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철, 물 싸움엔 부모 자식도 없다는데 아…봐 버렸다, 아랫논 임자의 그 짠한 표정

[원유헌의 전원일기](2)모내기 철, 물 싸움엔 부모 자식도 없다는데 아…봐 버렸다, 아랫논 임자의 그 짠한 표정

원유헌 cameragaga@naver.com
입력 : 2019.06.20 06:00 수정 : 2019.06.20 06:01

제 논에 물 대기
모내기를 앞두고 트랙터로 논 바닥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동안 배수로를 통해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나면 다시 논에 물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 한 방울이 아쉽다. ⓒ 원유헌
모내기를 앞두고 트랙터로 논 바닥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동안 배수로를 통해 물이 빠져나가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나면 다시 논에 물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 한 방울이 아쉽다. ⓒ 원유헌
“뺨따구 안 날렸소?” 
옆 마을 동생 S가 트럭을 멈추고 내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예초기로 논두렁 풀을 베던 중이었고, 아직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논두렁 옆면의 풀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S가 한 말이다. 왠지 피 튀기는 현장의 냄새가 느껴져 뉘앙스를 맞췄다. 
“응, 좀 이따 갈아불라고.” 
바야흐로 모내기 시즌이다.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시기다. 씻나락을 물에 담그면서 시작하는 벼농사는 모내기까지 정해진 시간표대로 오차 없이 진행돼야 한다. 60도의 온탕소독을 마친 나락이 하얀 싹을 틔우고 못자리로 이주해 야들야들 자라는 동안 논에서는 별도의 작업을 수행한다. 1차 마른 로타리(흙을 잘게 부수는 작업) 후 논에 물을 가득 담아 2차 로타리 작업과 써레질(논 흙의 높이를 일정하게 다듬는 작업)을 한다. 다시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을 뺀 후 모내기를 하고 나서 재차 모가 잠기지 않을 정도까지 물을 방방하게 받아둬야 한다. 여기까지가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나락 농사의 절반’이다. 
짧게 설명하기 억울할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다. 물론 로타리와 모내기는 트랙터와 이앙기가 한다. 운전은 기계 주인이 하는데, 나는 주인이 아니므로 기계 주인의 상황과 일정에 맞춰 논의 상태를 스탠바이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이 논에 물 받기다.
논에 받는 물의 양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 보통 경지정리된 논의 한 구역을 ‘한 단지’라고 표현하는데, 보통 가로 30m·길이 100m를 기준 크기로 하며, 4마지기반, 900평, 3000㎡ 모두 같은 크기의 한 단지 면적이다. 이런 단지 논에 물을 받으려면 땅을 적시는 양을 포함해서 대략 10㎝ 정도의 높이는 돼야 한다. 계산은 간단하다. 100m×30m×0.1m=300㎥. 즉 300t의 물이 필요하다. 5t짜리 소방차 60대 분량이다. 몇 년 전 심한 가뭄에 심각한 표정으로 소방차 호스를 잡았던 정치인들도 이 정도 계산은 가능했을 텐데. 
부모 자식 간에도 물싸움을 한다고 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논에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뭄 때는 물론이고 물이 충분하다고 해도 다툼은 생기기 마련이다. 논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사람과 트럭이 적이다. 논농사를 홀로 전담하는 여성 농민이 드문 이유는 순간적으로 뿜어야 하는 근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간혹 거칠게 밀어붙여야 하는 힘겨루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근거 미약한 분석도 해본다. 
며칠 전에도 “낼 모래 써레질 할 수 있게 물 받아 놓으시게요” 하는 기계 주인의 청유형 명령이 떨어졌다. 불퇴전의 각오로 저수지부터 우리 논까지 수로를 훑으며 물길을 뚫어 내려왔다. 한 방울의 물도 흘려 보내지 않겠다는 자세로 수로 바닥까지 꼼꼼히 막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사장님, 절반만 흘려 보내주시믄 안 되까요이.” 
