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 관련 노동부 ‘3대 패악질’ 바로 잡아야
안종주 진단
올 한여름 더위는 ‘덥다’라는 말보다는 ‘푹푹 찐다’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전국이 가마솥 ‘찜통더위’로 몸살을 앓게 되면. 농민, 특히 이들 가운데 노인과 고령‧외국인 노동자가 온열질환 사망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10명가량이 이미 숨졌고 비슷한 죽음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라도 이 행진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일터에서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말은 “사업주나 공무원 자신 또는 가족이 그 현장에서 일한다는 생각으로 현장의 위험을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안전장치와 보호장구를 노동자가 갖추고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 이들이 충분한 휴식과 안전교육을 받아 위험 회피 행동을 하게끔 해야 한다”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딴판이다. 업종별, 기업규모별, 그리고 회사별로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신경 쓰지 않는 사업주가 여전히 많다.
“규개위 공무원들 뙤약볕에 20분만 서 있어 보라”
이번 주부터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때는 2시간 일할 때마다 최소 20분간 휴식 시간을 주도록 의무화됐다. 우여곡절을 겪은 뒤 뒤늦게 나온 결정이다. 지난 7일 오후 구미시 산동읍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베트남 국적 청년 노동자(23)가 지하 1층에서 앉은 채 쓰러져 숨진 사건이 계기가 돼 긴급하게 이루어진 조치이다. 이날 구미시의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7.2도였고 숨진 노동자 체온이 40.2도로 측정됐다고 하니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폭염에 앞서 규제개혁위원회 행정사회분과위원회는 지난 4월 25일과 5월 23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에 대해 두 차례 규제 심사를 벌였다. “(노동부가 올린)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2시간 이내 20분 이상 휴식’ 보장 규칙 개정안은 영세사업장에 과도한 규제”라며 철회를 권고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규개위원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좋은 규제 완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규제 완화였다.
베트남 청년 노동자 사망을 계기로 노동단체가 전향적 폭염 대책을 규개위와 정부 쪽에 강하게 주문하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여당은 연일 폭염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일터 온열질환 발생 예방을 위한 규칙 개정안을 거부해온 규개위를 향해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질타했다. “(규개위 공무원) 본인들이 뙤약볕에 20분만 서 있어 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윤석열 정부의 산업안전보건 3대 ‘패악질’
규개위는 노동단체와 정부·여당, 그리고 여론의 따가운 질책에 마지못해 자신의 결정을 번복했다. 만약에 규개위원들이 폭염 속에 건설 현장에서 일은커녕 20분간 가만히 서 있기만 했어도 ‘과도한 규제’ 운운을 입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일은 책상물림으로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가를 보여준 좋은 본보기였다.
살인적 폭염에 일터는 물론이고 농촌에도 비상이 걸렸다. 예년에도 그랬지만 폭염의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농촌이고 피해 대부분이 60~80대 노인들이다. 이들은 판단력도 떨어지고, 흩어져 개별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실상 파악도, 안전교육, 홍보 모두 다 어렵다. 위험 발생 시 조치도 어렵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이 아닌 패러다임을 바꾼 대응책이 필요하다.
일터에서는 그동안 ‘물·그늘(바람)·휴식’이란 온열질환 3대 예방수칙을 강조하고 ‘냉방버스 도입’ ‘자가체온확인 패치’ ‘쿨링 조끼·토씨’ ‘얼음물 제공’ ‘이동식 에어컨’ ‘염분·포도당 알약’ 등으로 폭염 대응을 해왔다. 이는 나름의 성과로 이어졌지만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는 많이 모자란다. 더 단단하고 효과적인 대책이 추가로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권한대행 시절 포함)가 산업안전보건 제도나 행정‧사업과 관련해 그동안 비교적 잘 이루어져 왔던 것마저 헝클어놓은 것은 폭염 대책 말고도 여럿 더 있다. 대표적으로 산업안전보건기술지침(코샤가이드, KOSHA Guide) 등 안전보건 기술표준 제정을 관장하는 주체를 안전보건공단에서 고용노동부로 바꾼 것과 일터 안전지킴이 인력과 예산을 깡그리 없앤 것, 그리고 노동단체와 언론사와 홍보‧협력 체계를 구축해 안전문화를 확산해오던 것을 백지화 해버린 것을 꼽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산업안전보건 3대 ‘패악질’을 차례대로 톺아본다.
노동부가 저지른 ‘쿠데타 식 안전보건 행정’
먼저 노동부의 안전보건 기술표준 행정의 불법성 문제를 진단해보자. 노동부는 관련 법령에 따라 줄곧 공단이 책임을 맡아 해오던 표준제정 업무를 관련 법령을 개정하지 않고 2024년 빼앗아 버렸다. 그 사유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명백한 불법적 조치이며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는 물론이고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노동부가 전문성 강화를 위한 영역 확장의 일환으로 이런 일을 벌였다는 말이 돌았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65조(권한 등의 위임·위탁) 제2항은 ② 고용노동부장관은 이 법에 따른 업무 중 다음 각 호의 업무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단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영리법인 또는 관계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 [개정 2023.8.8.]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2항의 3호는 제13조제2항에 따른 표준제정위원회의 구성·운영이다.
