 휩쓴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 "자율주행", "메타버스" 광풍은, 기술에 대한 무비판적인 사고가 공허하고 무책임한 약속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 줍니다.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려온 강릉 지역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발상 역시 현실 인식의 결핍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는 '인공지능 3대 강국'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보다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막대한 자원을 고갈시키며 기후위기를 가속화는 인공지능 모델을 벗어나, 지속가능한 새 모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우선 인공지능에 대해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픈에이아이의 샘 올트먼마저 인공지능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와 "거품"을 우려할 정도니까요. 현실을 봐도 그렇습니다. 매사추세츠 공대(MIT) 미디어랩은 2025년 보고서에서, 기업들이 생성형 인공지능 도입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해 왔지만, 95%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2024년 업워크가 발표한 보고서 내용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업 최고경영진의 96%가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직원들의 업무 생산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직원의 77%는 인공지능이 업무량을 증가시켰을 뿐, 생산성은 오히려 저하됐다고 답했으니까요.
흥미롭게도, 챗지피티가 최단기간에 최대의 사용자를 확보한 시점은 4월 "지브리 스타일" 등 이미지 생성 기능을 추가한 직후였습니다. 당시 1시간 만에 무려 100만 명이 새로 가입했지요. 챗지피티가 처음 공개돼 세계적 화제가 모았을 때도 같은 수의 사용자를 모으는 데 5일이 걸렸습니다. 이 사실은 다수 사용자들이 생성형 인공지능을 생산적 도구보다는 소비형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한국에서도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줘" 인기가 대단했지요. 당시 꽤 많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 프로필을 지브리풍으로 바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미지를 지금도 쓰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불과 넉 달 전의 일인데 말이지요. 인공지능 생성물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기에 쉽게 유행하지만, 누구든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열기도 빠르게 식습니다.
챗지피티 이미지 생성 모델 출시 이후 한국 일일 사용자 수가 125만 명까지 늘었다는 추산도 나왔습니다. 어쩌면 올여름이 그토록 뜨거웠던 데에는, 급속히 인기가 식으며 사라져 간 그 이미지들이 한몫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미지 하나에 휴대전화를 1~3번 충전할 수 있는 전기가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소셜미디어와 기억에서 사라졌을망정, 그 이미지들이 결코 값싸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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