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청와대 김연명 사회수석이 “원격의료에 대해 긍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힌 데 이어,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원격의료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원격의료 추진에 대한 정부 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코로나19 위기를 빌미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지난달 28일, 53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출범한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대책위)’는 “코로나19가 재확산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킬 공공의료 강화계획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기업만 배불릴 원격의료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위기 정부의 원격 의료 추진 중단 및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대책위는 15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원격의료는 정부가 여러 차례 시범사업을 했지만 안전과 효과가 증명되지 않아 추진되지 못해왔던 대표적 의료영리화”라며 “실제 촉진이나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오진의 가능성이 크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되는 것”이 원격의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병·의원에서 하는 비대면 전화상담은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제한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조치”라며 “비상 상황을 빌미로 원격의료를 제도화하는 것은 재벌·기업들의 숙원사업을 허용해주겠다는 것”이며 “‘재난자본주의’의 전형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삼성, LG, SK텔레콤 등 원격의료 기기와 통신기업들, 그리고 대형병원의 돈벌이 숙원사업이 될 순 있지만 환자에겐 의료수준 향상 없이 의료비만 폭등시킬 제도”라는 것.
대책위는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공공병상과 의료인력이 부족해 대구·경북이 위기를 맞았고 원격의료로는 감염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없으”며, “전국 지자체 4곳 중 1곳이 응급의료 취약지인 현실에서 원격의료는 큰 소용 없을”뿐더러, “원격의료는 오히려 노인과 취약계층에게 기술·정보 접근 장벽을 만들어 의료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원격의료’가 아닌 ‘공공의료’ 확충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가 정부에 요구하는 건 “중환자 병상·공공병원·의료인력 확충”이다.
“대구에서 3월 초 2천 300명이 집에서 대기해야 했고 3월 중순까지 75명 사망자 중 17명(23%)이 입원도 못 하고 사망했을 정도로 병상이 부족했다”고 언급하며 “지금이라도 10%밖에 안 되는 공공병상을 대폭 확충해야”하며 “10만명 당 10.6개인 중환자 병상도 시급히 확충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자리를 없앨 원격의료가 아니라 시급히 필요한 의료인력을 늘려야 한다”며 공공의료 인력 확충도 주장했다. 의료인의 자발적 헌신에 기대는 것이 아닌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훈련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상 당 간호사가 OECD 평균의 5분의1 수준인 열악한 간호노동 현실을 바꾸기 위해 환자 당 간호 인력을 강제”하고, “국가장학생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육성하고 공공의료기관에 의무 복무”하도록 하며, “의료인 보호장비와 인공호흡기 등 필수의료장비도 확보”해야 한다고 대책위는 강조했다.
대책위는 또, 개인의료정보에 대한 판매·공유를 허용하는 ‘의료정보 상업화 중단’도 촉구했다. 지난달 29일 코로나19 비상경제 중대본 회의에서 정부가 발표한 ‘10대 산업분야 규제혁신방안’ 중 ‘의료정보 상품화’ 정책이 포함됐다는 지적이다.
이날 정부는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등이 정보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민감정보”라면서도 이를 가명 처리해 기업이 활용·판매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고, “정신과·산부인과·비뇨기과 등 민감성이 높은 진료기록, 유전정보, 희귀질환 정보, 성병 정보 등 민감성과 재식별 가능성이 높은 의료정보도 기업에 풀겠다고 했다”면서 이는 “개인 동의 없이 의료정보를 기업에 돈벌이 수단으로 넘기고, 개인에겐 온갖 인권 침해와 차별을 가져다주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대책위는 끝으로 “의료영리화를 위해 구체적 계획과 시기별 로드맵까지 내놓은 정부가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공공의료 대책과 준비상황은 밝히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코로나)재확산 우려가 커지며 방역 성공조차 자신할 수 없는 시기”라며 “원격의료와 의료영리화 추진이 아닌, 보건의료 예산과 자원, 행정력을 다해 시민의 생명을 지킬 공공보건의료 강화 정책을 시급히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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