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 바다’…울릉도·독도 포함 동해안 62%에 갯녹음


조홍섭 2015.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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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동해안 갯녹음 첫 항공 정밀조사 결과
여의도 66배 면적 피해, 10년 새 3배 늘어…'바다 녹화' 시급

wh3.jpg» 미역 등 대형 해조류가 사라진 암반에 분홍색 석회조류가 뒤덮고 그 위에 밤송이처럼 성게들이 살고 있는 갯녹음 현장. 암반이 있는 우리나라 모든 연안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바다 밑 암반에 다시마, 미역, 모자반 같은 해조류가 뿌리를 내리고 울창하면 물고기가 많이 모입니다. 이 해조는 일년생이어서 여름이면 녹아 없어지고 이듬해 봄에 포자에서 새싹이 나옵니다. 그런데 석회조류가 암석을 덮으면 해조 포자가 붙을 자리가 없어지죠. 게다가 늘어난 성게가 해조를 닥치는 대로 뜯어먹습니다. 큰 해조가 사라지고 암반을 분홍색, 검푸른색 이끼처럼 덮은 석회조류마저 죽으면 그 위에 아무것도 살지 않는 흰 바위가 됩니다. 사막처럼 바뀌는 거지요.”
 
최상열(57) 강원도 양양군 물치 어촌계장은 우리나라 연안 생태계를 위협하는 갯녹음 현상이 벌어지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연안 해초밭은 물고기와 조개 등 각종 무척추동물이 서식·번식하는 곳으로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wh4.jpg» 대형 해조류가 무성한 바다. 생태적으로 건강한 이런 바다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동해와 남해의 모든 연안에는 다시마, 감태, 모자반 등의 해조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제주에서 본격화한 갯녹음(백화) 현상은 동해 남부와 남·서해로 확산했고 최근엔 동해 북부와 울릉도·독도 등에도 나타나고 있다.

■ 1990년대부터 본격화

wh1_동해_갯녹음_현황.jpg»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 지난해 항공기를 이용한 정밀 조사한 동해안 갯녹음 현황. 그림=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 지난해 동해안 12개 시·군의 수심 15m 이내 연안을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항공기에 초분광센서를 달고 처음으로 동해안 전역을 정밀 측정한 이번 조사에서 전체 암반 1만7054㏊ 가운데 35.6%인 6079㏊가 갯녹음이 심각한 상태로, 26%인 4438㏊는 갯녹음이 진행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갯녹음이 발생한 지역이 전체의 62%에 이른 것이다.
 
갯녹음이 심각한 연안이 가장 넓은 곳은 포항시로 전체의 64%였으며 울산시가 46.4%, 영덕군이 38.6%로 뒤를 이었다. 속초시는 갯녹음이 진행중인 면적이 83.9%로 바다 밑이 급속히 황폐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해시와 고성군도 진행중인 갯녹음 면적이 43%에 이르렀다.

wh8-1.jpg» 울릉도와 독도에서도 갯녹음이 상당 부분 진행하고 있다. 청정해역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wh9.jpg» 심한 상태의 갯녹음 비중이 동해안에서 가장 높은 포항 연연의 실태. 울릉도와 독도에서도 갯녹음이 상당 부분 진행하고 있다. 청정해역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정상 상태를 유지한 암반이 가장 넓은 곳은 울릉도와 독도로 71.9%였는데, 청정해역인 이곳에서도 갯녹음이 28%에 이르렀다. 독도에서는 2000년부터 해조류가 급속히 줄고 갯녹음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산자원관리공단은 갯녹음이 해마다 1200㏊씩 늘어나고 있으며, 이제까지 피해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66배인 1만9100㏊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2004년 피해 면적 7000㏊에 견줘 10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어났다.

wh7.jpg» 갯녹음이 발생해 사막처럼 변한 암반. 이를 사막화 또는 백화현상이라고도 부른다.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갯녹음은 해안에 암반이 발달한 동해와 남해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서해에도 암반이 있는 곳에선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원광대 최한길 교수팀은 2008년 연평도 일대의 바위해안에서의 광범한 갯녹음 현상을 보고하기도 했다.
 
