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6.28. ⓒ뉴시스
발행 2023-09-06 19:09:42
수정 2023-09-06 19:32:1
윤석열 정부 들어 대폭 삭감된 임대주택지원 예산이 내년에도 복구되지 않을 전망이다. 월 4만원대의 저렴한 임대료로 주택을 제공하는 저소득층 지원 사업은 오히려 예산을 깎았다. 대신 목돈이 필요한 분양전환형 사업 예산을 늘렸다. ‘약자 지원을 두텁게 하겠다’던 윤 대통령 약속과는 다른 방향이다.
6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2024년도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임대주택지원 예산으로 17조 9,741억원을 편성했다.
올해보다 4,275억원 증액됐지만, 저소득층 주거 안정을 지원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미 올해 임대주택지원 예산은 지난해보다 5조 6천억원 이상 줄어든 상태다. 올해 예산은 대폭 삭감하더니, 내년 예산은 찔끔 올리는 셈이다. 내년 임대주택지원 예산은 지난해 예산 22조 5천억원과 격차가 여전히 크다.
임대주택지원 예산은 무주택자에게 장기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사업들에 쓰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방자치단체가 국토부로부터 융자나 출자 방식으로 지원받아, 주택을 새로 짓거나 민간에서 주택을 매입한다. 임대료가 시세보다 저렴해 저소득층과 서민의 주거 안전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임대주택지원 예산 삭감은 윤 대통령의 약속과 어긋난다. 그간 정부는 긴축재정 속에서도 약자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해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해 절약한 재원으로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발언했다.
임대주택사업 예산 구성을 보면, 특히 저소득층 지원 예산을 많이 깎았다. 대표적인 게 영구임대주택이다. 생계·의료급여 수급자 등 소득 1분위를 대상으로 40㎡ 이하의 소형 주택을 제공한다. 임대료는 시세의 30% 수준으로, 여타 사업으로 공급되는 임대주택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내년 영구임대 사업 예산은 823억원이다. 올해 1,797억에서 974억원(54%) 감액됐다. 지난해 3천억원 이상이던 것이 윤석열 정부 들어 2년 연속 대폭 삭감되면서 내년에는 3분의 1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쪼그라들게 됐다. 예산이 깎였다는 건 주택 공급 물량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내년 착공 계획 물량은 1,516호로, 올해 3,849호에 크게 못 미친다.
영구임대뿐 아니라 행복주택과 국민임대도 사업 예산이 대폭 줄었다. 행복주택은 올해 대비 3,216억원(19%), 국민임대는 2,443억원(47%) 감액됐다.
정부는 기존의 영구‧국민‧행복주택 3개 사업을 통합공공임대 사업으로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임대주택 유형별로 자격 요건과 임대료가 다른데, 이들을 하나로 묶어 입주자 경제력에 따라 임대료를 달리 적용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여러 자격 요건을 단순화해 입주 가능 여부를 쉽게 파악하게 하고, 다양한 계층이 동일한 단지에 어우러져 거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임대주택 사업을 조정하면서 기존 3개 사업의 예산이 줄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국토부는 사업설명자료에 ‘통합공공임대의 본격적 추진으로 국민‧영구‧행복주택 사업승인 물량 없음’이라고 기재했다.
문제는 기존 3개 사업 감액 규모가 통합공공임대 사업 증액분보다 크다는 점이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기존 3개 사업 예산을 깎은 만큼 통합공공임대 사업 예산을 늘렸어야 한다. 영구‧국민‧행복주택은 총 6,633억원 삭감됐는데, 통합공공임대 증액은 3,768억원에 그친다. 사실상 3천억원에 육박하는 예산이 쪼그라든 셈이다. 물량 기준으로 봐도, 올해는 영구‧국민‧행복주택과 통합공공임대 사업으로 공사가 이뤄지거나 매입되는 주택 물량이 14만 7,907호인데, 내년에는 이 수치가 13만 3,312호로, 1만 5천호가량 줄어든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통합공공임대 사업 예산이 기존 3개 사업 예산 감액분만큼 증액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임대주택 사업이 축소됐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임대주택 사업을 통합하는 방향 전환은 필요하다”면서도 “물량을 줄이는 쪽으로 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대주택 유형 ⓒ마이홈포털
‘임대보다 분양’ 기조 고수하는 정부
경기 침체와 재벌 감세로 세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정부는 한정된 예산을 임대보다 분양에 집중 편성했다. 임대주택지원 사업 가운데 내년 예산이 가장 많이 증액되는 공공임대 사업은 5년 또는 10년간 임대로 살다가 이후 분양전환할 수 있는 방식이다. 정부는 해당 사업 예산을 1,180억원에서 8,189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내년 계획된 착공 물량은 5,422호로, 올해 613호의 5배에 달한다.
공공임대는 저소득층이 활용하기에는 장벽이 높다. 임대료가 시세의 90% 수준으로, 영구임대보다 훨씬 비싸다. 공공임대 예산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뉴홈’ 물량은 저소득층에게 그림의 떡이다. 뉴홈 선택형은 6년간 임대로 살다가 분양받는 형태다. 분양을 받게 되면, 전용 모기지를 통해 2% 안팎의 금리로 최대 40년간, 5억원(분양가의 80%)까지 대출을 지원한다. 수도권 지역 추정 분양가는 2억원 중반대에서 8억원 후반이다. 분양가를 3억원으로 가정하면, 일단 6천만원을 내고, 나머지 2억 4천만원 대출에 대한 이자도 매월 40만원씩 빠져나간다. 정부는 뉴홈 물량은 분양가가 시세보다 싸고 시세차익도 보장된다며 분위기를 띄운다. 사람들은 복권 긁듯 신청한다. 그마저도 쌈짓돈을 가진 경우에만 가능하다.
영구임대는 평균 보증금이 190만원, 평균 임대료가 4만 5천원이다. 영구임대 사업 예산을 깎고 공공임대 사업을 확대해, 약자 지원을 두텁게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최은영 소장은 “공공임대는 영구임대만큼 최저소득계층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5년, 10년 분양전환형 임대주택은 저소득층이 접근하기 힘들다”며 “임대료도 비싸고, 분양전환해 집을 사는 것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공이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 건 주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사람들”이라면서 “임대는 줄이고 분양은 늘리는 방식은 주거 복지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내년 임대주택지원 예산 가운데 공공임대 예산을 빼면 오히려 올해보다 2,734억원 줄어든다. 저소득층 주거 복지 예산은 축소되는 셈이다. 임대주택지원 예산을 늘린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실제로는 분양 사업을 확대하는 관료들의 ‘기술’로 풀이된다.
최 소장은 “올해 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한 데 대해 거센 비판을 받고 나니까, 내년 임대주택 예산은 안 줄이려고 한 것 같다”면서 “그런데 자세한 내용을 뜯어보면, 결국 이번에도 분양 중심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내년 분양주택지원 예산을 6천억원 이상 늘어난 2조 1천억으로 편성했다. 임대주택지원 예산이 4천억원가량 늘어난 데 비해 증액 규모가 크다. 내년 착공되는 분양주택 물량은 3만 951호로, 올해 1,969호로 급증한다. 앞서 분양주택지원 예산은 올해도 지난해 대비 1조 1천억가량 증액된 바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면서 임대 위주의 정책을 펴야 전반적인 주거 안정화가 가능하다”면서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저지한 상태에서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분양 사업에 공공 재정을 투입하면 효과가 상당히 반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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