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장관직 걸어라"…역대 정부서 처음 보는 국무회의

 김호경 에디터

haojing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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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 입력 2025.07.29 22:40

  • 수정 2025.07.30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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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산업재해와의 전쟁'에 장관들 초긴장

국무회의 사상 첫 생중계…"산재 사망 근절 원년"

"작업장에 안전 조치 안 하면 고액 과징금 제재"

"사망 사고 반복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노동부 장관에 "산재 안 줄면 진짜 직을 걸어야"

웃음기 하나 없는 엄중한 지적과 치열한 논의

"해당 기업 주가 폭락하게 해야…대출 제한도"

"중대재해 발생하면 국가계약 입찰도 못 하게"

"아예 인허가·면허 통째로 취소하는 방안 검토"

취임 이래 전 부처에 '특단의 조치' 지속적 독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중대재해 근절대책 토론을 하며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5.7.29. 연합뉴스

"(작업장에서) 안전 조치를 안 한 사실 자체에 대한 제재 조항은 없어요? 사고 났을 때는 그렇고. 근데 그걸 안 하면 어떻게 한다는 제재 조항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사실 우리의 문제죠. 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그걸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이렇게 지적하자 좌중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중대재해 근절 대책'을 주제로 심층 토의를 벌인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안전 조치를 제대로 안 한 사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를 강조하며 관련 법 조항을 거듭 물었지만 참석한 장관들 중 누구도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답답해하다가 "저도 문제다. 저는 제재 조항이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라며 "그러니까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면 굳이 (안전 조치를) 안 해도 사고만 안 나면 돈 버는 거고, 사고 나면 누가 대신 처벌받고, 그냥 (과징금) 딱지 하나 받고 끝나버리면 평소에 돈 들여서 할 필요가 없다. 걸려도 제재가 별로 없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해 "안전 조치를 평소 안 하는 것에 대한 제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얼마나 강화할 건지 (강구해달라). 형사처벌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걸 가지고 징역을 살게 할 수도 없고"라며 "결국은 과징금이나 벌금을 고액으로 하든지 해서 (안전 조치를 안 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의 몇 배를 물리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그걸 연구해보라"고 당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 근절대책 토론을 하고 있다. 2025.7.29. 연합뉴스

이날 국무회의는 이 대통령 취임 이후는 물론 역대 정부 최초로 KTV와 유튜브 등을 통해 국민에게 생중계됐다. 이 대통령이 회의 시작 전에 '중대재해 근절 대책은 국민 모두에게 가감 없이 알려야 할 사안'이라며 생중계를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통상 모두발언만 녹화해서 공개하고 비공개회의로 전환하던 전례와 달리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이 주요 정책 수립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 약 1시간 20분 동안 생생하게 전파를 탔다.

그 자신이 산재 피해를 겪은 노동자 출신인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부터 "어제 보니 포스코이앤씨(ENC)라는 회사에서 올해 들어 다섯 번째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며 "살자고, 돈 벌자고 간 직장이 전쟁터가 된 것 아닌가. 어떻게 동일한 사업장에서 올해만 5명이 일하다가 죽을 수 있느냐"고 거듭 분노했다.

이어 "며칠 전에도 상수도 공사하는데 맨홀에 들어갔다가 2명인가 질식 사망했다. 그 이전에도 무슨 큰 통에 수리하러 들어갔다가 또 질식 사망했다"면서 "폐쇄된 공간에 일하러 들어가면 질식 사망하는 사고가 많다는 건 국민적 상식인데, 어떻게 그걸 보호장구 없이 일을 하게 하나. 사람이 일하다 죽는 것에 대한 감각이 없는 건지, 사람 목숨을 무슨 작업 도구로 여기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개탄했다.

나아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 이를 방어하지 않고 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다.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닌가"라며 "죽어도 할 수 없다, 죽어도 어쩔 수 없지, 이런 생각을 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로 참담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안전 (조치)는 당연히 해야 할 의무지 이걸 비용으로 생각해 아껴야겠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된다. 돈보다 생명이 귀중하다는 생각을 모든 사회 영역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 좋겠다"며 "산재 사고, 특히 사망 사고는 한 부처만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올해가 산재 사망 근절 원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오늘 토론을 시작해 보겠다"고 장관들에게 토론 의제를 명확히 제시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산업재해 관련 발표를 듣고 있다. 2025.7.29. 연합뉴스

