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거 대상' 신부의 예언 "'윤석열 파면' 선고가 귀에 들린다"

 [창간 25주년 기념인터뷰①] 김인국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억지와 순리의 격돌, 결국 선한 쪽이 승리"

25.02.21 07:26l최종 업데이트 25.02.21 08:30l

글: 심규상(djsim)

사진: 권우성(kws21)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가 지난 19일 충북 음성군 생극성당 사제관에서 <오마이뉴스> 창간 25주년 기념인터뷰를 진행했다. ⓒ 권우성

'거리의 사제' 김인국 신부(62, 충북 생극성당 주임신부)가 지난 19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윤석열 12.3 내란 사태 등에 대해 발언했다. ⓒ 오마이뉴스

"윤석열이 '윤석열' 했고, 우리는 우리답게 안과 밖에서 제 할 일을 했습니다."

'거리의 사제' 김인국 신부(62, 충북 생극성당 주임신부)의 '12.3 윤석열 내란사태'를 보는 눈은 명쾌했다.

'윤석열이 윤석열 했다'는 건 윤 대통령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제 무덤을 팠다'는 의미다. 그는 이번 사태를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 산골짜기에 은거하는 노(老) 사제로부터 들은 '줄탁동시(啐啄同時)'에 빗대기도 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부리를 모아 동시에 껍데기를 깨며 힘을 합치듯 시민들이 계엄을 막기 위해 안과 밖에서 제 할 일을 다했다는 얘기다.

김 신부는 '거리의 신부' '정의의 사제'로 불린다. 그의 시선과 몸은 늘 험한 곳, 고달픈 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가 함께했던 사람들도 미군기지가 들어선 평택 대추리 마을 주민들, 용산참사 유가족,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유가족들이었다.

김 신부는 최근까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아래 사제단) 50주년 준비위원장으로 대표직을 수행했다. 사제단은 윤석열 출범 1년도 채 되지 않은 지난 2023년 3월, '윤석열 정권 퇴진'을 주장하고 매주 시국 미사를 벌여왔다. 이에 대해 그는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도화선이 됐다"라며 "기념사에 담긴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부자와 강자에 대한 지독한 편애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선을 넘었다고 봤다"고 말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오마이뉴스> 창간 25주년 기념인터뷰를 통해 12.3 내란에 대해 "윤석열을 앞세운 수구 기득권세력은 '억지'로 우리에게 대들었고, 우리는 '순리'로 그들에게 응답하는 중"이라며 "결국 마음이 부드럽고 세상을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승리하며, 기승전이 지나 결말이 오고 있다"고 예언했다. ⓒ 권우성

계엄 직전인 지난해 11월 28일에는 천주교 사제 1466인과 함께 시국선언문을 통해 '헌법 준수와 국가 보위에서부터 대통령의 사명을 모조리 저버린 책임'을 물어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그래서였을까? 김 신부는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TV를 보다 갑자기 정규방송이 중단되더니 '뉴스 속보' 자막이 뜨자 "순간적으로 '윤석열이 사임하는구나!' 생각했다. 깨끗하게 물러나는 줄 알았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유에 대해 "뭐든지 제 맘대로 되지 않으면 못 참는 사람이고 총칼을 들이대고 세상을 무법천지로 만들지 않고서는 종래의 '개 버릇대로' 살 수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그랬던 것"이라며 "말하자면 쉬운 한 방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12.3 내란사태의 핵심 인물 중 한명인 노상원의 수첩에 사제단이 '수거 대상'으로 적시된 데 대해 "그동안 죽을 줄도 모르고 막 떠들고 다녔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라면서도 "명단에 들어갈 만큼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내란 세력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굉장히 무서운 계획을 꾸몄는데 많은 사람들이 단지 '실행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잔인함을 못 느끼고 있다"며 "아직도 그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일부 개신교 단체들이 '반탄핵'을 외치는 사람들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는 "이후 어떤 어둠이 밀려올지는 노상원의 수첩이 다 얘기해 준 거 아닌가?"라며 "기세 있게 민주주의의 진도를 나가고 그 효능을 보여주면 거기에서 얻어지는 결과에 따라 잡음도, 분열도 치유가 될 것"이라며 원칙을 강조했다.