이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116조(업무의 위탁) 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 고용노동부장관은 법 제165조제2항제2호부터 제4호까지, 제6호부터 제10호까지, 제12호, 제15호, 제16호, 제18호부터 제30호까지, 제32호, 제33호 및 제35호부터 제41호까지의 업무를 공단에 위탁한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제165조 제2항 3호인 표준제정위원회의 구성·운영은 관련 법과 시행령에 따라 공단이 하게끔 되어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 자신들이 강제로 공단의 법적 위임 업무를 빼앗는 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노동부 관련 부서는 이들 시행령을 먼저 개정하지 않고 시행령의 하위단위인 노동부 내규를 개정해 표준제정 업무를 막무가내식으로 가져갔다. 명백한 불법이었다. 그 뒤 이를 기정사실로 만들기 위해 사후에 시행령을 개정하는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2023년 말 당시 법제처 담당자가 상위법을 개정하지 않고서는 시행령 개정이 어렵다고 해 노동부의 시행령 개정은 무산됐다. 노동부가 저지른 ‘쿠데타 식 안전보건 행정’을 법제처가 ‘진압’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노동부는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지금까지 깔아뭉개고 있다. 법제처마저 무시해 버렸다. 표준제정위원회 구성·운영은 지금도 불법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불법을 감독하고 처벌하는 일을 해오고 있는 노동부가 불법 산업안전보건 행정을 저지르고 있다. 이재명 정부와 국정기획위원회 차원의 철저한 조사와 감사, 그리고 수사당국의 수사가 필요하다.
윤석열 취임하자마자 일찌감치 없애버린 일터 안전지킴이
둘째, 윤석열 정부는 일터 안전지킴이 제도를 임기 첫해 없앴다. 이 제도는 건설·조선·제조업 등 산재·중대재해가 일어날 위험성이 큰 작업장에 과거 이들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베테랑 노동자나 간부 출신을 보내 안전지도를 하게끔 하는 것이다. 은퇴자들의 일자리도 늘리고 재해예방에도 도움을 줘 일터 안전을 꾀하는 일석이조격 정책사업이었다. 사업 호응도와 만족도가 좋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만든 노인 일자리를 대폭 없애면서 안전지킴이 사업도 함께 싹 지워버렸다.
공단은 재해 발생이 많은 건설·조선 부문만이라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으나 ’마이동풍‘이었다. 환경노동위원회 일부 위원과 일각에서는 공공기관보다는 지방자치단체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책임 의식을 갖고 이를 할 수 있는 곳은 한두 곳에 지나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이 제도를 없앤 진짜 배경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터 안전지킴이 제도의 허와 실을 냉정하게 살핀 뒤 이 제도가 필요하다면 부활시켜야 한다. 그 어떤 제도도 늘 공과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만약에 부활시킨다면 과거보다 진일보한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으로 공단이 노총 등 노동단체와 안전보건단체‧언론사와 홍보‧협력체계를 나름대로 잘 구축해 안전문화를 확산해오던 것을 백지화해버린 것이다. 노동부가 구호로는 안전문화 확산을 외치면서도 실은 안전문화를 포기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공단은 고용노동부의 승인을 받아 매년 해왔던 일이었고, 전년도에 국회 심의까지 거쳐 노동계에 약 5억 원, 안전보건단체와 언론사에 약 15억 원 등 모두 20억 원가량의 예산을 확보한 바 있다.
사업도 못한 채 사업비 전액을 물어주게 만든 노동부
이 사건의 발단은 이 사업 자체에 있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노동계와 극한 대립을 벌였다. ‘건폭몰이’와 ‘노조 회계 투명성’ 문제로 시끄러웠다. 고용노동부는 회계장부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고발 등 각종 불이익을 주겠다고 천명했다. 이 와중에 노동부는 공단이 노동계‧언론계와 함께 협력체계를 구축했던 각종 산재 예방 캠페인 등 안전문화 협력‧확산 사업을 백지화할 것을 공단에 요구했다. 하지만 이미 계약서에 서명까지 하고 이를 주고받은 뒤였다. 하지만 노동부는 회계장부를 공개하지 않는 단체한테는 사업비를 주지 못하도록 못박은 공문까지 보내왔다.
민주노총은 불쾌하게 여겼으나 포기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상대적으로 사업비(4억 원가량)가 많고 관련 인력도 제법 있어서 그런지 부당하다며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공단은 공단 비상임이사를 보내고 있는 한국노총 간부들을 만나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그들도 배후에 노동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서로 잘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원수‘가 되어도 좋다는 식의 안전문화 동반자 포기 결정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전문화 확산의 최고 책임부처가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정 갈등으로 안전보건단체‧언론사도 애꿎게 뒤통수를 맞았다.
1차 소송은 지난 4월 한국노총의 승소로 결론 났다. 공단은 항소하더라도 이기기 쉽지 않고 한국노총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재판을 포기했다. 공단은 노총이 요구한 청구액 3억 2천만 원과 그동안 이자를 보태 4억여 원을 한국노총에 지급했다. 사업을 전혀 하지도 못하고 사업비 전액에 해당하는 비용을 준 것이다. 이 또한 노동부에 대한 철저한 감사를 통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는지 밝혀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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