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뿌리고, 차량 부수고... 지금 노량진수산시장서 벌어지는 일들

19.06.27 08:00l최종 업데이트 19.06.27 08:00l








     
▲ 구 노량진수산시장 충돌 영상 구 노량진수산시장 내 수협-상인 충돌(2019년 들어 발생한 주요 충돌 장면 편집)
ⓒ 이경민
   
옛 노량진수산시장을 처음으로 찾은 건 작년 12월이었다. 수협중앙회 측의 단전·단수로 시장은 어둡고 적막했다. 드문 드문 손님들이 시장을 오가는 동안 몇몇 언론사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상인들은 "기자들 못 믿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갑자기 적막을 깨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호루라기 소리는 수협 직원과 용역들이 구시장에 나타나면 상인들끼리 알려주는 신호였다. 덩치가 큰 수협 직원들과 용역들은 상인들의 물품을 발로 차는가 하면, 항의하는 상인의 주위를 빙 둘러싼 뒤 쓰러뜨리고 밟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60, 70대 연로한 상인들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기도 했다.

상인들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은 방관만 할 뿐이었다. 상인들이 강하게 항의하자 그때서야 수협 직원들과 용역들을 말리기 시작했다. 구급차에 다친 상인을 태운 뒤에야 수협 직원들과 용역들은 물러났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노량진수산시장을 관리하는 수협중앙회가 현대식 신시장을 추진한 것은 2007년부터였다. 건물 추진 당시에는 상인들과 큰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2015년 10월 신시장이 완공된 후부터였다. 완공된 건물을 본 시장 상인들은 신시장이 도면과 달리 구시장보다 면적이 좁고, 사방이 막혔고, 통로 측 가게가 아니면 매상이 떨어질 것이라는 이유로 입주를 거부했다.

수협은 수협대로 이미 여러 차례 상인들과 논의해 지은 건물이라고 맞섰다. 양측의 대립 속에 결국 2016년 3월 기존 구시장 건물 옆에 지은 신시장으로 상인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2019년 6월 현재 상인 100여 명이 이전을 반대한 채 구시장에 남아 있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영업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한다.

"매일 일어나는 일이야, 이제 우리도 적응이 됐어"

수협 직원들과 용역들이 뒤집어놓은 시장을 청소한 뒤 상인들은 영업을 계속했고 시장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해졌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필자는 분노보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인들에게 물었다. "정말 힘드시죠?"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아니야, 매일 일어나는 일이야. 이제 우리도 적응이 됐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어떻게 별일 아닌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지.

다음 날 다시 구시장을 찾았다. 오후가 되자 다시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역시나 수협 직원들과 용역들이 나타났다. 어림짐작으로 봐도 전날보다 숫자가 늘어 100여 명은 되어 보인다.

막말과 협박, 30분 지난 후 경찰 등장, 구급차 등장, 다친 상인 후송, 시장 청소, 영업 시작. 전날과 똑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소름이 돋았다. 구시장 상인들에게 이런 폭력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나는 생각했다.

'생존권이고 투쟁이고 뭐고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다. 가장 급한 것이 상인들의 심리치료다. 그리고 갈등의 현장을 알려야 한다.'

그래서 노량진수산시장 갈등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진보적인 시민사회정당단체 50여 개가 모여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를 꾸렸다. 대책위는 기자회견, 국회 공청회, 서울시민공청회 등을 추진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신청을 했다.

물론 (구)노량진수산시장의 토지와 건물 소유주는 수협이다. 수협으로서는 자신들의 소유지에 상인들이 버티고 있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대화와 소통이 아닌 폭력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더욱 키울 뿐이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다행히 상인들은 지금 훌륭한 심리치료사 선생님들을 만나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 3월 5일 '노량진 수산시장 이전을 둘러싼 충돌에 우려 표명'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인권위는 "구 시장 상인들과 수협 측 직원들 간의 갈등 및 몸싸움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으며, 상호 대응과정에서 폭력으로 중상자가 발생했음이 확인되었다"고 밝히며 수산업협동조합 중앙회장에게 다음과 같이 의견을 표명했다.
 
이에 인권위는 양 당사자들 간의 불신과 갈등이 지속되면서 우발적인 폭력사건이 발생한 바 있고, 수협 측의 추가조치와 이에 대한 구 상인 측의 대응과정에서 양측의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향후 폭력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예방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인권위는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과 관련한 문제가 장기화되고 있고 폭력을 동반한 충돌과 부상자 발생 등이 우려되므로 근본적인 사건 해결을 위하여, 수협 측이 관계기관인 서울특별시 등에 중재・조정 요청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였다.

- 인권위, 3월 5일 '노량진 수산시장 이전을 둘러싼 충돌에 우려 표명'

그러나 인권위 의견표명 이후 4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수협과 구상인들의 충돌은 더 격화됐다.

인권위가 우려 표명했지만.... 더 심각해진 폭력 충돌
 
 구 노량진시장 전역에 단전·단수 조치가 내려진지 하루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구 노량진시장에서 몇 가게들이 발전기로 불을 밝힌 채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2018.11.6
▲  구 노량진시장 전역에 단전·단수 조치가 내려진지 하루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구 노량진시장에서 몇 가게들이 발전기로 불을 밝힌 채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2018.11.6
ⓒ 연합뉴스

지난 5월 20일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 6차 명도집행 도중 저항하던 상인이 수협직원들에게 끓는 해장국을 뿌렸다. 다음날인 5월 21일에는 수협 직원이 1m 크기 해머로 상인의 차를 부수며 행패를 부렸다. 경찰은 상인과 수협직원 모두 구속 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상인만 구속 영장을 발부하고 수협 직원에 대해서는 영장을 기각했다.

이렇듯 폭력 사태가 더 심각해지는 가운데 안타까운 점은 수협 직원들과 용역들 대부분 2년 전만 해도 상인들과 서로 형, 동생, 누이라 부르던 관계였다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노량진수산시장 갈등 상황을 오해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법원에서 명도하라는 판결이 나오지 않았느냐'라고 묻는다면, 먼저 지난 수십년간 그곳에서 장사해 온 상인들이 왜 그러는지 알아야 하고, 일단 폭력 사태를 멈추고 쌍방 간의 심층 대화로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냐고 말씀드리고 싶다.

노량진수산시장 내 분쟁은 해결되지 않은 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당국과 시민사회가 하루라도 빨리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경민 기자는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실무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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