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매일경제는 1면에 평창행 KTX 열차가 지나가는 용산역 일대의 낙후된 모습이 국가이미지를 훼손한다며 임시 가림막을 설치해야 한다는 기사를 배치했다.
1월 17일 <매일경제> 1면에는 <평창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배치됐다. 평창행 KTX 열차가 지나는 용산역 인근의 낙후된 모습을 올림픽을 위해 방문한 외국인이 볼까 부끄럽다는 내용이다.
“열차 창문 밖으로 무너져가는 노후 주택과 녹슨 철제지붕, 폐타이어와 쪼개진 기왓장이 그대로 보인다. 멀리 보이는 한강트럼프월드 등 고층 빌딩들과 겹쳐지면 서울은 엄청난 빈부 격차를 지닌 도시로 보일 수밖에 없다. 외국에 국격을 높일 올림픽이 되레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국격을 높여야 할 올림픽 개최가 철저하지 못한 준비로 자칫 국가 이미지만 떨어뜨릴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2017년 매일경제 ‘평창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
기자는 빈부의 격차를 드러내 국가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으니, 임시 가림막이라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사를 읽으면서 기자가 ‘올림픽 난민’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2만명의 올림픽 난민이 발생했던 1988년’
▲1987년 서울 상계동 철거 현장 사진 ⓒ경향신문
대한민국은 평창올림픽 이전에 88올림픽을 개최한 적이 있다. 1987년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이 잊힐 만큼 온 나라가 기쁨과 환호로 가득 차 있었다. 대다수 국민이 올림픽으로 들떠 있었지만, 무려 72만 명의 ‘올림픽 난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
1981년 서독 바덴바덴에서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확정되자, 전두환 정권은 그 이듬해인 1983년부터 ‘전면 철거 후 주거지 개발’이라는 도시 재개발사업을 시행한다. 1983년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93개 지구(42만6490㎡)에서 사업이 강제로 추진됐고, 72만 명의 시민이 서울을 떠나야 했다.
전두환 정권은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두 가지 명분을 내세웠다. 싼값에 아파트를 지어 올림픽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과 도시 영세민과 무주택자의 주거 환경 개선이었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의 수익은 대부분 건설회사와 독재자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지역에 살던 도시 영세민들은 정든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단 몇 분의 성화 봉송을 위해 땅굴 생활을…’
▲상계동 주민들의 철거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 ⓒ김동원
당시 김포공항에서 강동 올림픽촌까지 가는 강변도로에서 보이는 판자촌은 대부분 철거됐다. 비행기 항로 상에 위치했던 신림동이나 봉천동도 철거됐다. 올림픽을 찾는 외국인이 비행기나 차에서 볼까 창피하다는 이유였다.
도시 영세민들이 아무리 철거를 반대해도 전두환 정권은 ‘올림픽’을 내세워 묵살했다. 가난한 한국의 모습은 절대 보여 줄 수 없다는 암묵적 여론은 폭력과 진압이 동반된 ‘강제 철거’를 정당화했다.
1987년 4월 4일 상계동에는 천 명이 넘는 용역과 전경들이 진입해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상계동 주민들은 명동성당 앞에 두 개의 대형 천막을 짓고 무려 300여일을 보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주민들은 부천 고강동 고속도로변 주변을 매입해 집을 짓기로 했고 부천시도 이를 허가했다.
부천에 도착한 주민들은 드디어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다며 임시 가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며칠 뒤 들이닥친 용역들은 가건물을 철거했다. 88올림픽 성화 봉송이 지나가는데 가건물이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움막을 짓고 땅굴을 파서 겨우 생존했다. 단 몇 분의 성화 봉송을 위해 주민 수백 명이 무려 10개월간 땅굴 생활을 했다. 부천시는 이마저도 보기 싫다면 대로변에 높은 담을 설치했다. 철거 투쟁에 동참했던 고은태 교수는 “‘외국인들에게 너희는 보여서는 안 될 존재야’라고 국가가 말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행위였다”라고 말했다.
▲1986년 매일경제 10면. 상계동 재개발사업을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화면 캡처
우연인지 몰라도 1986년 5월 15일 <매일경제>에는 <우리동네 새모습>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도봉구 상계동 일대에 고층아파트가 신축되면서 신시가지가 조성된다는 내용이다. 상계동 주민들이 철거로 계속 쫓겨나던 시기였다.
“평창동계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달라진 서울과 대한민국의 위상을 지구촌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관계기관들이 이동 경로 등을 고려해 좀 더 능동적으로 거주민들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환경 개선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허송세월한 것이 안타깝다” (2017년 매일경제 ‘평창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
용산역 일대가 개발 사업 지연으로 슬럼화된 것은 분명 문제이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을 찾는 외국인이 본다고 해서 창피할 일은 아니다.
<매일경제> 기자가 주장하는 가림막 설치는 88올림픽 강제 철거의 명분과 비슷하다. 독재자는 국민의 삶보다는 외부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포장되길 원한다. 독재자에게 올림픽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강요한다. 하지만 지금은 1988년이 아니라 2017년이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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