탄핵 심판의 전망에 대해서는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선고가 귀에 들린다"고 단언했다. 아래는 지난 19일 음성군 생극성당 사제관에서 이뤄진 인터뷰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억지와 순리의 격돌

▲ "윤석열이 '윤석열' 했고, 우리는 우리답게 안과 밖에서 제 할 일을 했습니다." ⓒ 권우성

-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시작된 현 시국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윤석열이 '윤석열' 했고, 우리는 우리답게 안과 밖에서 제 할 일을 했습니다. 12·3 내란 당시 외국에 계시다가 내란수괴가 구속되고 헌재 변론이 시작된 다음 귀국하신 어떤 노장 스님은 '그건 윤석열의 회향이었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향'은 자신이 마련한 공덕을 세상에 돌리는 일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윤석열이 알아서 제 무덤을 팠으니 맞는 말이지요.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 산골짜기에 은거하는 노 사제는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비상계엄을 발령한 것도, 우리가 두 시간 반만에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시키고 여태껏 진행 중인 빛의 혁명도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부리를 모아 동시에 껍데기를 깼기 때문입니다. 윤석열이 '윤석열' 했고, 우리는 우리답게 안과 밖에서 제 할 일을 했습니다."

-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밤, 뭘 하고 계셨나요.

"평소라면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인데 그날 밤, KBS '시사기획 창'에서 산림청의 산림 파괴를 고발한다고 해서 시청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규방송이 중단되더니 '뉴스 속보'라는 자막이 떴어요. 순간적으로 '윤석열이 사임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깨끗하게 물러나는 줄 알았지요.

근데 웬걸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사제관에서 혼자 비상계엄 포고령을 듣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는 사람으로부터 '신부님도 몸을 피하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그냥 있었습니다. 국회의장이 '안심해라,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고 했지만 끝내 눈을 붙일 수 없었습니다. 누군들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 왜 피하지 않으셨나요?

"당시에는 아무리 그래도 '우리 같은 사람까지 (어떻게 하겠어?)' 하는 생각도 했고, 신부가 성당을 지키지 않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 그런데 12·3 내란 사태의 핵심인 노상원 수첩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수거 대상'으로 적시돼 있었습니다. 등급을 나눠 500명 정도를 수거 대상자로 분류했습니다. 뉴스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그동안 죽을 줄도 모르고 막 떠들고 다녔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사실 중앙정보부 이래 웬만한 신부들은 늘 감시와 도청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뭐 잡아가면 잡혀가면 그만이지' 하고 쉽게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만일 (노상원 수첩에 있는 대로) 일이 벌어졌다면 피신하지 못한 걸 좀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명단에서 빠지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단에 들어갈 만큼) 역할을 했다는 것 아닌가요?"

- 일시적으로 체포·구금은 하더라도 '수거 대상'까지 계획을 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 아니었나요?

"그 점에서 우리가 아직도 그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너무 몰랐고 지금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사생결단으로 반드시 처단하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굉장히 무서운 계획을 꾸몄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단지 '실행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잔인함을 못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오마이뉴스> 창간 25주년 기념인터뷰를 통해 12.3내란의 실패 이유에 대해 "윤석열과 반란 세력들이 세상 물정을 몰랐고, 시민들과 군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고려하지 않았다"면서도 "이런 모든 걸 고려하면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권우성

- 왜 계엄이 일어났다고 보십니까.

"윤석열로서는 그것 말고 다른 수가 없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쉬운 한 방을 선택한 것이지요. 윤석열은 뭐든지 제 맘대로 되지 않으면 못 참는 사람이고, 우리는 다른 건 몰라도 불의만은 못 참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인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면 주는 대로 받아서 먹고 입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척사파도 싫다, 개화파도 싫다, 우리는 개벽파다' 하는 식으로 동학 이래 세상을 뒤집어엎는 실력을 키워왔습니다. 미련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윤석열은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계엄을 했습니다. 그런 걸 못 참는 우리는 우리 성품대로 맨몸으로 군을 막고 계엄을 무산시켰습니다.

비상계엄을 발령한 쪽은 총칼을 들여대고 세상을 무법천지로 만들지 않고서는 종래의 '개 버릇대로' 살 수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그랬던 것이니, 12월 3일 이래 지금껏 진압되지 않고 있는 '내란'은 그의 억지와 순리의 격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을 앞세운 수구 기득권세력은 '억지'로 우리에게 대들었고, 우리는 '순리'로 그들에게 응답하는 중입니다. 물론 그들은 계엄을 설렁설렁 준비하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했습니다."

