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슬픈 대한민국’
-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 입력 2022.11.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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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칼럼]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대통령 말이다. 그럴 만도 했다. 이태원 참사로 온통 슬픔에 빠진 상황이었다. 경북 봉화의 아연 광산 갱도에서 221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소식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두 명이 매몰되어 있을 때 대통령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준비하겠다고 공언도 했다. 두 광부는 퇴원하면서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전국 곳곳의 어두운 지하에 들어가 있는 ‘산업전사’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간곡히 당부했다.

그런데 보라. 11월16일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광산피해 방지법’ 개정안은 방향이 정반대다. 대다수 언론이 보도에 인색했지만 ‘광산업자 등이 관리 감독을 거부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 규정을 ‘500만 원 이하 과태료’로 확 낮췄다. 광산이 매몰되었을 때 안전 대책이 소홀했다는 지적이 많았음에도 사고 사업자의 처벌 수위를 되레 낮춰주는 법안이다. 매몰되었을 때 대통령의 공언과도 정반대다.
광산업만도 아니다. 각종 사업자의 경제형벌 수위를 낮춰주는 법안 14개를 입법예고 했다. 화학 사고로 상해를 입힐 경우 금고 10년 이하에서 7년 이하로 조정하고, 상수원 오염 처벌도 징역 3년 이상 15년 이하에서 1년 이상 10년 이하로 낮췄다. 모두 국민 생명과 이어진다.
국민 안전 무시는 이태원 참사에 어떤 고위관료도 책임지지 않는 행태에서 확인된다. 대통령은 순방 귀국길에서 책임론에 휩싸인 행정안전 장관 이상민과 악수한 뒤 어깨 토닥이며 “고생 많았다”고 말했다. 이상민은 행안부 안의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중견 경찰들을 ‘하나회의 12·12 쿠데타 사건’에 빗대어 살천스레 몰아세웠다. 치안 업무는 경찰청을 통해서 관장하도록 했다며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이 사무 관장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바로 명백하게 나타난다”고 호기를 부렸다. 그렇게 경찰국을 신설하고 프락치 의혹을 받은 자를 국장 임명에 강행한 그는 핼러윈 참사 이후 자신이 “일체의 지휘 권한이 없다”며 “법적 책임은 당연히 없다”고 부르댔다. 하지만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해 경찰이 국민의 생명 안전보다 정권 안보와 대통령 과잉경호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전문가의 분석은 합리적이다. 바로 그런 장관을 대통령은 계속 두남두며 고생 많았단다. 슬픔에 잠긴 유족들, 압사 위기를 호소했음에도 도움 받지 못한 비애에 그가 진정으로 공감하는 걸까 의심마저 든다.

정권이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에 외려 새로운 절망을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희망을 만들 근거는 있다. 다름 아닌 두 ‘광부’다. 병실을 찾아온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에게 옷에 흙 한줌 묻히지 않는 공무원의 탄광 안전점검 행태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일까. 대통령과 화상 통화를 바랐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통화가 이루어졌으면 “감독할 건 제대로 감독해야한다”는 말을 꼭 전하려고 했다.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예순두 살 광산노동인 박정하의 말을 그와 동갑인 대통령 윤석열이 새겨들을 수 있을까.
함께 매몰됐던 50대 광산노동인도 “회사 소유주부터 시작해서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법률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법률적 허점이 안 보이는 게 선진국 아니냐”며 관련 제도 정비를 당부했다. 스스로를 ‘시골사람’으로만 밝힌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삶의 가치와 방향성을 바꿔 봉사도 하고 사람들을 챙기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지하 190m에서 열흘이나 고립된 두 민중이 체험에서 길어 올린 말들은 깔끔하고 싱그럽다. 경영책임자의 처벌 수위를 가까스로 높인 중대재해법을 완화하려고 안간힘 쓰고 있는 윤석열 정권, 말과 행동이 다른 대통령에게 경청을 권한다. 저 민중의 언어야말로 오늘의 슬픈 대한민국에 깨끗한 희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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