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헌법재판관에게 연하장 보내기 운동을 제안했습니다. 조국 교수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소에 넘어간 12월 10일 자신의 SNS에 ‘막중한 사건으로 수고하실 헌법재판관께 연하장 보내기 운동 제안합니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조국 교수는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15’로 되어 있는 헌법재판소 주소와 함께 박한철 소장을 비롯한 안창호, 조용호, 서기석, 이진성, 김창종, 이정미, 강일원, 김이수 헌법 재판관의 이름도 거론했습니다.
12월 12알 오전 7시 기준으로 조국 교수의 헌재에 연하장 보내기 운동 글은 공유만 1,189회가 넘는 등 많은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탄핵소추안 의결에 하나의 역할을 했던 문자 메시지’
조국 교수의 연하장 보내기 운동은 탄핵심판을 심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를 평화로운 방법으로 압박하겠다는 움직임입니다.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기 직전 새누리당 의원들은 엄청난 문자 공세에 시달렸습니다. 탄핵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휴대폰 번호가 유출됐기 때문입니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에게 세로로 비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네티즌이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캡처 화면 ⓒ인터넷커뮤니티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문자 메시지만 2000건이 넘게 받았습니다. 한 시민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단체카톡방에 초대해 ‘박근혜 탄핵하세요. 창피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친박 의원들에게는 세로로 읽으면 비난 글이 되는 카톡 메시지를 보내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탄핵소추안 의결이 있기 전 많은 시민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는 투표에 참여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압박했고, 실제 새누리당 의원 62명은 탄핵에 찬성했습니다. 탄핵에 찬성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오로지 문자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헌법재판관 휴대폰 공개와 문자 메시지는 삼가해야’
헌법재판관에게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판결을 앞둔 재판관에게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재판을 압박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국회의원은 자신들도 문자 등을 통해 선거운동을 하기에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헌법재판관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일은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조국 교수가 제안한 연하장 보내기 운동은 헌법재판소 내 헌법재판관에게 우편물로 들어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연하장에 정중하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이번 탄핵 심리를 정의롭게 결정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정도의 문장이라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연하장이 수백 수천 통이 온다면 헌법재판관들은 은연중 민심을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합니다.
‘2004년부터 헌재 선고, 여론을 좇아갔다’
연하장 보내기가 무슨 큰 효과를 볼 수 있느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탄핵심판에 중대한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규섭 서울대언론정보학과 교수는 2014년 4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2년 6개월간 헌재가 내린 639건의 결정을 통해 헌법재판관의 성향을 분석했습니다. 한 교수에 따르면 ‘2004년부터 헌재 선고를 보면 간통죄를 제외하곤 거의 여론을 좇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2016헌나1 사건번호로 현재 현법재판소에서 심리중인 대통령(박근혜)탄핵 심판 ⓒ헌법재판소 캡처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소수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들의 이름이 결정문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정된 법률에 따라 2014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부터 각자의 이름이 모두 결정문에 공개됐습니다.
헌법재판관들은 수백 수천 통의 연하장을 받으면 진짜 민심과 여론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됩니다. 헌법재판관들은 탄핵심판 결정에 정치적 이해관계나 보수 성향을 배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역사의 기록으로 자신의 이름이 남게 될 헌법재판관들이 국민의 진정한 민심이 무엇인지 파악해, 정의롭고 올바른 결정을 했으면 합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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