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전 한 곳에서 올해부터 방류를 시작하겠다는 ‘오염수’ 안의 방사성물질 삼중수소 양보다, 중국 55개 원전에서 방류하는 ‘냉각수’ 안의 삼중수소 양이 50배가량 많다는 기사로, 일본이 오염수 해양방류는 정당하다며 내세우는 대표적인 예다.
해당 기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루 사이에 쏟아지자,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를 바탕으로 일본 오염수에 관한 비판적 목소리나 우려를 모두 “괴담”으로 치부하며 일본 옹호에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하면서 일본의 계획을 옹호했다.
쉽게 말하자면, 중국도 저만큼 버리니 일본도 이만큼 버려도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방어논리는 가장 우려됐던 방식이다. 너도 버리니 나도 버리겠다는 방식으로, 세계 각국이 핵폐기물을 비슷한 방법으로 처리하겠다고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오염수 해양방류 대신 비용을 좀 더 들여 육상보관하는 방법을 찾으면, 중국이나 우리나라도 삼중수소 배출량을 줄여보자”는 논의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 “함께 범죄를 저지르자”는 식의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오염수 해양방류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어야 할 얘기가, 오히려 오염수 해양방류를 지지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이 주장은 오염수 방류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폭발한 원전에서 녹아내린 핵연료에 직접 닿은 오염수’와 ‘정상적으로 운전되는 원전에서 냉각수로 쓰인 물’을 같은 것처럼 비교하는 것은 매우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계획을 옹호하는 측에서 맹신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최종보고서’를 보더라도, 여과를 완료한 오염수에는 일본의 주장과 다르게 삼중수소만 있지 않았다. 최소 10개 핵종이 일상적으로 발견되고 있었다. 또 ‘이미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킨 사고원전에서 추가로 오염물질을 방출하는 것’과 ‘정상원전에서 통제된 방식으로 냉각수를 방출하는 것’은 같을 수가 없다.
6월 초에 배포된 원안위 자료 ⓒ원자력안전위원회
중국 55개 원전, 후쿠시마 원전보다 50배 많다?
연합뉴스, TV조선 등 보도의 출처는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 원자력안전위원회다. 누구보다 원전의 안전을 견인해야 할 기관이 정반대의 주장을 위한 근거자료를 만들어서 언론에 배포한 것이다.
민중의소리가 지난달 12일 원안위에 요청하여 받은 자료는 A4 반 페이지 분량으로 ‘한국·일본·미국·캐나다·중국의 삼중수소 연간 배출량’이 표로 정리돼 있었다. 다만, 각국 연간 배출량의 출처는 모두 다르고 참고한 자료의 작성 연도도 달랐다. 각국 연간 배출량을 따지려면 각국 원자로 개수도 알아야 하지만, 이조차 나와 있지 않았다.
원안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214 테라베크렐(TBq)의 삼중수소를 배출했다. 일본은 2019년 175 테라베크렐을 배출했고, 중국은 2020년 1054 테라베크렐을 배출했다. 1714 테라베크렐을 배출한 미국과 1831 테라베크렐을 배출한 캐나다가 훨씬 많긴 하지만, 이 자료만 보면 확실히 중국의 삼중수소 배출량은 한국·일본에 비해 많다. 세계원자력협회(WNA)가 취합한 가동 가능한 원전은 중국이 55기, 한국이 25기, 일본이 10기다. 일본은 총 33기의 가동 가능한 원전이 있는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부분의 원전 가동을 멈췄다가 재가동 원전을 하나씩 늘리고 있다. (▶ WNA)
국민의힘과 몇몇 언론이 중국 55개 원전과 비교한 것은 후쿠시마 원전 한 곳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원전에 쌓인 130만t의 오염수를 30년에 걸쳐 해양방류할 계획인데, 이런 방식으로 “한 해에 22 테라베크렐의 삼중수소를 방출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오염수 방류가 일본의 계획대로 100% 이루어질 경우 후쿠시마 한 곳에서 한 해 배출되는 양보다 중국 55개 원전에서 배출되는 양이 50배에 이른다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녹아내린 핵연료에 직접 닿은 오염수’와 ‘정상적으로 운전되는 원전에서 냉각수로 쓰인 물’은 결코 같지 않다. 핵연료에 직접 닿은 오염수에는 과학자들도 가늠하기 어려운 수많은 핵종뿐만 아니라 온갖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IAEA 최종보고서 59쪽 ⓒIAEA
전문가가 말하는 ‘오염수’와 ‘냉각수’의 차이 5중 보호막 깨진 핵연료 뒤섞인 ‘오염수’ 여과한 ‘오염수’서 10개 핵종 일상 검출 불순물이 거의 없는 ‘냉각수’와 같을 수 있나
원전산업 현직에서 일하며 여러 ‘방사능 환경’ 작업을 경험한 국내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보통 한국·중국의 정상원전에 쓰이는 핵연료는 녹지 않은 상태여서 방사성물질이 흩어지지 않고 고체처럼 묶여 있다. 또 피폭제가 핵연료를 감싸고 있으며, 그 위에 콘크리트 장벽 등 다중의 보호막이 있다. 업계에선 이를 “5중 베리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 쓰이는 냉각수는 아주 깨끗한 물이다. 작은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어도 원전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증류수에 가까운 물을 쓴다. 따라서 배출되는 냉각수에는, 정상원전을 운영하다 보면 계속 만들어지는 방사성물질 삼중수소 외 별다른 핵종은 없다고 봐야 정상이다.
