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희야, 빨리 평양으로 돌아오렴”

평양 가족들과 영상통화한 김련희씨 “문재인 정부가 송환 허락하길 기대”
“사랑하는 딸 련희야. 빨리 평양으로 돌아오렴. 이 엄마가 앞을 못 보는 몹쓸 병에 걸렸다. 너무 늦으면 네가 와도, 이 엄마는 그리운 딸의 얼굴을 못 볼지도 모른다.”
▲ 평양시민 김련희씨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평양에서 김씨의 어머니도 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에 사는 ‘평양시민’ 김련희씨가 평양의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평양을 방문 중인 재미동포 신은미씨를 통해서다. 
김씨는 6년 전 탈북자 신분으로 서울에 온 이후 줄곧 북으로 송환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252
김씨는 이날 영상통화에서 평양 여명거리의 한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딸 리련금(23), 김책종합대학병원의 의사로 있는 남편 리금룡(52), 어머니 조원희(72), 아버지 김세환(76)씨를 눈물로 만났다.
▲ 평양 여명거리의 한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딸 리련금씨(왼쪽), 민플러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련희씨(오른쪽)
헤어질 때 17살 소녀였던 딸 리련금씨는 이제 대학을 졸업한 뒤 어엿한 23살 처녀 요리사가 돼있었다. 딸 련금씨가 요리사가 된 사연은 엄마 김씨의 눈물을 쏟게 했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17살 소녀가 아버지의 밥을 지었다. 딸이 아버지에게 국이 짜지 않는지 물었다. 짜면 조금만 먹으면 되지. 싱겁지 않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싱거우면 많이 먹으면 된다고 답했다. 
딸은 생각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요리를 배워 아버지의 텅빈 마음을 채워주기로. 이렇게 시작한 요리 공부가 딸 련금씨를 요리사로 만들었다.
마음의 언덕이 되어준 존경하는 아버지 김세환씨를 화면으로 만나자 김씨는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눈물만 흘리다 안부도 묻지 못한 채 통화를 끝낸 김씨는 아쉬움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어쩌면 볼 수 없다는 불안감에 김씨의 어머니 조원희씨는 “빨리 빨리”를 수도 없이 되뇌었다. 영상 넘어 흐릿한 어머니의 눈을 보는 김씨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파왔다.
▲ 22일 평양을 방문중인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김련희씨의 집을 방문했다. [사진 신은미 페이스북]
23일 민플러스 사무실을 찾은 김련희씨는 전날 가족들과의 영상통화가 준 여운으로 상기돼 있었다.
김씨는 가족들에게 못다한 말을 영상통화로 남기면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바라는 문재인 정부는 저의 평양 송환을 허락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아울러 김씨는 지난해 총선 전 기획탈북 된 12명의 북 해외식당 여종업원들이 자신과 함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지난해 4월8일 집단 입국한 북 해외식당 여종업원 [사진 CNN 갈무리]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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