나보다 아래쪽 논 임자인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얼굴만 보자면 논이 아니라 주인이 물을 마셔야 하는 상태였다. 안 된다고 인상 쓰면 수로에 쓰러질 각오가 드러났다.
“이만큼이면 되시겠습니까?” 
물이 내 것도 아니건만 내 논이 상류에 있다고 돌 조금 치워주면서 유세를 떨고 앉았다. 더 상류 쪽 사람들에게 습득한 말투였다. 그나마 물길 터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부드럽게 “사장님~”이라 불러서 기운이 좀 샌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사장님’이란 호칭에 거리낌 없이 고개를 돌리는 내가 신기하다. 소상공인 전력 한번 없으면서 말이다.
이곳에서 ‘사장님’은 잘 모르는 사람(남자)을 부를 때 실례나 시비를 최소화시키는 호칭이다. 사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직원의 유무를 떠나 웬만하면 사장이다. 소상공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농민들은 생산, 유통, 포장, 영업 등을 총괄하는 업무를 직접 하고 있다. 오히려 사장 아닌 사람이 드물다. 자연스러운 호칭이다. 
지금까지 들어본 호칭은 다양한 편이다. 사장님, 아버님, 선생님, 아저씨, 형님, 원씨, 어이 등. 상황에 따라 수긍할 만한 호칭도 있고, 참 어색하고 불편해서 귀에 익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도 그나마 부르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참고 적응하는 편인데, 최근 색다른 호칭을 들었다.
농협에서 진행하는 농작물 피해보험의 손해평가원 교육이 있어 순천으로 갔다. 구례에는 감나무가 태풍 피해나 냉해를 입는 경우가 많아 일반 농민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 뒤 실전에 투입하기 위한 교육이다. 주변 시·군에서 모여서 교육장인 2층은 로비까지 붐볐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도 만원이라 귀찮아도 1층 화장실로 내려가니 한적하고 좋았다. 손 씻고 엉덩이에 물기 문지르며 다시 계단으로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두어 발짝 더 가는데, 또 불렀다. 싸한 느낌에 ‘설마’ 하며 돌아보니 멀리서 한 여인이 다가왔다. 누군가를 부르던 그 여인과 나 사이엔 아무도 없었다. 조명도 안 켜져 실루엣만 보이던 그 여인은 한껏 다가서며 살갑게 말했다. 
“어르신, 엘리베이터 이용하세요. 이리 오세요.” 
왜 가슴이 내려앉았을까. 점점 다가오면서 드러나는 그 여인의 액면 연령은 어림잡아도 내 아래는 아니었다. 나처럼 그 여인도 나의 실루엣만 봤을 텐데, 무슨 근거로 어르신이라고 불렀을까. 생전 처음 듣는 호칭에 심장은 계속 나대고 있었다. 약간의 어색함, 그보다 좀 더한 억울함 때문이었다.
모내기를 마친 논에 노을이 비치고 있다. 이맘때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지는 시간이다. ⓒ 원유헌
모내기를 마친 논에 노을이 비치고 있다. 이맘때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지는 시간이다. ⓒ 원유헌
사실 ‘어르신’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대상의 기준이 객관화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만 65세 이상의 대한노인회 소속 회원증을 소지하거나, 노화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서 도움과 공경이 필요한 정도의 노인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동네에서도 여든 넘은 분들 중 일부만 듣는 극존칭이다. 물론 모르는 분들을 ‘어머님. 아버님’ 하기 쑥스러워 어르신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게 그렇게 소리지른 것은 폭행이었다. 
그 여인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됐다 괜찮다며 계단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이후 2시간여 진행된 교육은 기억에 없다. 내내 생각했다. 도대체 뭘 보고 어르신이라고 불렀을까. 내 몸이 이미 어르신 체형인가? 다리가 짧아서? 팔이 굵어서? 목이 거의 없어서? 
