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일 새해 첫날,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씨가 갑자기 신년 기자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국민은 물론이고 언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행보였습니다.
원래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오찬 행사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한 실장과의 오찬 행사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이 긴급하게 기자 간담회 일정을 알렸고, 기자들은 황급히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카메라,노트북, 휴대폰 금지, 근접 사진 한 장도 없어’
대통령이 직무 정지됐다고 기자들을 못 만나지는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 당시에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등산을 간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는 ‘비보도’를 전제로 갔었고, 박근혜씨는 ‘보도’를 전제로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보도를 전제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카메라,노트북, 휴대폰을 지참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수첩과 볼펜 정도만 허용됐습니다. 기자들을 불러 놓고 취재를 할 수 없도록 손과 발을 다 묶어 놓았다는 점은 철저히 청와대가 제공하는 자료만 가지고 기사를 작성하게 하는 지능적인 수법입니다.
▲ 보통의 청와대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망원렌즈 등으로 촬영한 근접 사진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청와대가 제공한 사진 6장에는 근접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 ⓒ 청와대
박근혜씨와 기자들이 가진 간담회는 43분간 열렸는데, 언론에 공개된 사진은 청와대 전속사진사가 촬영한 6장이 전부였습니다. 청와대가 제공한 사진에는 근접 사진이 한 장도 없었습니다.
보통의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사진만 봐도 망원렌즈를 이용해 촬영된 근접 사진이 있었던 모습과 차이가 있습니다. 성형수술 의혹을 사전에 막으려는 방편으로 보입니다.
박근혜씨가 새해 첫날이라 기자간담회를했다기 보다는, 1월 3일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탄핵 첫 변론기일 때문으로 예상됩니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고, 탄핵 기각 여론을 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양주사 맞은 게 죄냐? 다 까발리니 민망’
보도를 전제로 기자를 만났다는 사실은 박근혜씨가 처음에 했던 말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박근혜씨는 “우리 각 언론사에서 오신 분들이지만 암만해도 이쪽에 오시게 되면 소식도 더 많이 들으시고 이해를 더 하실 수도 있게 돼서”라며 “한 식구같이 저는 생각을 합니다.”라는 말로 기자들에게 친근감을 내비쳤습니다.
이후 박근혜씨는 철저히 자기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서는 “나는 정상적으로 이 사건이 터졌다는 것을 보고 받으면서 계속 체크를 하고 있었다”라며 관저에서 지시하고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중앙대책본부에 늦게 도착한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어디 간다고 그러면 확 가는 것이 아니고, 경호하는 데는 필수시간이 필요하다”라며 경호 때문에 늦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경호실은 당시 일지 등을 아직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지시 의혹에 대해서는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며 “누구를 봐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제 머릿속에서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부회장 독대 자리에서 ‘삼성의 승마협회 지원이 왜 늦어지느냐’라며 화를 냈습니다. 이 회장은 독대 후 서둘러 회의를 소집해 승마협회 지원이 재빠르게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씨는 백옥, 태반 주사와 미용 시술 의혹에 대해서는 ‘사적 영역에 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순방 때는 시차 적응과 피로 때문에 영양주사도 놔줄 수 있다’라며 큰 죄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씨의 이와 같은 변명은 그동안 청와대와 변호인단이 주장하는 ‘개인 사생활’ 주장과 비슷합니다.
박근혜씨는 최순실씨의 비선개입 의혹이나 특혜 의혹 등에서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대국민간담회에서는 ‘앞으로는 사사로운 인연을 끊고 살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이번 간담회에서는 “오랜 세월 아는 사람이 생길 수 있는데, 지인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며 “대통령으로서의 책무가 있고 판단도 하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지인이 다하고, 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영재 성형외과 특혜 의혹에 대해서는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으면 받고, 그런 자격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라며 특혜가 아닌 기술력에 따른 지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은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라며 “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참 좋은 일이 아니냐고 그렇게 들었다.”라며 유 전 장관이 말을 바꾸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종합해보면 박근혜씨는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방어와 변명하는 시간’으로 일관했습니다. 아직도 뭐가 잘못이고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태도였습니다.
‘통 문장에 그런데, 그런, 이렇게만 반복했던 기자 간담회’
박근혜씨와 기자들과의 대화는 전문으로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어도 당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통문장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뭐랄까, 보도라든가 소문, 얘기, 어디 방송 나오는 것을 보면 너무나 많은 왜곡, 오보, 거기에다 허위가 그냥 남발이 되고 그래 갖고 종을 잡을 수가 없게,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또 보면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어’, 조금 있다 보면 ‘아니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어’ 이런 식으로 가서 홍보실에서 이렇게 하다가는 한도 끝도 없겠다고 그래 갖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보 바로 잡습니다 해 갖고 했는데 그것도 다 못 잡고, 지금 있는 것만 해도 수십 개이고, 아마 다 합하면 셀 수 없이 많을 겁니다.” 이처럼 긴 글이 한 문장입니다. 끊어서 읽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박근혜씨의 말은 ‘그런데, 그런’이라는 말이 81번, ‘이렇게’가 34번이 나옵니다. ‘그런’은 무엇이고, ‘이렇게’는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한 내용은 박근혜씨 외에는 알기 힘듭니다.
‘모든 것이 철학과 소신에 따른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정확한 워딩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회피 차원인 동시에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고 때문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2016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도 국민들은 차가운 날씨에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간 국민들이 2017년을 희망차게 시작하려는 새해 첫날, 박근혜씨는 국민들의 마음에 다시금 분노의 횃불을 당겼습니다.
박근혜씨는 통치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의 국정 운영이 처벌도 탄핵의 대상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통치 행위는 국민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새해 첫 날부터 국민의 분노를 유발하는 자체는 아직도 개인적인 삶과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망각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천만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몇 달째 거리에 나온 사실을 알고 있다면, 최소한 국민을 위해 죄송하다는 말부터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씨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박근혜씨가 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는지 본질적인 이유입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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