첫 번째 보고자로 나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올해 1분기 사망자 수가 137명이다.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며 중대재해 현황을 설명한 뒤 "재해가 발생해도 기업의 실질적인 손실이 크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수사와 판결에 상당 시간이 소요되고 솜방망이 처벌이라 중대재해법의 실효성 강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산재 사망 사고 발생 시 ▲징벌적 손해배상 ▲공공입찰 참가 제한 ▲영업정지 등을 병행 검토하고 관계부처와 불법 하도급 근절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브리핑했다. 건설업에서는 산업보건안전관리 의무를 원청 기업에 부여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이 지시했던 산업안전관리감독관 증원의 실행 계획을 밝히며 "실무 경력을 가진 퇴직자와 신규자를 2인 1조로 해 이른바 '노동안전 투캅스'를 만들겠다"고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근로감독관 300명 빨리 구성하라고 했는데 몇 명 했느냐"고 질문한 뒤 김 장관이 "300명 이미 구성돼 있다"고 하자 "단속 나가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김 장관이 "매주 나간다"고 답하자 "매일 나가야지 왜 매주 나가느냐"고 재차 캐물었다. 김 장관이 "(근로감독관들은 매일 나가고) 저는 매주 나간다"고 하자 "아, 본인은 매주 나가고. 어쨌든 불시 단속은 계속하고 있죠? 언제 저도 한번 같이 가면 좋겠다. (근로감독관은) 사람 목숨을 지키는 특공대라고 생각하고 정말로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김 장관이 "직을 걸겠다"고 비상한 각오를 밝히자 이 대통령은 "이번에 상당 기간이 지나도 산재가 안 줄어들면 진짜 직을 걸라"고 엄중하게 당부했다. 김 장관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웃음기 하나 없이 이렇게 진지하고 심각한 문답이 오가자 회의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종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각 부처 장관들의 보고와 대통령의 의견 제시, 더 나은 정책 마련을 위한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 근절대책 토론을 하며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논의하고 있다. 2025.7.29.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특히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를 통해 대출 규제 등 패널티를 검토하겠다는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보고를 받은 뒤 "뻔한 산재 사망 사고가 반복적, 상습적으로 발생한다고 하면 아예 여러 차례 공시해서 투자를 안 하게, 주가가 폭락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규정을 안 지켜서 산재 사고가 상습 발생한다면 실제 시행계획을 만들어 대출 제한, 이런 걸 해야 한다"고 고강도 제재를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국토교통부로부터 불법 하도급 제재 방안을 듣고 나선 "법을 잘 지키면 손해 보고, 안 지키면 이익을 보고, 지키기 어렵다면 차라리 법을 없애야지, 만들어 놓고 안 지키는 건 진짜 문제"라며 "고용노동부가 국토부와 협조하든지, 국토부한테 가서 빌든지, 술을 사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력히 단속하라. 어쨌든 노동부가 주무 부처니까"라고 독려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기업에 대해 국가계약 입찰 참가 자격에 제한을 두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기획재정부 보고에 이 대통령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반기면서도 "현행 법령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을 입찰 제한 사유로 추가하면 안 될 것 같다. 법률 위반이 확정되기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하니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곧바로) 제한하는 걸로 하자"고 꼼꼼하게 개선안을 보탰다.

나아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몇 번 걸리면 아예 정부 공사를 못하게 (해야 한다). 중대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영업 허가를 취소해 버리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자격이 없는 거 아닌가"라며 "예를 들어 건설 면허를 받아 공사를 하다가 (사망 사고가) 일정 정도 반복되면 건설 면허를 취소한다든지, 계약을 못하게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인허가, 면허를 통째로 취소하는 것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왼쪽)과 논의하고 있다. 2025.7.2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취임 이래 산업재해 근절을 국정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아 전력을 기울여 왔다. 앞서 지난 25일에는 노동자들이 기계에 끼어 사망하는 참사가 잇따라 발생한 SPC그룹 사고 현장을 직접 방문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기 시흥에 위치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어 파리바게뜨와 배스킨라빈스 등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SPC그룹의 허영인 회장 등 그룹사 임원들을 상대로 "예측할 수 있고 방지도 할 수 있는데 왜 똑같은 일이 벌어지느냐"며 "개별 사건마다 원인을 분석해봐야 하겠지만 돈과 비용 때문에 안전과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로 바꿔야 한다"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산업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들의 명복을 빈다"며 "죽지 않는 사회, 일터가 행복한 사회, 안전한 사회를 꼭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SPC그룹은 간담회 이틀 뒤 대표이사 협의체인 'SPC 커미티'를 열고 생산직 노동자들의 야근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해 초과 야근을 폐지하고 필수적인 품목 외에 야간 생산 자체를 최대한 없애는 등 사고 위험을 원천 차단할 수 있도록 생산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7일 대통령실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최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추락해 한 분이 사망했다고 한다. 산업재해 사망 사고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며 "사고 원인을 신속하고 철저히 조사해 안전 조치에 미비점이 없었는지 확인해서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산업재해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는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면서 "산업안전 업무를 실제로 담당하는 근로감독관을 300명 정도 신속히 충원해 현장 점검을 불시·상시로 해달라. 지방·중앙 공무원 상관없이 특별사법경찰관 자격도 부여해 현장에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달라"고 구체적 지침을 제시했다.

이밖에도 취임 이래 국무회의 등을 통해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모든 관련 부처가 역할을 다해야 한다. 현재 할 수 있는 대책, 필요하면 제도를 바꾸는 입법 대책까지 전부 총괄적으로 정리해서 보고하라"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 "산업재해 사망 1위 국가라는 소리가 더는 나오지 않게 대처해달라" 등의 메시지를 하루가 멀다 하고 전파해 전 부처 공무원들을 상대로 긴장의 고삐를 바짝 당겨왔다.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29일 인천 송도 본사에서 연이은 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한 담화문 발표에 앞서 관계자들과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올해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 잇단 산업재해 사고로 노동자들이 숨진 사실을 언급하며 질타했다. 2025.7.29. 연합뉴스

한편 이 대통령이 29일 국무회의에서 직접 거론했던 포스코이앤씨 측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모든 현장에서 무기한 작업을 중지한다고 선언했다.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오후 인천 송도 본사에서 임원들과 함께 단상에 올라 고개를 숙인 뒤 "어제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이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전했다.

전날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작업을 하던 60대 노동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여 숨졌다. 앞서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는 1월에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 사고, 4월에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 사고와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가 발생하는 등 올해 들어서만 4차례 중대재해 사고가 일어나 4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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