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조문하러 가면서 머릿속을 내내 맴돈 단어는 골든타임이었다. 골든아워(golden hour)의 일상어로 쓰이는 이 말은 죽음을 방지할 수 있는 치료시기가 있음을, 신속한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9월 14일 신당역에서 무참하게 살해된 역무원의 죽음을 마주하며 사람들이 더욱 분개하는 것은 그녀를 살릴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음에도 회사도, 국가기관도 그 기회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정확히는 골든타임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골든타임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성립하는 개념이므로.
서울교통공사에서 일하던 20대의 여성청년노동자는 입사동기로부터 수년간 불법촬영과 스토킹으로 고통 받았다. 용기 내어 경찰에 고소하는 동안 회사는 무엇을 했는가. 두 번의 고소와 수사기간 동안 경찰과 검찰은 무엇을 했는가. 구속으로 가해자의 범죄를 멈출 수 있었던 법원은 왜 그를 풀어줬는가. 두 번째 고소에서 경찰은 구속영장 청구도 하지 않았고,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유치장 구금 같은 잠정조치나 긴급응급조치도 하지 않았다. 검찰도 징역 9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하고도 선고까지 남은 한 달 동안 피해자를 위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보복범죄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잠정조치를 하지 않았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2022.09.16. ⓒ뉴시스
무엇보다 법원의 성폭력에 대한 낮은 인식과 관용적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사유는 ‘증거인멸과 도주의 위험이 없음’이었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 특히 스토킹과 같은 성폭력 범죄에서 가해자들은 도주하기보다 보복범죄를 벌인다. 심지어 ‘너 죽고 나죽자’며 피해여성의 가족들까지 모조리 살해하는 일도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 구속 여부는 도주위험이 아니라 보복가능성과 피해자보호의 필요성으로 판단해야 마땅하다.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 없이, 성차별의 구조가 어떻게 여성의 목숨을 앗아가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기계적으로 영장을 기각했다. 성인지 감수성은 고사하고, 최소한 스토킹처벌법에 잠정조치나 긴급응급조치를 왜 마련했는지에 대한 취지만이라도 이해했다면 도주의 우려가 없음을 근거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300번의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 의미하는 집요한 폭력성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가 추가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방치하지 않아야 했다.
또한 반성문과 그의 공공기관 정규직 신분, 그리고 수많은 자격증들은 영장을 기각하는 근거로 작동했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자는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며 의사나 공무원 등 수많은 안정적이고 엘리트 직업군에도 많다. 오히려 가해자의 능력은 보복 가능성을 높이는 기제이므로 불구속 사유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이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판사의 책임을 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 특히 스토킹과 같은 성폭력 범죄에서 가해자에 대한 감시와 제재가 없으면 그것이 살인으로 이어진다. 재판부는 언제까지 여성의 죽음에 공모할 것인가. 만약 국가기관이 법에 명시된 일들을 제대로 했다면, 국가기관이 여성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작동했다면 살릴 수 있는 목숨이었다.
성인지도, 책임감도 없는 서울교통공사
서울교통공사는 말할 것도 없다. 피해 여성노동자가 최소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분리조치, 임시조치를 해야 했으나 하지 않았다. 직장 내 성폭력의 특성상 제대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으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보면서 일을 하며 심리적 고통과 불안을 겪어야 한다. 2차 피해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런데 회사는 가해자에게 제재가 아니라 직위해제조치만 하고 가해자에게 월급과 성과급도 주며 보복을 기획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피해자의 동선과 근무형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교통공사를 공범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서울교통공사는 공식적인 사과도 하지 않은 채, 국무총리의 지시라며 재발 방지대책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오피스톡에 올렸다. 성인지 없는 공공기관 운영으로 여성노동자가 사망했음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근본적 대책이 나올 수 있다. 회사는 대책이 아니라 임기응변식 ‘아이디어’만을 찾았다. 여성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보다는 ‘국무총리에게 보여줄 아이디어’가 더 시급했던 것이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16일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의 글이 붙여 있다. 2022.09.16 ⓒ민중의소리 구조적 성차별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권은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성폭력 근절은 여성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시급한 일이다. 성차별적 관행의 개선 없이 여성의 노동권 보장은 불가능하다. 여성노동자들이 이직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 경험이 사유라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성폭력 근절을 위해 기업과 국가가 노력하지 않으면 여성노동자의 고용안정성도, 일자리의 질도 보장할 수 없다.
물론 대면서비스를 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2인 1조와 같은 대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2인 1조가 된들 성차별적으로 기관을 운영한다면 여성혐오에 기반 한 여성살해를 막을 수는 없다. 이번 사건처럼 2인 1조를 한다 해도 가해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지를 아는데 퇴근길 살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와 기업이 여성의 노동권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성인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구조적 성차별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권은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여성노동자는 젠더폭력의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되고 있으므로 인력보충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성폭력에 대한 회사의 단호한 조치와 반성폭력 교육이 없으면 공염불이다.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고위공직자들
그런데 여성노동권 보장을 고민하고 기획해야 할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번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사건은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근거는 말하지 않았지만 단순 보복살인이나 단순 스토킹사건으로 치부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보복이나 스토킹을 한 것은 여성동료를 자기결정권이 있는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성차별과 여성혐오 인식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스토킹과 보복살해를 여성혐오의 맥락과 성차별의 사회구조를 때어놓고 말할 수 없다.
왜 여가부 장관은 이런 여성혐오에 기반 한 여성살해를 부인하려하는가. 아마도 현 정부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가부 폐지를 내세워 당선된 정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현실을 인정하면 지지기반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 여성살해 사건의 책임이 현 정부에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건의 성격을 호도함으로써 현 정부의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번에도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면 여성시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와 근본적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부의 지지기반은 더 사라질 수 있다. 출범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청년들이 행정부의 부재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스토킹 방지대책 관련 관계부처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09.16. ⓒ뉴시스
고인의 용기를 기억하며 길을 내자
참담한 마음으로 잠 못 이루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국가의 도움 없이, 국가의 구조 없이 우리는 스스로 살아남지 않았냐고. 우리는 우리의 힘을,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힘이 있음을 직시하자고.
우리 스스로 살아남았듯이, 국가의 기능이 여성시민을 위해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우리의 힘으로 제도와 법과 관행을 바꿀 것이다. 수년 간 직장 내 성폭력에 맞서 싸운 고인의 용기를 기억하고 애도하며 우리는 길을 낼 것이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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