- 준비를 철두철미하게? 그랬는데 왜 실패한 걸까요?

"윤석열과 반란 세력들이 세상 물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할 건지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명령을 집행하는 군인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도 빠뜨렸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하늘이 도왔다고 봅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도 단전이 이루어졌다면 5분 차이로 불가능했을 수 있다고 하지 않나요? 그 5분을 위해서 헬리콥터 출동이 30분 늦어졌고, 군인들이 좀 뭉그적거렸고, 시민들은 그야말로 초 단위로 달려왔고. 이런 모든 걸 고려하면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죠."

가장 앞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을 외친 이유

- 2023년 3월 20일 전북 전주시 풍남문 광장에서 '민주주의 회복과 평화를 염원하는 시국 미사'를 통해 윤석열 출범 1년도 채 되지 않아 윤석열 정권 퇴진을 주장했습니다. 1년도 안 된 정부에 대해 정권 퇴진을 전면에 내건 이유가 무엇인지요?

"'3·1절 기념사'가 도화선이 됐습니다. 기념사를 들으면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선을 넘었다'고 봤어요. 기념사에 담긴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부자와 강자에 대한 지독한 편애가 불러올 결말이 눈에 선했습니다. 빈자와 약자에 대한 하느님의 편애를 아는 우리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3·1절 기념사'와 '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 극우들의 망언·망동에 뒤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역사적 면죄에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아낌없이 베풀었는데 빈털터리로, 그것도 가해자 일본의 훈계만 잔뜩 듣고 돌아왔습니다. 무례한 처신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대통령이지만 굴종·굴신으로 온 겨레에게 굴욕과 수모를 안긴 죄는 너무 무겁습니다.

사제단은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1974년 사제단을 창립하던 당시 독재자 박정희와 맞붙던 비상한 각오로 윤석열과 싸우자고 결의했습니다. 그래서 '친일매국 검찰 독재 윤석열 퇴진과 주권회복을 위한 월요시국기도회'를 개막하고 그에게 실격을 선언하고, 퇴장을 명령했습니다.

그때가 사제단 출범 50주년을 1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50년 전에 우리 선배들이 그랬듯이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된다고 한 것이지요. 사제단은 윤석열 정부가 청사에 길이 빛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2022.8.29)했었어요. 이태원 참사로 퇴진 목소리가 드높아졌을 때도 우리의 생활 방식을 먼저 뜯어고치자(2022.11.14)며 기대를 접지 않았었지요."

▲ "결국 마음이 부드럽고 세상을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승리합니다. 기승전이 지나 결말이 오고 있습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선고가 귀에 들립니다." ⓒ 권우성

- 이후 매주 월요일마다 시국기도회를 했습니다. 분위기는 어땠나요?

"덜덜 떨면서 한 건 아니지만 크게 긴장하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국미사를 하며 돌아다니며 각 지역 교회의 반응은 '어서 오십시오!' 혹은 '잘한다, 고맙다' 보다 '도대체 신부님들이 왜 이러십니까?' 하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눈에는 다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게 안 보이나' 했습니다. 그래도 '못되게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저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 하는 생각에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언적인 몸부림'이 된 겁니다."

- 계엄 직전인 지난해 11월 28일 천주교 사제 1466인 시국 선언문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에서 "헌법 준수와 국가보위부터 조국의 평화통일과 국민의 복리증진까지 대통령의 사명을 모조리 저버린 책임을 물어 파면을 선고합시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계엄 사태를 예견했던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선언문에서 윤석열을 '거짓의 사람'이라고 규명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 이후 총 19건의 성명서와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내란 직전에 낸 결론이 '사람이 어째서 이 모양인가!'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있는 것도 없다 하고, 없는 것도 있다고 우기는 '거짓의 사람'/ 꼭 있어야 할 것은 다 없애고, 쳐서 없앨 것은 유독 아끼는 '어둠의 사람'/ 주먹만 앞세우는 '폭력의 사람'/ 하나로 모아야 할 것은 마구 흩어버리는 '분열의 사람'/ 사익의 허수아비요 꼭두각시/ 파괴와 폭정, 혼돈의 권력자/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아주 튼튼한 네 번째 짐승'(다니엘서 7장 7절)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태생적 한계인 '탐진치貪瞋痴'(탐욕, 폭력성, 어리석음)를 이렇게 골고루 갖추기도 힘든데 참 특이한 인물이라 심법을 익히는 데 큰 공부 거리로 삼을 만하다고 봅니다.

