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태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조사위 대국민 보고회에서 경과 보고를 하고 있다. 2022.05.12 ⓒ민중의소리
1980년 5월 광주에서 공식 발포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있었던 광주역에서의 집단 발포가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이 아니라 현장 지휘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는 다수의 증언이 확보됐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12일 ‘대국민 보고회’를 열어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조사위는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일대 발포와 5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벌였다. 두 곳에서 벌어진 발포는 계엄군의 공식적인 발포 명령, 즉 ‘자위권 발동’ 결정보다 하루 먼저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5월 20일 광주역 발포는 박모 대대장 등이 시위대의 차량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차량의 바퀴에 대고 권총을 발사한 데서 비롯됐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박 대대장 본인의 수기 기록 등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조사위가 현장 작전 참여 계엄군 530명에 대한 방문 조사 등을 벌인 결과,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새로운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 최모 제3공수여단장이 광주역 현장에서 지휘했고, 최 여단장이 무전으로 발포 승인을 요청했다는 진술 등을 확보한 것이다.
조사위는 “5월 20일 광주역 일원에서 집단발포 당시 최 여단장이 권총 3발을 공중에 발사하는 등의 현장지휘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진위 여부를 확인 중에 있다”며 “현장지휘관의 독자적 판단에 의한 발포가 아니라 별도의 명령계통에 의해 광주역 집단발포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광주역 주변 건물 옥상에서 M60 기관총 위협사격과 함께 광주역 일원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시위대열을 향한 발포뿐만 아니라 주택가, 상가에도 발포가 있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5월 21일 도청 앞 집단발포와 관련해선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 시위대를향해 조준사격을 했다”는 등의 진술을 확보하고 사실을 파악하는데 조사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조사위는 전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현장에 있었던 계엄군 중 일부는 “군인은 명령 없이는 어떤 경우도 발포할 수 없다”, “군인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더라도 명령 없이는 발포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조사위 대국민 보고회에서 광수 1호로 지목된 시민군 김군인 차복환씨가 나와 증언을 하고 있다. 2022.05.12 ⓒ민중의소리
조사위는 광주 금남로의 페퍼포그 차량에서 기관총을 들고 있다가 한 언론사 기자에 의해 사진이 찍힌 시민군도 특정했다. 지만원 씨 등 극우세력은 이 사진 속 시민군을 ‘광수1호’라고 부르며 광주에 침투한 북한 특수군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주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 개입설의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이 이 시민군을 추적하면서 실제 인물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기도 했다.
조사위는 사진 속 인물은 북한군이 아니라 현재 평범한 중년의 가장으로 살고 있는 차복환 씨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또한 다큐에서 추적한 ‘김군’은 차씨가 아니라 효덕동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의 사망자인 ‘63년생 자개공 김종철’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지난해 사진 속 인물을 자처하는 제보가 접수돼 조사위가 해당 사진을 촬영한 기자와 다큐 제작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제보한 인물이 사진 속 시민군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차씨는 이날 보고회에 직접 참석했다. 차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제가 ‘광수1호’로 돼있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다”며 다큐를 통해서 확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사진이 찍혔던 당시 상황에 대해 “나중에 알고봤더니 기자가 찍었다고 하더라. 당시 그 분이 특이하게 저만 찍더라. 찍지 말라고 해도 계속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길래 엄청 화가 나서 째려보고 있었는데 그게 찍힌 거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머리에 두른 띠에 쓴 글자는 ‘석방하라 김군’이었다고 그는 밝혔다. 김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을 줄인 말이었다. 그는 “그때 당시 전남 쪽에선 김대중 씨를 우러러 보지 않았나. 그래서 이름 석자를 쓰기가 좀 그랬다”며 줄여서 ‘김군’이라고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입었던 옷은 경찰들이 입는 시위진압복이었다. 그는 “’죽어도 좋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168명이 한 걸로 기억한다”며 서명한 사람에 한해서 전라남도경찰국에서 옷을 지급받았다고 설명했다.
차씨는 “지만원 씨가 저를 ‘광수1호’로 만들었더라. 제 명예가 훼손된 것에 대해 사과를 꼭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씨가 사과하지 않을 시 법적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송선태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조사위 대국민 보고회에서 경과 보고를 하고 있다. 2022.05.12 ⓒ민중의소리
이 밖에 조사위는 ‘무명열사’의 신원을 확인하는 성과도 냈다. 조사위는 1980년 5월 21일 14시께 도청 앞 집단 발포 현장에서 조준사격에 의해 장갑차 위의 청년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김모 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김씨는 다른 이름으로 오인돼 매장됐다가, 그 인물의 생존이 확인돼 '무명열사'로 분류됐고,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2019년 12월에 출범한 조사위는 3년 안에 조사를 마치고 그 후 6개월 안에 종합보고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조사위는 “기존계획의 목표치 대비 조사 달성율은 전체적으로 50% 선에 머물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별법 개정으로 조사위가 처리해야 할 조사 과제가 대폭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 작성된 군 기록 등이 사후에 변조된 정황이 많아 진실을 재구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위는 특히 “전두환, 노태우는 이미 사망했고, 정호용, 이희성 등 당시 내란집단의 핵심인사들은 진술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이에 조사위는 ‘상향식’ 조사방법으로 진실을 규명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5.18이 사회적으로 갈등과 분열을 반복케 하고 정치적, 이념적으로 악용되는 악순환을 끊어내고 양심적 증언과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고자 한다”며 “80년 당시 격랑에 휩쓸려 부당한 명령에 의해 5.18민주화운동에 연루돼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계신 분들의 용기있는 증건과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评论
发表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