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2010년 4월 어느날, 대모산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을 택한 곳은 구룡마을쪽이었다. 그곳은 서울에서 보기드물 정도로 봄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한 때 우리가 즐겨 불렀던 동요 ‘고향의 봄(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이 그린 동네와 흡사한 모습이, 서울 강남의 구룡마을 판자촌에서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지막한 대모산 산기슭에 자리잡은 구룡마을( 7-B지구)은 ‘복숭아꽃 살구꽃’이 만발한 곳으로, 서울 어느 지역에 핀 봄꽃과 다른 정겨운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따라서 뷰포인트를 찾아내기 위해 이리저리 걸음을 옮긴 결과 ‘구룡마을의 봄 풍경’을 하나 건질 수 있었던 것. 이곳에는 서울 도심에 비하면 가난한 이웃들이 살고있는 지역이었지만, 필자에겐 남다르게 다가온 정겨운 삶의 터전이었다. 구룡마을에서 가까운 곳에서 살아오면서 늘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있었는 데 그 허전함을 구룡마을이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서울 강남을 이루고 있는 주요 건축물은 고층아파트 내지 콘크리트 건축물이 다수이며, 그곳엔 조경수와 건물 등이 독재자를 사열하는 듯한 모습으로 차렷자세(?)로 오와 열을 맞추고 있는 곳. 어디 하나 빈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있는 곳이었다.
사라진 구룡마을 7-B지구의 옛 모습 찾아내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누구 하나 간섭을 받지 않은 듯 자유로운 구조와 풍경을 지닌 곳으로, 봄의 요정이 살포시 내려앉아 마을을 품은 곳. 비록 겉모습은 판자촌이었지만 ‘행복한 삶의 터전이 이런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었다. 그래서 도시의 ‘삐까번쩍’ 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10%라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100% 이상을 능가할 정도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외형상 ‘가난의 대명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 한 가운데서 뒤를 돌아볼 여유 조차 상실한 채 자기의 삶 전부를 ‘돈과 권력과 명예’의 허상에 허비하며 사는 사람들과 달리, 이곳에서는 아날로그 시계가 ‘느림의 미학’을 선물하며 느리게 느리게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 당시 하산길에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구룡마을은 고향의 봄을 연상시킬 정도로 마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아늑한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마을이 지난 9일 (사람들이) 방화로 추정하고 있는 화재로 인해 잿더미로 변하고만 것이다. 정말 안타까웠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해 둔 귀중한 추억 하나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한 것. 그래서 화재가 난 이틀 후, 화재현장을 방문해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의 추억을 되살리며 천천히 화재현장을 돌아본 것이다. 그리고 귀가 후 화재로 전소된 이 마을의 예전 풍경을 찾아 데이터베이스를 한참이나 뒤적인 후, 화재로 사라진 구룡마을 7-B지구의 옛 모습을 찾게 된 것.
* 화재로 사라진 구룡마을 7-B지구의 5년 전(2010년 4월) 모습
너무 기뻤다. 세상에 한 장 밖에 없는 구룡마을 7-B지구의 5년 전 모습이 담긴 풍경사진이었다. 아마도… 지금도 그렇지만 구룡마을 7-B지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화재의 패닉상태를 벗어나면, 그때 맨 처음 떠올릴 게 당신들이 살아오신 옛 터전이 아닐까. 그분들의 마음 속에는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리운 풍경’으로 자리 잡아 다시금 눈물지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납짝 엎드려 보잘 것 없어 보이던 판자집이 마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로 다가올 수 있는 것.
사람들은 가난한 형편에 처해있으면, 가난 저편에 있는 부자들의 삶이 마냥 부러울 것처럼 여길 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외형만 달라 보일 뿐 행복지수는 큰 차이가 나는 것. 돈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줄지 모르겠다. 그러나 돈의 속성은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부추기고 서로 속이고 파멸하게 한다는 점을 깨달을 때쯤이면, 우리 곁에서 숨소리 낮추며 살아간 가난한 이웃의 알콩달콩한 행복을 부러워하게 될 게 아닌가.
필자는 지난 11일 다시 찾은 잿더미로 변한 화재현장에서, 한 주민으로부터 구룡마을의 비하인드스토리에 대한 귀한 증언을 듣게 됐다. 당신의 증언에 따르면 이 마을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딱지의 추억’과 달리 ‘행복한 추억’이 그의 삶 전부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남루한 차림의 그는 이 마을에서 40년 동안 살아온 주민이자 구룡마을의 산 증인이었다. 사라진 구룡마을 한 곳을 추억할 수 있는, 단 한 장 밖에 없는 풍경 사진에 이어 구룡마을 사람의 행복했던 삶의 모습을 다음 편에 실어드리도록 한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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