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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영 재미동포, 우여곡절 있어도 오직 통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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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영 재미동포, 우여곡절 있어도 오직 통일을 위해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7/01 [00: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신필영 6.15미주위원회 대표위원장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2014년 미주방문 기간 만난 여러 통일인사 중에 기억에 남는 재미교포가 신필영 6.15미국위원회 대표위원장이다. 일제치하 애국적 가풍이 어린 집안에서 자라난 신필영 회장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그의 절친한 친구들이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과 옥고를 당하는 가슴 아픈 모습을 체험하고 그 단체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란 이유로 감시와 압박이 심해 결국 미국에 건너가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한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재미동포들의 권익과 인화 단결을 위해서 물심양면 헌신하던 차에 6.15남북공동선언이 선포되어 민족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희망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통일운동에도 헌신하였다. 그는 남측의 주요 인사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성의를 다해 맞이하고 대접과 후원을 해주었으며 당시엔 남북관계가 좋았던 때라 재미동포들의 행사에 북측 유엔 대사관 외교관 등 북 간부들도 종종 참석하였는데 큰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라 늘 시간에 쫓길 때에도 그 북측 외교관들을 위해 직접 운전수를 대동하고 가서 장거리 여행도 함께 해주는 등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언젠가 북측 지도자에 대한 존칭어 호친 문제로 “신 선생이 어떻게 위대하신 우리 수령님에 대해 그렇게 무엄하게 말을 할 수 있는가”라며 당장 차를 세우라고 다른 차를 타겠다고 대놓고 면박을 주어 무안해서 혼난 적이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무슨 불경스런 마음으로 한 호칭이 아니었고 미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어서 습관처럼 나온 것이었는데 북 간부가 버럭 화를 내니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미국을 방문한 북측 외교관과 간부를 만나는 일을 피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미국

또다시 철수하는 안철수의 ‘철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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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가 생각한 안 대표 사퇴 이유: 새정치, 대권을 위한 행보’ 임병도 | 2016-06-30 08:37:43              ▲안철수,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사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국민의당 창당 4개월, 총선 승리 후 2개월 만에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가 사퇴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퇴는 ‘김수민 의원 리베이트 의혹’ 사건 때문입니다. 안철수 대표는 “정치는 책임지는 것입니다.”라며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 한다’면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습니다.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 입장발표 전문> 1. 천정배 공동대표 저희 두 사람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고 대표직을 사퇴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당과 정권교체를 위해서 헌신하겠습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국민여러분과 당원동지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 안철수 상임공동대표 정치는 책임지는 것입니다. 막스 베버가 책임윤리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번 책임져야할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책임지고 대표직 내려놓겠습니다. 국민의당은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와 국민의당은 앞으로 더 열심히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언론사가 생각한 안 대표 사퇴 이유: 새정치, 대권을 위한 행보’ 안철수 대표의 사퇴에 대해 언론사들은 대부분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을 했습니다. 하나는 안 대표가 계속 주장해왔던 ‘새정치에 대한 책임’을 위해서고 두 번째는 ‘대권을 위한 행보’입니다. 물러나는 안철수의 첫마디 “정치는 책임지는 것” (한겨레) “정치는 책임지는 것” 안철수의 여섯 번째 ‘철수’ (중앙일보) 安의 6번째 철수… 대권行 묘수 될까 (한국일보) 安, 대권 의식해 ‘일단 철수’…

국정원 내부에 북한 정보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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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내부에 북한 정보원 있나? nk투데이 이동훈 기자  기사입력: 2016/06/30 [09:33]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북한의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이 북한 종업원을 돌려보내라는 요구를 하며 한국 정부가 북한 종업원의 신상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으며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고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26일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은 담화를 발표해 "털어놓고 말하여 우리는 괴뢰패당이 우리 인원들의 신상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으며 그들이 지금 어떤 가혹한 처지에서 어떤 공갈과 회유기만책동에 맞서고 있는가 하는 것을 괴뢰내부에서 제공된 믿음직한 정보를 통하여 손금 보듯 다 알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GI ⓒ국정원 홈페이지 국정원을 거치지 않고서는 탈북 논란 종업원들의 상태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주장이 나온 만큼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대변인은 "한국정부가 진행한 참관과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국가정보원이 "우리 인원에 대한 처리문제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해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한편 대변인은 담화에서 북측 종업원의 송환을 요구하며, 종업원들의 법정 출석마저 막은 국정원을 비롯한 한국 정부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대변인은 먼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동포애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것으로 여기고 제기한대로 필요한 서류와 가족들의 위임장도 보내주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을 비롯한 박근혜 정부가 "내외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법정에 끌려 나와서는 우리가 예견한바 그대로 '인권침해'니, '가족피해'니 하는 황당무계한 수작을 늘어놓는 해괴망측한 추태를 부렸다"고 주장했다.

