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용마 기자 5주기 추모식 12년 전, 이용마와 이진숙의 악연 "이용마의 싸움 우리가 이어받는다"
고 이용마 기자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윤석열 정부가 2012년 공영방송 장악을 답습하려는 지금, 당시 정부에 맞섰던 한 기자의 외침을 기억하는 이들이 그 뜻을 이어가고자 모였다.
언론탄압에 당당히 맞섰던 고 이용마 기자의 5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언론탄압이 노골적인 현재, 다시 그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 용기를 이어가기 위한 이들이 광화문 사거리, 동화면세점 앞에 모였다.
2010년대 초 이명박 정부는 방송사 경영진을 친정부 인사들로 교체하며 공영방송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했다. 특히, MBC의 경우 김재철 사장이 임명된 후, 보도 방향이 정부에 유리한 쪽으로 편향돼갔다.
이에 기자들과 PD들은 정부의 영향력 아래 보도 내용이 왜곡되고, 정부를 향한 비판 보도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편집권 독립을 외치며 파업에 돌입했다.
약 500여 명, 170일이라는 방송사 최장 파업, 그 선봉에 이용마 기자가 있었다. 그는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을 지내며 노조의 대변인 활동을 펼쳤다. 경영진은 이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파업 참가자들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취했다. 많은 파업 참가자들이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았고, 이용마 기자 역시 해고당했다.
그러나 MBC 파업은 많은 시민과 언론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KBS와 YTN 노조가 연대하기 시작했고, ‘무한도전’으로 유명한 김태호 PD도 파업에 참여했다. 그 영향으로 무한도전 방송은 중단됐고, 재방송 분량이 방영됐다.
해고당한 이용마 기자는 국민 라디오 ‘이용마의 한국정치’를 진행하며 파업의 정당성을 알렸다. 그 과정에 현 방송통신위원장인 이진숙의 노조 파괴 행위를 고발하기도 했다.
외부 단체 연대도 이어졌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국제언론인협회(IFJ)도 MBC의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한국 정부에 언론의 독립성 보장을 촉구했다.
긴 투쟁의 결과, 2017년 법원은 이들의 파업이 정당한 쟁의행위로 판단해 이용마를 비롯한 기자들과 PD들의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공정방송 의무는 근로조건에 해당하므로 사측이 인사권 남용으로 공정방송을 저해하는 것은 근로조건 저해라며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한 거다. 공정방송이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최초의 대법 판례였다.
또, 대법원은 당시 보도국장이었던 김장겸(현 국민의힘 의원)과 기획홍보본부장이었던 이진숙(현 방송통신위원장)의 ‘부당노동행위’, ‘직원 사찰’을 인정해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고 이용마 기자 추모식 ⓒ 김준 기자
고 이용마 기자가 타계한 지 5년이 지났다. 그러나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랐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정부는 언론자유를 구태로 후퇴시키며 사라졌어야 할 김장겸과 이진숙을 그 선두로 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8월 이명박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동관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며 KBS, MBC, EBS의 이사 및 이사장 교체를 시도하고, KBS 김의철 사장을 해임해버렸다.
지금 정부의 방송장악 시도는 2010년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방송문화진흥원의 경우, 법원이 권태선 이사장의 해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기존 체제를 유지했지만, 이진숙 신임 방통위원장이 2시간 만에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을 마쳐버렸다.
현재 법원은 이진숙 위원장이 졸속으로 처리한 방문진 이사진 임명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심리를 진행 중이다. 26일 그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공영방송의 운명이 결정된다.
21일 추념식에서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MBC를 비롯한 공영방송의 미래를 결정할 운명을 결정할 정말로 중차대한 결정”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민주주의, 최소한의 상식, 최소한의 정의가 존중받고 있다라고 하는 것을 재판부가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울러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마지막 꿈으로 삼았던 고 이용마 선배에게 부끄럽지 않은 MBC 구성원이 되겠다”며 “그가 목숨을 걷고 내걸었던 그 가치 잊지 않고 MBC 반드시 지키는 힘을 시민 여러분이 함께 해달라” 호소했다.
이진숙 위원장이 기획홍보본부장을 역임하던 시절, 이용마 기자와의 악연도 소개됐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처장을 지냈던 강지용 기자는 “이진숙 본부장이 회사 특보를 통해 김재철 사장의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계속 변명해주고 변호했는데, 이용마 기자가 매일 파업 특보를 통해 그 내용에 반박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기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만은 최소한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 믿음을 정면으로 배신한 게 이진숙 국장의 회사 특보였다”고 전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자기를 불살라서 싸웠던 나의 동료는 이제 재가 됐다”며 “이제 그 싸움을 제가 이어받았고, 우리가 함께 받아 안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용마 기자와 같은 해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용마 기자를 처음 본 건 방송사 면접 시험장이었다”며 “다른 언론사를 소속으로 기사 경쟁해야 할 기자들이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언론탄압이 질서가 되는 세상을 맞닥뜨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노조 유구한 전통은 한 번도 지지 않은 것”이라며 “이번에도 이길 때까지 싸우겠다”고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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