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전국 1만4464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시작됐다. 오전 7시까지 1시간 동안 총선거인 4419만 7692명 가운데 94만2061명이 투표를 마쳤다. 잠정 투표율은 2.1%다. 이 수치는 2017년 19대 대선 같은 시간대 투표율인 2.5%보다 0.4%포인트 낮은데, 역대 최고였던 36.93% 사전투표의 영향으로 보인다.
역대급 초박빙 선거로 분석되는 이번 선거의 관심 포인트 중 하나는 투표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80%를 상회하는 투표율이 점쳐지고 있다. 진영간 경쟁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은 데다 사전투표율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대선 투표율이 80%를 넘는다면 1997년 이후 처음이다. 2000년대 이후 공직 선거 투표율이 80%를 넘은 적은 없다. 1997년 대선 투표율이 80.7%였고, 다음 대선인 2002년 대선 투표율은 70.8%로 9.9%포인트 떨어졌고 2007년 대선에서는 63%까지 하락했다. 이후 대선 투표율은 2012년 대선 75.8%, 2017년 대선 77.2%로 계속 오르고 있다.
대선 외에도 공직선거 투표율은 2010년대 이후 뚜렷하게 상승 추세다. 2008년 46.1%까지 떨어졌던 총선 투표율은 2012년 54.2%, 2016년 58%를 기록하더니 2020년 66.2%까지 뛰어올랐다.
이같은 투표율 상승추세는 20~30대 투표율 상승 때문으로 보인다. 2007년 20대 투표율은 46.6%였고 30대 투표율은 55.1%로 전체 투표율 63%에 비해 한참 낮았다.
2012년 대선에서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는데 20대 투표율이 68.5%였고 30대는 70.0%였다. 전체 투표율도 75.8%로 올라갔다. 2017년에는 20대가 76.1%로 30대 (74.2%), 40대(74.9%)보다 앞섰다. 전체 투표율 역시 77.2%로 직전 대선보다 올랐다.
2030 투표율이 올라가는 추세와 함께 연령대별 투표율 격차도 줄어드는 추세다. 60대 이상 투표율은 2000년대 이후에도 75%를 상회해 왔다. 2007년 대선 60세 이상 투표율이 76.3%였고 2012년 60세 이상 투표율은80.9%였다. 2017년 60대가 84.1%, 70세 이상은 81.8%가 투표했다.
2007년 20대 투표율과 60대 이상 투표율이 30%포인트가량 차이났던 데 반해 2017년 대선에서는 10%포인트 안쪽으로 격차가 줄어든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6일 서울 도봉산 입구와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역 광장에서 각각 선거 전 마지막 주말 유세를 하고 있다. 2022.03.06. ⓒ뉴시스
2030 세대의 투표 향방이 이번 선거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이른바 '젠더 갈라치기'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면서 시작된 선거는 선거 후반, '윤석열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2030 여성층이 이재명으로 결집하는 양상이 형성됐다.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사전투표율은 이번 선거 투표열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과연 투표율은 80%를 넘길까. 2030세대의 투표율은 얼마나 더 오를까. 이 세대의 손에 대선이 결판지어진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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