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겨울잠 누룩뱀의 봄나들이


정병길 2015. 03. 30
조회수 5456 추천수 1
한겨울 식당에서 붙잡혀 구조센터에, 고민 끝에 냉장고서 `강제 동면'
따뜻했던 3월20일 마침내 잠에서 깨, 작은 나무위서 꿀맛 해바라기
 
DSC03363.JPG» 겨울잠에서 깨자마자 떨기나무에 올라가 해바라기를 하는 누룩뱀 15-016.

 따스한 봄 햇살이 좋아서 어디론가 나가 놀고만 싶어지는 요즘입니다. 묵혀두었던 가벼운 옷을 꺼내 입고 꽃놀이 갈 생각에 마음이 들뜬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충남야생동물센터에는 그 누구보다 더 봄을 기다렸을 한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누룩뱀 ‘15-016’입니다. 두 달 가까이 겨울잠에 빠졌던 이 친구에게 이번 봄이 얼마나 간절했을지 상상해 봅니다.
 
이 누룩뱀은 지난 1월13일 예산의 한 식당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보통 뱀을 본 사람들이 그렇듯 소스라치게 놀라 119구조대에 신고했습니다.
 
신고를 받은 예산 119구조대가 포획해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이송했습니다. 다행히 별다른 건강 이상은 없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뱀이 동면에 들었을 시기여서 그대로 방생을 해야 할지, 센터에서 깨어 있는 상태로 관리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SDC16789.JPG» 다행히 건강상 문제는 없었습니다. 왼편에 119구조대가 이 친구를 잡아두었던 빨간 양파 그물이 보입니다. 
 
그래서 강제동면을 시도했습니다. 스티로폼 상자에 작은 숨구멍을 여럿 뚫고 잘게 찢은 신문지를 충분히 깐 뒤 누룩뱀을 넣어 잘 봉했습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혹시라도 뱀이 잠에서 깰까 봐 중간에 열어볼 수가 없었지요. 먹이도 주지 않고 청소도 해줄 필요가 없었지만, 누룩뱀의 안부는 언제나 센터 식구들의 관심사였습니다. 혹 삐쩍 말라 비틀어진 채로 세상에 나오는 것은 아닐지…. 
 
DSC03367.JPG» 기대와 우려 속에 누룩뱀이 강제동면에 들어갔습니다. 냉장고 불빛이 왠지 스산해 보이는군요.

DSC03351.JPG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 3월 20일. 갑자기 날씨가 더워져 상자를 열었습니다. “워~!” 상자를 열어보던 김문정 재활사가 탄성을 터뜨립니다.
 
어느새 깨어난 누룩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고 무게를 측정해 봤지만, 역시 별다른 이상은 없었습니다. 즉시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했지요.
 
DSC03358.JPG» 근 두 달 만에 세상으로 나온 누룩뱀이 햇볕 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룩뱀은 풀어준 지 얼마 되지 않아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한 떨기나무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봄 햇볕을 쬡니다.
 
이 친구의 삶에 다시는 냉장고 더부살이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해마다 봄 햇살을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누룩뱀이란 어떤 뱀? 
구렁이와 비슷하게 생겨 산구렁이로 불리기도 하는 길이 70~90㎝의 제법 큰 뱀이다. 우리나라와 러시아, 중국, 이란 등에도 분포한다. 개체마다 색깔이 다양하다. 산림이나 경작지, 하천, 제방, 초지 등에서 주로 관찰된다. 먹이는 주로 설치류와 작은 새이다. 둥지 안에 있는 알과 갓 태어난 어린 새를 즐겨 사냥한다. 북방산개구리 등 양서류를 먹기도 한다. 4월부터 활동에 들어가 5~6월 짝짓기를 하고 7~8월 12~16개의 알을 낳는다. 11월부터 바위틈이나 나무뿌리, 무덤 안 쥐구멍 등에서 겨울잠에 들어간다. (자료=‘한국 양서·파충류 생태도감’, 국립환경과학원)

글·사진 정병길/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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