갯녹음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일본에선 1800년대에 처음 보고됐고 1960년대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노르웨이, 북서 대서양, 최근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태즈메이니아 등 온대와 한대 바다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 성게 대일수출 막히면서 급증

640px-Strongylocentrotus_purpuratus_P1160330.jpg» 대형 해조를 뜯어먹는 성게는 갯녹음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사진은 둥근성게의 일종.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갯녹음의 원인은 복잡하고 단일한 결론을 찾기가 힘들다. 최창근 부경대 생태공학과 교수는 “해초를 먹는 성게 등 조식동물 증가 등 바닷속 환경 변화와 함께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 연안 오염, 해조류 남획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가속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위를 덮는 석회조류는 정상적인 바다에서는 해조류와 더불어 잘 살아간다. 해조 숲이 회복하지 못하도록 막는 요인으로는 해조를 뜯어 먹는 성게가 꼽힌다. 국립수산과학원 조사에서 동해안 갯녹음 해역에는 성게가 ㎡당 30마리의 집단을 이룬다.
 
성게는 대형 해조류를 다 먹어치우고도 먹이 부족으로 굶어 죽지 않는다. 영양가는 떨어지지만 석회조류 등 다른 먹이로 교체해 끈질기게 살아간다.

wh10.jpg» 먹이가 사라지면 포식자도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성게는 예외다. 대형 해조류를 다 먹고 나면 빈약한 석회조류를 먹으면서 덩치는 작지만 근근이 살아간다. 한 번 갯녹음이 벌어지면 수십년 동안 지속되는 이유다.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갯녹음 해역에는 사막처럼 희게 변한 암반에 성게만 무리지어 살아가는 독특한 모습이 펼쳐지는 이유다. 일단 생긴 갯녹음은 수십년 동안 유지되며, 일본에서는 80년 동안 지속된 예도 있다.
 
최임호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성게는 둥근성게, 보라성게, 말똥성게인데 1990년대 들어 중국산에 밀려 대일수출이 중단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며 “성게가 20~30m의 깊은 수심에 사는데다 좁은 바위틈에 숨어 있어 잡아내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 바다도 쉬어야 하지만
 
wh5.jpg» 갯녹음은 진행되는데 어민의 생계 때문에 바다를 쉬게 할 수도 없다. 성게를 잡아내고 해조류를 복원하는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해조류를 고정시킨 인공어초를 바다밑에 설치하고 있다.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갯녹음은 바다생태계가 회복능력을 잃고 퇴행하는 현상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인류의 바다 이용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성게를 잡아내고 해조류를 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수산자원관리공단은 2009년부터 바다숲 조성사업을 시작해 지난해까지 ‘민둥 바다’ 66곳에 5909㏊의 해중림을 만들었다.

wh6.jpg» 복원한 모자반 숲에 도루묵이 무리지어 돌아와 알을 낳아 놓았다.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일부 효과도 나온다. 2년 전부터 수산자원관리공단이 인공어초 사업을 벌이고 있는 강원도 양양의 최상열 물치 어촌계장은 “감태와 모자반을 심었는데 해조에 도루묵이 산란하러 많이 모여 올겨울 예전처럼 큰 어획고를 올렸다”고 말했다.

wh0.jpg» 인공어초를 설치하고 해조류를 심은 뒤 어획을 통제해 바다 생태계의 복원을 꾀하는 바다목장의 모습.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최창근 부경대 교수는 “바다 밑은 보이지도 않고 모두의 생활터전도 아니어서 얼마나 망가졌는지 일반 국민은 잘 모른다. 계곡 휴식년제처럼 우리 바다도 쉬어야 하지만 어민의 생계가 걸려 있어 그럴 수도 없다. 바다 자원을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보고 바다를 가꿔 나가는 마인드와 투자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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