결론은 자세였다. 어쩌면 흐느적, 어쩌면 뒤뚱거리며 걷는 모양이 몸이 불편한 노인의 걷는 모양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다. 순간적으로나마 아무런 근거 없이 그 여인이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선택했을 리 없고,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내가 제공했을 것이다. 자가배양하던 억울함을 진정시키고 반성 모드로 전환했다. 힘 있게 걸을 것이다. 꼿꼿이 펼 것이다. 턱은 당기고 엉덩이를 모으면서 발끝을 뻗을 것이다. 
예상대로 노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게 또 나와 타협하고 허물어졌다. 그러니 아랫논 임자의 사장님 호칭도 고마웠던 것이다. 
동생 S의 말대로 논두렁 뺨따구를 마저 날린 뒤 잠깐 집으로 갔다. 아르바이트 겸 배운 도둑질 써먹느라 군청 일을 하던 것이 시간에 몰렸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독촉이 쏟아졌다. 왜 일은 이렇게 한꺼번에 몰리는지, 하마터면 억울할 뻔했다. 
누군가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고 했다. 며칠 내내 뛰듯 지내는 이유는 분명 며칠을 걷는 만도 못하게 지낸 탓일 거다. 손 더디고 발 느린 걸 본인이 제일 잘 알면서 뛰기 싫으면 서둘러 걷기라도 할 일이지, 안 하고 미룬 일 고스란히 자신이 할 거면서 괴롭기 전에 편안함을 먼저 누린 죗값이다. 나의 선택일 뿐이다. 
4시간 만에 돌아온 논의 물꼬는 심하게 변형돼 있었다. 모인 물이 논으로 흐르도록 댐처럼 가로막았던 돌무더기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수로에 길게 흩어져 있고, 그나마 바닥에 붙어 내려오던 물은 누군가의 상류 댐에 가로막힌 듯했다. 빠진 기운 추슬러 다시 한번 수로를 따라 여행을 해야 했다.
만약,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논에 물이 심하게 들어가 넘칠 것을 걱정하는 것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물이 방방해서 잡초가 덜 나는 것이오” 할 것이다.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논에 물이 가득하고 논두렁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여 물 한 방울, 우렁이 한 마리 새나가지 않아 일 좀 줄고 편안히 농사짓는 것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혼자 잘 노는 편이다. 농사의 좋은 점은 몸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머릿속은 맘대로 놀아도 된다는 것이다. 명상-상상-공상을 이어가다 지치면 라디오 청취도 좋다. “이번 U-20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 선수들은 정말 신체적인 피지컬이 대단합니다.” 전문가의 의견이란다. 심리적인 마인드가 안정되고 정신적 멘털이 강하다면 전설적인 레전드가 나올 거라는 예상은 나도 하겠다. 라디오는 아침에만 들을 만했다. 껐다. 
해는 저물고 자동으로 몸이 지쳐갔다. 수로를 따라 내내 숙인 제법 큰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들어보니 예전에 인사드렸던 옆 동네 어르신이 지나고 있었다.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일은 다 끝내셨어요?” 
반가워하려다 정색을 하셨다. 
“일이 어떻게 다 끝나나. 죽어야 끝나지.” 
아무 말도 못했다. 까불다 걸린 것 같아 창피했다. 맞다. 어르신들께 일이란 건 그냥 생활이고 습관이고 숨 쉬는 방식일 뿐이다. 끝내야 하는 과업이 아니다. 일생 동안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이며 일을 자신의 일부로 흡수한 모습이었다. 멋지다. 
아닌가? 혹시 저 어르신도 호칭 때문에 삐치신 걸까? 모르겠다. 다음엔 그냥 아버님이라고 해야겠다. 단순한 게 좋은데. 이젠 ‘어르신’ 죽어도 안 쓴다. 에이. 
▶필자 원유헌 

[원유헌의 전원일기](2)모내기 철, 물 싸움엔 부모 자식도 없다는데 아…봐 버렸다, 아랫논 임자의 그 짠한 표정
 
1967년생. 44년간 서울에서 살다가 2011년 연고가 전혀 없는 전남 구례로 내려가 농부입네 살고 있다. 농사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각종 아르바이트로 현찰을 보충하며 연명한다. 2018년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르네상스)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으나 8년째 나아진 건 없다.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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