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뉴시스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사법 절차가 대통령실(국가안보실)에 보고된 이후 돌연 국방부에 의해 가로막혔다. 채 상병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고자 초동조사를 벌이던 해병대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은 졸지에 집단항명수괴죄 피의자가 되어버렸다.
박 전 단장은 안보실에 파견된 해병대 대령으로부터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던 채 상병 사망 사건 초동조사 자료를 안보실장 보고 명목으로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 이첩 자료를 보내줄 수 없다면 언론브리핑 자료라도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고 난 뒤,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초동조사 자료가 요약된 언론브리핑 자료를 안보실 측에 보냈다.
경찰에 이첩하기로 한 초동조사 자료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이 과실치사 혐의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담고 있었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결재까지 거친 상태였다. 그러나 해당 내용이 안보실에 보고된 이후 돌연 상부의 태도가 달라졌다.
국방부 법무관리관(국장급)이 수차례 박 전 단장과의 통화에서 혐의 대상을 문제 삼는 취지의 의견을 전했고, 김계환 사령관은 국방부 신범철 차관이 보낸 문자 메시지라며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 ‘혐의 내용을 빼라’, ‘수사 용어 대신 조사 용어를 써라’ 등의 신 차관의 지시사항을 언급했다.
박 전 단장은 이 과정에서 외압이 작용했다고 판단하고, 최초에 국방부 장관 등의 결재를 받은 초동조사 자료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국방부는 박 전 단장이 상부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의 보직을 해임하고, 집단항명수괴죄를 적용해 피의자로 입건했다. 또한 경찰에 이첩된 자료를 사실상 무단으로 회수했다. 이첩 자료를 회수한 행위가 어떤 법적 근거로 이뤄진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수사단으로부터 과실치사 혐의가 있는 것으로 지목된 임 사단장은 소령 시절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김태효 1차장이 안보실에 있을 때 행정관으로 근무했으며, 같은 시기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관계부서 선임행정관이었다. 이 때문에 안보실에서 무리하게 임 사단장을 구명하려다가 사태가 커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관리관과의 통화 내용, 국방부 차관의 문자 지시 내용 등 박 전 단장이 폭로한 외압 정황은 상당히 구체적인 반면, 국방부는 뚜렷한 반박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단순히 박 전 단장이 허위주장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만 대응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국방부 검찰단의 항명죄 수사를 토대로 윗선의 부당한 외압 의혹이라는 해당 사안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울러 허가 없이 방송 인터뷰에 응했다는 이유로 징계 절차에 착수하기까지 했다. 수사와 징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방위적으로 박 전 수사단장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현재까지 진행된 경과에 비춰보면,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돼야 할 사실관계는 군 수뇌부가 돌연 입장을 바꾼 경위다. 이종섭 장관과 김계환 사령관 등 윗선의 태도 변화 직전 있었던 행위는 안보실(대통령실)에 초동조사 자료가 전달된 것이다. 그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보실에서 군 수뇌부에 무슨 피드백을 했는지가 남게 된다.
그러나 안보실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08.13. ⓒ뉴시스
안보실 고위관계자는 13일 안보실의 외압 행사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관할 부서 현안이 아니라서 이 내용을 잘 알지는 못한다”며 “개인적으로 과거에 비슷한 관계부서에 이름이 같이 올려져 있었다고 해서 여러 정황을 추측하고 가짜뉴스를 만들어가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국가안보실에서 무엇이 보고가 돼서 그것이 다시 수정돼 절차가 어그러지는 그런 상황은 없었다고 보고, 저 자신이 그런 보고나, 그와 관련해서 접한 사실이 없다”고 수사개입 의혹을 거듭 부인했다.
국방부가 외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지난 11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공지 내용에 담겨 있다. “법무관리관은 국방부장관의 지침을 받아 군사법원법의 취지를 설명한 것이며, 외교안보부처의 경우 통상적으로 안보실과 언론설명자료를 공유하고 있어 ‘외압 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채 상병 사망 사건 초동조사 자료를 ‘통상적으로 안보실과 공유하던’ 자료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상 해당 자료는 명백히 경찰에 수사권이 부여된 독립적인 형사사법 사안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국방부 설명대로면 해병대 수사단이 초동조사를 거쳐 이첩된 경찰의 독립적 수사 사안을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오히려 권한을 남용한 위법을 저질렀다고 자인한 꼴이다.
안보실과 국방부가 박 단장이 제기한 외압 의혹에 대해 제대로 된 반박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결국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수사 절차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규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단장 측은 국방부 검찰단의 항명죄 수사를 거부한다고 선언한 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11일에는 국방부의 이첩 자료 회수, 수사 개입 의심 행위 등과 관련해 강요미수, 공용서류 무효,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면담 강요죄 등을 적용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수사를 의뢰할 가능성도 시사한 바 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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