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복 할머니는 42년 만에 한국에 있는 동생과 위성중계로 만났다. 당시 할머니가 태국에 있었던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 갔기 때문이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나, 광산 노가, 노수복이.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 안심부락. 내 동생 노수만이, 여동생 노순음이.”
1984년 3월 할머니 한 분이 방콕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찾아왔습니다. 태국인처럼 보였던 할머니의 입에서는 어눌한 한국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태국에서 40년 넘게 살았던 할머니의 이름은 노수복, 한국에서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한다는 소식에 동생을 만나기 위해 한국 대사관을 찾은 것입니다.
1984년 3월 12일 노수복 할머니는 태국의 BB TV 스튜디오에서 위성중계를 통해 KBS 스튜디오에 있는 동생 노순음씨와 막내 동생 국현씨를 TV 화면으로 만납니다.
30여 분간의 화면 상봉을 했던 할머니는 두 달 뒤인 5월, 42년 만에 고국땅으로 돌아와 동생과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일본 순사에게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됐던 노수복 할머니’
▲노수복 할머니의 강제 동원 및 위안소 이동 경로
1921년 경북 안동군에서 태어난 노수복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14살의 나이에 한센병 환자에게 시집을 갑니다. 혹독한 시집살이와 배고픔에 친정으로 도망쳤으나 다시 아버지에게 쫓겨나, 식모살이를 하러 부산으로 갑니다.
1942년 가을, 부산 근교의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노수복 할머니는 갑자기 나타난 일본 순사에게 붙잡혔습니다. 할머니는”용서해 달라”고 빌면서 잡혀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40여 일 가량의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은 ‘싱가포르’였습니다.
“막사로 가서 방을 하나씩 배정받은 후 조금 있으니 장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나는 ‘살려 달라’고 매달리며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차례 실랑이 끝에 나는 매를 맞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옥 같은 ‘위안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군인들의 옷을 빨거나 청소를 해야 했고, 오후에는 탄약통 등을 져 나르는 중노동을 했다. 어떤 때는 하루 60여 명의 병사들을 맞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이런 날은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노수복 할머니의 증언)
싱가포르에서 7.8개월을 지낸 노수복 할머니는 군용 트럭을 타고 다시 방콕으로 이동합니다. 방콕에 억류됐던 노수복 할머니는 일본군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영국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됩니다. 당시 포로수용소에는 태국이나 버마에서 온 조선인 위안부가 무려 200여 명이나 됐습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돌아갈 곳이 없었던 노수복 할머니는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뒤 말레이시아와 태국 등지를 전전한 끝에 태국 핫야이에 정착해 결혼도 하고 가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시도 고향을 잊지 못했습니다.
▲서울시가 기획하고 서울대 연구팀이 발간한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2”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처절한 증언과 생생한 기록 등이 담겨 있다. ⓒ서울시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노수복 할머니의 이야기는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 정진성교수연구팀이 만든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 사진과 자료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이야기”에 실린 내용입니다.
서울시는 2017년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사례집을 발간했습니다. 이후 노수복 할머니를 비롯한 6명의 피해자 증언과 4건의 위안부 관련 주제를 담아 이번에 새롭게 발간했습니다.
기존 증언집이 피해상황 설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위안부 이야기’는 식민지 사회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다가 끌려가게 되었는지부터 멀고 먼 귀환 여정, 그리고 귀환 후 생활까지 상세히 담겨 있습니다.
또한, 전쟁 수행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에 의해 관리되고 이용당한 ‘기업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피해를 증언하고 일본의 가해책임을 물었던 남・북한, 중국, 대만, 필리핀 피해 여성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도 포함됐습니다.
▲아시아 각 지역으로 강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그들에 대한 화해와 치유는 오직 진정한 사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울시
과거에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가 세상 밖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생존자가 줄어들면서 증언을 기록해 사료로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록물의 중요성은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를 방해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과 중국, 일본, 타이완 등 9개국은 공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분담금 지불을 거부하며 일본군 위안부 자료 등재를 막았습니다. 결국,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는 보류됐습니다.