반면, 후쿠시마 원전은 5중 보호막이 모두 깨진 상태다. 특히, 핵연료가 녹으면서 주변 구조물과 뒤섞인 ‘데브리’(debris)는 강력한 방사선을 뿜어낸다. 인간은 당연히 데브리에 다가갈 수 없다. 일본이 여러 차례 보낸 로봇조차 오래 버티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이 데브리의 양은 약 880t에 이른다고 한다. 거기다가 온갖 불순물이 섞인 빗물·지하수·해수가 핵연료와 뒤엉켜 형성된 게 지금의 후쿠시마 오염수다. 얼마나 다양한 핵종과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전문가들도 가늠하기 어렵다. 참고로 독일 카를스루에 핵연구소(KFK)의 2018년 핵종차트를 보면, 지금까지 발견된 핵종만 4040개에 이른다. (▶ KFK 핵종차트)
일본은 알프스(ALPS)라고 부르는 여과설비로 삼중수소와 탄소14를 제외한 대부분 핵종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이 보관하고 있는 전체 130만t의 오염수 중 70%는 여전히 수많은 핵종으로 오염된 상태다. 이 중 상당한 양은 기준치보다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1만9909배까지 오염됐다. 이는 알프스로 처리하지 않은 물이 아니라, 기준치까지 낮추기 위해 계속 알프스로 재처리하고 있는 물이다.
무엇보다 정부·여당이 신뢰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본 오염수 방류 최종보고서’에 “7가지 주요 방사성물질과 삼중수소, 탄소-14, 테크네튬-99 등이 알프스 처리수에서 일상적으로 검출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삼중수소와 탄소-14 외 62개 핵종은 전부 제거할 수 있다는 일본의 주장과 다르게, 여과 처리된 물에서 10개 핵종이 검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칼슘과 유사한 형태로 체내 뼈에 축적되며 체내피폭을 일으키는 스트론튬-90’과 반감기가 무려 1570만년인 아이오딘-129, 21만년인 테크네튬-99 등도 있었다.
카를스루에 핵연구소 핵종차트 ⓒEPJ에 실린 카를스루에 핵연구소 보고서
대량 방사성물질 나온 사고원전서 또 오염수 방류해도 괜찮다는 ‘궤변’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폭발하여 주변과 전 지구를 심각하게 오염시킨 ‘사고원전’이다. 따라서, ‘오염수 방류’와 ‘냉각수 방류’를 똑같은 것처럼 다루는 행위는 심각한 왜곡을 부른다.
안전 보다 비용을 따지다가 ‘쓰나미’ 피해를 본 후쿠시마 원전 1·2·3·4호기는 2011년 3월 12일부터 15일 사이 모두 폭발했다. WNA는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면서 940 페타베크렐(PBq) 규모의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방출됐다고 추정했다. 이 방사성물질의 대부분은 후쿠시마 주변과 태평양 바다에 떨어지면서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또 매일 800t의 오염수가 형성됐다. 사고 초기, 오염수의 대부분은 그냥 바다로 흘러갔다. 일본은 이 중 일부를 퍼 올려 보관하려 했으나, 빠르게 느는 오염수 때문에 2011년 4월 1만t이 넘는 고농도 오염수를 무단 투기했다. 이후 일본은 오염수의 형성과 방출을 막기 위해 동토벽을 세우는 등 여러 조치를 했으나, 바다로 새는 것을 100% 막기란 불가능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일정량의 방사성물질이 바다와 환경으로 새고 있다고 본다. 매해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히는 ‘세슘 우럭’이 여러 증거 중 하나다. (▶ 관련 민소 기사)
오염수 방류는 이같이 이미 심각하게 오염된 환경을 추가로 오염시키겠다는 행위다. 본질적으로 ‘국제규범에 따라 전 세계 정상원전에서 이루어지는 냉각수 방류’와는 차원이 다른 지점이다.
일본은 훨씬 주변국에 피해를 덜 끼치면서 해양환경에 안전한 여러 대안이 있는데도, 가장 손쉽고 저렴한 해양방류를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방류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매우 안 좋은 선례가 되어, 다른 국가에서도 이같이 핵폐기물을 처리하겠다고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용어 설명
※ 베크렐(Bq)은 방사능의 강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매초 몇 개의 붕괴가 일어나는가?”를 표시하는 양이다. 다만, 이 양이 “매 초 몇 개의 방사선을 방출하는가?”를 나타내진 않는다. 한 번의 붕괴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의 수는 반드시 한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베크렐은 방사성 핵종의 양을 나타내진 않는다. 핵종의 양에 비례하긴 하지만, 같은 수의 핵종이라고 하더라도 반감기가 짧은 것일수록 단위시간에 일어나는 붕괴가 많기 때문이다. - 타다 준이치로의 ‘질의 응답으로 알아보는 방사선-방사능 이야기’ 참고
※ 1 테라베크렐(TBq)은 1조 베크렐을 의미한다. 1 페타베크렐(PBq)은 1000조 베크렐을 의미한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评论
发表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