사실 이 사람은 2016년 촛불 시민들의 '위력과시'에 놀란 기득권 세력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카드였습니다. 수구의 적자, '박근혜'가 끌려 내려가는 걸 본 유사 왕정 체제의 신봉자들이 한 번 더 밀리면 큰일 나겠다고 총결집해 수준 미달·함량 미달의 윤석열을 내세운 것이지요. 간발의 차이로 정권을 되찾았지만, 탐진치라는 자기모순에 빠져 결국 자승자박하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 탄핵 심판이 거의 마무리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 상황과 이후를 전망한다면요?

"12·3 내란 이후 장편 오페라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 올라온 갖가지 배역을 맡은 배우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고, 이에 서로 다르게 반응하고 대응하는 기세도 흥미롭습니다. 선을 행사하는 사람들(發善)도 있고, 악한 기운을 쓰는 사람들(發惡)도 있습니다. 결국 마음이 부드럽고 세상을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승리합니다. 기승전이 지나 결말이 오고 있습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선고가 귀에 들립니다."

폭정 속에 자라난 봄의 새싹

- 응원봉 집회와 남태령의 기적 그리고 키세스 시위까지 과거의 운동 양태와는 다른 시위들이 펼쳐졌습니다. 2030 여성들의 시위 참여가 광장을 뜨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 양상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국제사회는 '나라가 어두우면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한국 시민들'을 찬탄하고 있습니다. 혼돈과 절망을 회복과 희망의 때로 바꾸었으니 참으로 놀랍고 고맙지요. 우리 교회가 늘 얘기하는 역설이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다'는 것입니다. 윤석열의 죄로 응원봉을 든 청년들이 광장으로 나서서 타인의 어려움을 자기 이야기로 듣기 시작했다는 얘기입니다. 윤석열의 폭정 속에 자라난 봄의 햇마늘 싹 같은 것입니다."

▲ 지난 2024년 12월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과 시민들이 ‘윤석열 체포’'사회대개혁'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 또 한편에는 서부지법 폭동 등 헌법을 부정하는 파시즘적인 행태가 보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이런 행태들이 나타나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시민들이 무지갯빛 응원봉을 노동자·농민·소수자와 연대하는 빛 혁명의 도구로 삼자, 반대편에서 경광봉을 들고나온 것도 참 웃겼습니다. 유사 왕정 체제를 지속하려는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도약이 아니라 스스로 독약을 마시는 행동입니다. 경광봉은 개인의 행동을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죠. 전체주의, 유사 왕정 체제를 지속하려는 사람들다운 선택입니다. 나라가 두 쪽이 나서 싸우는 것 같지만 어느 쪽이 국제사회에 감동과 영감을 주는지는 분명합니다. 앞으로 나아갈 진로가 도무지 보이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으니 자폭하는 수를 택한 것이라고 봅니다."

- 일부 개신교 단체들의 '반탄핵'을 외치며 대중을 규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고, 우려가 높습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이 극우를 제도권 안으로 깊숙하게 끌어들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앞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이들을 향해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보십니까.

"개신교만의 책임이 아닌 종교 전체의 책임입니다. 우리 종교가 민주주의에 기여할 바가 있나, 그런 부끄러운 생각도 상당히 듭니다. 종교마다 자기 살림만 하지 세상을 바꾸는 데 관심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덩달아 중립이라는 병에 걸렸습니다. 정치에 중립이 어디 있습니까, 강자 편을 드는 거지요.

싸움은 시작됐습니다. 물러날 수가 없습니다. 물러날 자리가 없어요. 여기서 밀리면 신부들은 백령도 가다가 퐁당 빠져도 괜찮은데, 우리 사회 전체가 그렇게 되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이후 어떤 어둠이 밀려올지는 노상원의 수첩이 다 얘기해줬습니다. 제발 민주주의의 기본을 밀고 나가기를 바랍니다. 기세 있게 민주주의의 진도를 나가고 그 효능을 보여주면 거기에서 얻어지는 결과에 따라 잡음도, 분열도 치유가 될 거로 생각합니다. 지긋지긋한 중립이라고 하는 병에만 걸리지 않으면."

(*다음 기사 김인국 "한국사회 위기 해법? 종교만 정신 차리면 나라 산다"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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