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돐 열병식장에서 연설 도중 흘린 김정은 위원장의 눈물이 화제다.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은 “예상치 않게 맞닥뜨린 방역 전선과 자연재해 복구 전선에서 발휘한 애국적 헌신은 감사의 눈물 없이 대할 수 없다”라며 안경을 벗고 눈물을 보였다.
당국의 비상 방역 시책을 충실히 따라준 인민들에 대한 고마움과 최고지도자의 편지 한 통에 태풍 피해 복구 지원에 나선 수도 평양의 당원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이 교차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조선로동당은 중앙위원회 산하 정치국회의와 정무국회의 등 주요 회의를 통해 총 6차례 코로나19에 대한 고강도 방역 대책을 수립했다.
북한(조선) 당국은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착용과 소독, 등교 연기 등 지나칠 정도로 방역 대책에 심혈을 기울였다.
‘감염자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불만이 터져 나올 법 하다. 하지만 당국의 선택과 최고지도자의 결심을 절대적으로 믿는 북한(조선) 주민들은 말없이 방역 시책을 이행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3천7백만 명이 넘는 감염자가 발생했지만 북한(조선)은 코로나19의 완전한 청정지대가 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당국의 이런 방역 실적을 자랑할 대신 “한 명의 악성바이러스 피해자도 없이 우리 인민 모두가 건강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인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의 피해 복구 건설현장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지도하고 있다.
태풍과 수해로 인한 피해 지역 복구 과정도 김정은 위원장은 만감이 교차한 것으로 보인다.
9호 태풍 마이삭이 함경남북도 해안연선 지대를 덮쳐 1천여 세대의 살림집이 파괴됐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손글씨로 수도 평양당원에게 편지를 썼다. 수도 당원 사단을 조직하여 태풍 피해 복구 지원에 떨쳐나설 것을 호소한 것.
이에 수도 당원들은 하루 만에 1만2천 명 정원을 모두 채웠고, 어떤 당원들은 명단을 보고하지도 않고 몰래 피해 지역으로 달려갔다. 뿐만 아니라 당 창건일 전에 태풍피해 복구활동을 끝내라는 임무를 앞당겨 완수한 제2 수도당원사단은 함경남도 김책시의 복구를 마치자, 집이 있는 평양행을 택하지 않고 스스로 또 다른 피해지역으로 이동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 군인건설자들이 황해북도 금천군 강북리 태풍 피해를 복구하고 살림집을 새로 건설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또 함경남도 검덕지구의 태풍피해 복구투쟁과 관련한 당중앙군사위원회 명령서에 친필서명을 통해 인민군 장병들을 태풍 피해 복구에 투입했다.
이렇게 동원된 군인건설자들은 강원도 김화군, 함경북도 금천군, 황해북도 은파군 일대에서 한달 여 만에 5천여 세대의 살림집을 일떠 세웠고, 지금도 건설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김정은 위원장이 방역과 재해복구에 나선 군 장병과 노동자 그리고 수도 당원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자 이날 수십만 명의 열병식 참가자들도 함께 울며 일심단결의 위력을 과시했다.
▲ 조선로동당 창건 75돐 열병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참가자들
김정은 위원장의 이날 연설에서 또 한 가지 눈길을 끈 대목은 “하늘같고 바다같은 우리 인민의 너무도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기만 하면서 언제나 제대로 한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다”라고 한 부분이다.
한 국가 최고지도자가 공식 석상에서 한 연설치고는 파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공로와 영광을 인민들에게 돌리는 김정은 위원장의 겸양에서 애민 정치를 엿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애민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1월 1일 북한(조선) 최고지도자로 된 첫 신년사에서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구호를 제시해 애민 노선을 확고히 했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은 간부들에게 “수령님들을 모시듯이 인민을 받들어나가자”라고 교시했다.
사실 북한(조선) 사회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어떻게 모셨는지 익히 봐왔다. 그런데 조선로동당과 국가기관 간부들에게 인민을 수령님 모시듯 받들고,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었던 최고존엄을 인민과 대등한 지위에 놓았으니, 이 말을 들은 간부들이 받았을 충격이 오죽했으랴.
간부들도 간부들이지만 이 교시를 들은 인민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수령이 간부들에게 수령을 모시듯 자신(인민)을 받들라고 했으니 말이다.
언젠가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며 인민이 원한다면 하늘의 별도 따오고 돌 우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전당이 위대한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하자!”는 구호를 조선로동당 청사에 새기게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인민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여느 당 창건 행사 때처럼 “백전백승의 조선로동당 만세!”라고 하지 않고 “위대한 우리 인민 만세!”라고 끝맺은 이날 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인민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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