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이 평양에서 중국의 류경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다 남측 당국에 집단 납치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북 여성들의 부모 중 류송영 양과 김혜성 양의 부모들, 언니, 동생들과 긴급 대담 방송을 민족통신 페이스북에 올렸다.
대담에서 부모와 가족들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자신의 딸들에 대한 접견과 석방요구할 권리를 모두 위임한다고 밝혔다.
부모들은 "입장을 바꿔놓고 자신의 딸을 이렇게 납치당해서 독강에 갇혀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고 있고 그중 한 명이 희생되었다니 온 인민이 가슴아파 한단 말입니다. 이런 일이 책에서나 봤지 실제 나에게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세계 양심 앞에 호소합니다. 입장을 바꿔 자신의 딸들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해서 부모의 품으로 꼭 돌려보내주십시오"라며 절규하였다.
김혜성 양의 언니 김혜경 양은 "우리 막내는 말이 없고 착해서 부모들의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막내들이 사랑 독차지 해서 버릇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 막내는 질투보다 리해가 깊어서 좋은 것이 하나 생겨도 지어 사과 한 알, 사탕 하나가 생겨도 부모 입에 넣어주고 이 언니를 챙겼습니다. 편지할 때마다 부모가 보고 싶구, 언니가 보고 싶다고 조국에 가면 언니랑 함께 많이 놀고 싶다고 써 보냈습니다."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김혜경 양의 어머니는 "우리 딸들을 독감방에 따로따로 가두어 넣고 온각 회유과 기만 귀순공작을 들이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 부모들이 애타게 피타게 만나게 해달라고, 서울에 가게 해달라고 우리가 얼마나 호소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놈들이 일절 외부와 접족시키지 않고 언론까지 통제하고 있지 않습니까."라며 분노를 터트렸다.
류송영의 아버지는 "지금 미국에서는 인권이요 뭐요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이런 이 사건에 대해서는, 한 명이 희생되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는데, 아무런 말도 없는데 이것이 바로 미국이 떠드는 인권입니까."라며 불이 일어날 것 같은 눈빛으로 미국을 규탄했다.
밤마다 언니의 사진을 꺼내 들고 눈물만 짓고 있다는 류송영 양의 고등하교 2학년 동생은 "언니는 저를 무척 사랑하였습니다. 뭐가 하나 생겨도 저에게 주려고, 사탕 한 알이 생겨도 제 입에 넣어주고 무엇이든 저에게 주고 그렇게 사랑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설맞이 공연을 참가했을 때는 멀리 해외에서 언니가 대회 모습을 보면서...."라며 엉엉 우느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류송영 양의 어머니가 "우리 송영이는 편지 때마다 항상 사랑하는 동생 경연이가 보고 싶다고 경연이가 무용대학에 붙었을 때 너무 기뻐서 얼마나 컸는가, 얼마나 예뻐졌는가. 훈련을 더 잘하고 당에 더 많은 보답을 하고 공부도 잘하고 좋은 학생이 되서 언니랑 만나자고 했는데 지금 독감방에 갇혔다고 하니 야는 밤마다 사진 놓고 언니를 찾으며 운단 말입니다."라며 울먹였다.
류송영 양의 아버지는 "70년 분단세월 박근혜정권 같은 악당은 없었단 말입니다. 박근혜 역적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이게 인권 대 유린입니다. 지금 아이까지 하나 죽여놓지 않았습니까. 하루 빨리 돌려보내지 않으면... 세계 여론은 뭘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인권이요 뭐요 우리를 비방 중상 해왔는데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나도 없는데 미국의 속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라며 미국과 그 추종국들의 허울 좋은 인권타령을 까밝혔다.
마지막으로 "우리 부모들은 같은 심정입니다. 세계 기자들이 취재도 해가고 했지만 일어반구 대답이 없단 말입니다. 세계 양심들에게 호소합니다. 하루 아침에 자기 자식을 잃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하루 빨리 가족들의 품을 우리 딸들을 돌려보내 주십시오."라고 절규하였다.
부모들은 대담 도중 자신의 딸들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민변 변호인들과 남녘, 해외 동포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표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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