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사랑 ②] 왜 우리말을 살려 써야 하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1.09.2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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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겨레 글살이를 우리글(한글)만 쓸 거냐, 한자를 섞어 쓸 거냐를 두고 쉰 해 넘게 거품 물고 다퉈 오던 일은 오늘날 온 나라 거의 모든 사람이 우리글로만 오롯이 글살이를 하게 됨으로써 헛된 실랑이를 해왔음이 드러났고, 한자를 섞어 써야 하고 그래서 한자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우기던 사람들이 온통 엉터리였음도 또한 한낮같이 환하게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새뜸(신문)이든 배움책이든 한배곳책(대학교재)이든 새카만 한자가 사라지고,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한글살이가 온겨레 글살이에 자리잡았습니다. 우리글이 생겨난 뒤로 오늘날처럼 널리 온 백성한테 두루 쓰인 적이 일찍이 없었지요. 게다가 손말틀이 나온 뒤로는 우리글이 날개를 단 느낌입니다.
그런데 마냥 기뻐할 일만도 아닌 것이 겉으로 보면 우리글살이를 하니 우리말을 잘 지켜온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말은 이제까지 있어 본 적 없는, 가장 바드러운(위태로운) 자리에 놓였습니다. 마치 바람 앞에 놓인 작은 호롱불 같아요. 한마디로 우리글은 살아났는데, 그새 우리말은 죽어갔습니다. 우리 글이 종요로운 것은 우리말을 쉽게 잡아둘 수 있는 연장이기 때문인데 우리 얼이 깃든 우리말을 잃었다면 붙든 글은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말은 우리 겨레 삶 처음서부터 뭇사람들이 만들어내고 다듬어 갈고 닦아 오늘에 이르렀어요. 말은 본디 입말이 바탕입니다. 그래서 우리글이 없던 오랜 동안에도 우리말은 끊어지지 않고 살아남았지요.
한자말은 본디 우리말 뜻을 적어두던 연장에 지나지 않았는데, 한자를 배운 이들이 슬금슬금, 야금야금, 이 글말을 입말로도 씀으로써 우리말에 한자말이 섞여 들어왔습니다. 우리 겨레는 한자말이든 다른 바깥말이든 겨레삶을 넉넉히 하려고 우리 겨레말에 없던 말을 받아들여 우리말로 녹여 써왔습니다. 호미, 메주, 말(타는), 빵, 가마니, 가방 같은 말들이 그러하지요.
이와 달리 한자말로 남아있는 말은 우리말을 잡아먹고 그 자리를 차지한 말입니다. ‘강’이 ‘가람’을 잡아먹고, ‘천’이 ‘내’를, ‘산’이 ‘메, 갓, 재, 배, 덤’을 집어삼켜 이 말들 목숨이 간당간당해요. 그래서 모든 가람 이름, 내 이름, 메 이름, 들과 벌 이름, 절 이름, 마을 이름, 고을 이름, 고장 이름이 다 한자말에 잡아먹혔고 드디어는 사람 이름까지 한자말이 꿰어찬 지 오래되었습니다. 참으로 슬프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우리말을 업신여긴 우리 겨레가 얼마나 못났으면 사랑하는 아들딸 이름조차 제 겨레말로 지어 부르지 못할까요? 이름에 봄 춘, 비 우를 쓴 ‘춘우’라는 이름이 제법 많은데 춘우야, 춘우야, 한해를 부르는 것보다 봄비야, 봄비야, 몇 디위(번)만 불러도 봄비란 말이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집니다.
그것은 우리말에는 우리 얼이 깃들어있어 우리 얼이 깃든 말은 우리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 우리 얼을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지요. 우리 몸은 어버이로부터 물려받지만, 우리 얼은 우리말에서 물려받습니다. 우리 얼이 깃든 뜻깊은 말들이 아무도 쓰지 않아 사라져 갑니다.
말이 갖는 깊은 뜻으로 보면 우리말에 훨씬 못 미치는 한자말이나 하늬말(잉글말, 프랑스말, 도이치말 따위)을 우러르느라 오늘날에도 배운 사람, 높은 자리 사람들이 앞다투어 한자말과 하늬말을 즐겨 씁니다. 입말로도 많이 쓰지만 갈글(논문, 학위논문)에 이르면 온통 한자말과 하늬말뿐입니다.
우리 얼이 깃든 우리말을 살려 써 가꾸는 일은 바로 겨레 얼을 간직하고 이어가는 일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우리말을 배워 익혀 쓰고 그 아이들이 모든 갈말을 우리말로 해가도록 하려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어른들이 나날살이(일상생활) 모든 말마디에서 우리말을 써 갈 일입니다. ▷이어짐
최한실 우리말 살림이
출처 : 울산제일일보(http://www.uj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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