아픈 역사라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입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강위원 상임대표 고희철 기자 khc@vop.co.kr 발행 2024-06-06 16:14:31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지난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에 전면으로 부상해 4.10 총선 결과 민주당의 한 축을 이뤘다. 대개 언론에는 ‘친명 강경파’ 조직으로 소개된다. 지난 2일 2기 강위원 상임대표가 선출됐다. 한총련 의장을 거친 강 대표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여민동락 공동체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민형배 구청장 시절 광산구노인복지관장 등을 거쳐 이재명 도지사 시절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을 맡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의 일정을 총괄했고, 그 뒤 당대표 특보와 혁신회의 1기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혁신회의는 국회의원 31명을 배출해 당내 최대 정치세력으로 불린다. 강 대표 본인은 경선에서 사퇴해 국회 입성에 실패했지만 상임대표가 됐다. 그러나 혁신회의와 강 대표는 언론에 대체로 부정적으로 언급된다. 친명, 강경, 팬덤, 개딸 등의 연관어와 함께. 특히 국회의장 후보 경선으로 촉발된 당원민주주의 논쟁은 부정적 보도 증가에 기여했다. 3일 여의도의 오피스텔에 자취방처럼 차려진 혁신회의 사무실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묻고자 한 것은 간단했다. 지난 총선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으로 당을 장악했다는 비판과 극성 팬덤을 앞세워 국회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비판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6.03 ⓒ민중의소리 1시간을 예정한 인터뷰는 2시간 30분을 넘겨 간신히 ‘중단’됐다. 그는 거침이 없었고, 할 말이 많았다. 그의 말은 영광군과 광산구와 경기도를 넘나들었고, 5.18정신과 김대중, 노무현도 수시로 언급됐다. 특히 언론의 당원민주주의 폄하에 강하게 반박했다. 친명만 공천되고 비명은 탈락한다는 이른바 ‘친명횡재 비명횡사’ 논란에 강 대표는 “그게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이어 “작업을 한 ...
우드사이드 사업 철수 과정 해명 석연치 않아, 경쟁입찰 했다는데 공개된 기록 없어…검증 과정도 불투명 홍민철·조한무 기자 발행 2024-06-07 15:16:28 미국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7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06.07. ⓒ뉴시스 동해 영일만 석유·가스 탐사 사업과 관련한 여러 의혹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석유공사, 사업성 분석업체 액트지오가 해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 대형 석유회사가 사업성 없다고 판단한 사업을 재추진한 이유, △ 사업성 분석 주체로 영세 업체인 액트지오를 선정한 이유, △ 매장량 및 성공 가능성을 추산한 근거 등 핵심 쟁점에 대한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과학적 근거는 없었다. 그 흔한 그래프, 도표 한장 제시하지 않았다. 원론적 설명에 그쳤다.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쟁점별로 정리했다. 15년 탐사한 대형 업체 우드사이드와 액트지오 판단, 왜 달랐나? 이번 사업은 당초 석유공사와 함께 탐사를 진행했던 호주 대형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가 철수한 뒤 사실상 재추진됐다. 때문에 ‘경제성 없는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우드사이드는 지난 2007년부터 2022년까지 15년간, 동해에서 석유공사와 공동으로 탐사를 진행했다. 2D 광역 탐사를 시작으로 시추공 2개를 뚫고, 3D 탐사로 자료를 구체화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7월, 돌연 사업 중단을 통보했다. 이와 관련 곽원준 한국석유공사 국내사업개발처 수석위원은 “배경을 보면 우드사이드가 다른 회사와 합병 후 글로벌 탐사 전략 변경 과정에서 사업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사업 중단이 동해 영일만 탐사의 사업성이나 경제성 문제라기 보다는 우드사이드 자체 사정이라는 취지다. 추가 설명도 내놨다. 우드사이드가 실시한 대규모 3D 탐사 결과를 충분히 평가하지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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