“강산은 변해도 사용자는 안 변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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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위원들 10년째 동결 주장… 최임위 결론  못내 한주 연장 강호석 기자  승인 2016.06.29 댓글 0 ▲ 법정기일 마지막 날인 28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는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앞에선 최저임금 1만원 문화제가 열렸다.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진행된 최저임금위원회 7차 전원회의가 법정시한을 한 시간 넘겨 29일 새벽 1시에 끝났다. 10시간 마라톤 회의를 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달 4일 3시에 다시 회의를 하기로 했다. 그동안 내년도 최저임금안 확정 과정에서 제기된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시급으로 표기할 것인가, 월급으로 표기할 것인가. 둘째, 전 업종에 적용할 것인가, 예외업종을 둘 것인가. 셋째, 최저임금을 과연 얼마로 정할 것인가이다. 노측 “월급 표기” vs 사측 “시급 표기” 표기방식이 쟁점이 된 이유는 주휴수당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55조는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에게 하루치의 임금, 즉 주휴수당을 지급하게 돼있다. 하루 8시간씩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주5일 40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는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8시간을 더 근무한 것으로 임금을 계산하는 것이다. 문제는 시급만으로 최저임금을 표시할 경우 주휴수당을 계산에서 빼는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 고용노동부 조사에 의하면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44%, 사용자의 60%가 주휴수당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노동자위원들은 시급으로 표기하지 말고, 주휴수당이 포함된 월환산액으로 표기하자고 주장했다. 그러자 사용자측은 월급으로 표기할 경우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사업장이 늘어난다며 반대했다. 결국 표결을 통해 시급으로 하되 월환산액을 함께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노측 “모든 업종” vs 사측 “6개 업종 예외” 사용자측은 PC방, 편의점, 주유소, 경비원, 이·미용업소 등 6개 업종은 최저임금 미만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예외업종을 두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동자측은 한번 차등 적용되면 이 업종들은 저임금이 고착

실손 보험사와 박근혜 정부의 국민건강보험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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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의료팀장 2016.06.30 07:27:41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실손 의료 보험의 진실 근래 실손 의료 보험 개편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보험사들은 과잉 진료로 실손 의료 보험 손해율이 높다며 대책을 주문한다. 일부 과도한 도덕적 해이 사례를 언론에 유포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에 금융 당국은 준비되었다는 듯이 실손 의료 보험 개편이 필요하다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실손 의료 보험 논란과 대책을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일방적으로 보험사의 입장에서만 논의하고 있기에 그렇다. 보험사는 과잉 진료 의료 기관과 환자의 탓으로 돌리는 데 급급하다. 과연 그러한가?   취약한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국민을 실손 의료 보험으로 몰아넣어 2007년부터 본격 판매되기 시작한 개인 실손 의료 보험의 가입자 수는 3200만 명에 이른다. 이는 개인 대상이니, 단체로 가입한 실손 가입자 수 500만 명을 합치면 3700만 명에 이를 것이다. 출시된 지 10년도 안 되어 전 국민의 70% 이상이 실손 의료 보험에 가입한 셈이다. 실손 의료 보험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보험이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실손 의료 보험에 가입하도록 유도한 건 다름 아닌 취약한 국민건강보험 제도이다. 아직도 본인 부담 비중이 높고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가 많다. 그러다보니 실손 의료 보험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다.   실손 의료 보험료는 나이가 들수록 폭등해, 80세가 되면 월 60만 원에 이르리라는 것은 정부조차 인정한 사실이다. 젊고 소득이 있는 청장년은 당장 월 몇 만 원의 보험료가 크게 부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하는 노후에는 실손 의료 보험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도덕적 해이? 실손 의료 보험 자체가 문제다   보험사는 실손 의료 보험 인상 원인을 대부분 과잉 진료로 돌린다. 의료 기관이나 환자의 무분별한 진료가 책임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는 그렇

큰빗이끼벌레도 사라진 금강... 진짜 무서운 놈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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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위해 띄운 비행기, 주머니엔 달랑 오천 원 [김종술, 금강에 산다] 큰빗이끼벌레도 사라진 금강... 진짜 무서운 놈들이 나타났다 16.06.30 05:14   |   글:김종술 쪽지보내기 | 편집:박정훈 쪽지보내기 ▲ 방송사 기자가 장갑을 끼고 떠낸 펄 속에서는 붉은 깔따구가 득시글합니다. ⓒ 김종술 강이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짙은 녹조가 눈앞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숨이 막힙니다. 눈알이 튀어나온 물고기가 곳곳에서 둥둥 떠다닙니다. 큰빗이끼벌레조차 살 수 없어서 떠난 강. 시커먼 펄 속에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만 우글거리며 악취가 코를 찌르는 그곳에서 살아보겠다고 꿈틀댑니다.  최근 금강의 모습입니다.  사계절 중에 여름 강은 더욱 힘듭니다. 머리가 벗겨질 듯 내리쬐는 뜨거운 뙤약볕. 강변엔 잠시 쉬어갈 그늘이 없습니다. 그 많던 버드나무는 죽어서 뼈대만 앙상해진 지 오래됐습니다. 몇 발짝 걷기도 힘들어 주저앉고 싶습니다. 하늘이 빙빙 돌면서 어질어질. 혼자 강변을 걸으면 턱까지 숨이 차오릅니다.  "이렇게 죽는 건 아닐까?" ▲ 언제나 저와 함께하는 장화와 카메라, 배낭입니다. ⓒ 김종술 발목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등을 타고 흐르는 땀 줄기 때문에 배낭이고 카메라고 다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좀, 무겁더라도 물이라도 넉넉히 챙겨올걸...' 후회하다가 간장 빛으로 변한 강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제야 하늘도 뚜렷이 보이고 살 것 같았습니다.  부글부글 배가 끓어오릅니다. 창자가 끊어질 듯 고통스럽습니다. 채 바지도 내리지 못하고 사고를 쳐버렸습니다. 뜨거운 물줄기가 뺨을 타고 흐릅니다. 4대강을 걸으며 오십 줄에 접어든 내가 부끄럽습니다.  "가랑잎만큼이나 물고기가 많다." 팔순 어부의 말이 맞나 봅니다. 죽은 물고기가 계속 떠오릅니다. 4대강 삽질이 벌어지던 그 날부터 공주보 주변은 죽음의 장소로 변했습니다. 단 하루

항일무장대결성 시험대 추수투쟁에서 대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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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연재39] 항일무장대결성 시험대 추수투쟁에서 대승리 항일독립주투쟁의 성지 연변조서족자치주를 가다(39) 이용섭 역사연구가  기사입력: 2016/06/29 [05:54]  최종편집: ⓒ 자주시보 항일독립투쟁의 성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가다 (39) 반일인민유격대 창건 준비과정과 창건 후 항일투쟁 8.  《 반일인민유격대창건 》  전후 만주 각지 유격대창건    5)  항일무장대결성 시험대 추수투쟁에서 대승리    사진 .  추수투쟁이 처음으로 일어났던 연길현 로투구 ▲ 1931년 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벌어졌던 추수투쟁이 처음 시작되었던 연길현 로투구 전경. 추수투쟁은 1930년 《5·1폭동》 《5·30폭동》 《8·1폭동》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추수투쟁은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인 조선의 젊은 반일·항일세력들이 이끌어간 투쟁이었다. 치밀한 투쟁 전략과 전개과정에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진행을 하였으며 타도대상들과의 주도권 싸움에서도 언제나 주동을 쥠으로서 추수투쟁은 대 승리를 거두었다.     © 이용섭 역사연구가 새 사조를 받아들인 조선의 젊은 반일  ·  항일독립투사들의 지도자는  1930 년  《 5 · 1 폭동 》 《 5 · 30 폭동 》 《 8 · 1 폭동 》 의 후과를 극복하고 새로운 높은 단계의 반일  ·  항일투쟁을 벌이기 위해 동북만과 조선북부국경일대를 쉼 없이 다니면서 파괴된 조직을 복구하고 새로운 조직을 내오는데 모든 걸 다 바쳤다 . 1930 년  10 월부터  1931 년  9 월  18 일  《 만주사변 》 이 발발할 때까지 젊은 지도자의 노력으로 파괴된 조직들은 거의다 복구가 되었으며 ,  오히려 이전보다도 훨씬 더 광대하고 튼튼한 지하조직을 꾸렸다 .  앞서 수도 없이 강조를 했지만 지도자의 이와 같은 조직복구 및 새로운 조직의 결성은 새로운 단계의 높은 반일  ·  항일투쟁에 돌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  즉 이전 세대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