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ID 폐쇄, 아쉬운 건 제3세계 아니라 미국
USAID는 인도적 지원을 가장한 미국 정치 공작의 선봉대
- 정혜연 기자 haeyeonchung5@gmail.com
- 발행 2025-02-22 07:58:56
- 수정 2025-02-22 08:07: 51

편집자주
1961년에 설치돼 미국의 비군사적 원조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국제개발처(USAID)는 한해 예산이 400억 달러(약 53조원)가 넘는, 전 세계에 1만명 이상의 직원을 둔 거대 조직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개발처 직원들을 '범죄자'라고 부르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하더니 직원을 294명으로 대폭 줄일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다룬 카운터펀치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The Demise of USAID: Few Regrets in Latin America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예산의 5%인 약 20억 달러를 중남미에 매년 지원해 왔다. USAID는 현재 운영이 일부 중단돼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 이러한 원조 삭감 발표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콜롬비아의 페트로 대통령은 "돈은 가져가라. 그건 독이나 마찬가지다"라며 USAID를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계의 워싱턴 싱크탱크인 WOLA(워싱턴중남미연구소)는 이번 원조 삭감을 트럼프의 '아메리카 라스트'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USAID 지원 유지를 촉구했다.
USAID가 베트남 지뢰 제거와 같은 긍정적 활동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이 지뢰가 미국이 남긴 흔적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지만 어쨌든 그건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USAID는 세계 패권국 미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기능해왔다.
주요 언론은 예상대로 USAID를 옹호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원조 중단이 일부 국가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지만 실상은 USAID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영향력 확대에 기여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LA 타임스와 블룸버그는 USAID 철수로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AP 통신은 이를 ‘중남미 지역의 큰 타격’이라고 보도했다. BBC도 같은 논조를 보였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주류 언론은 USAID가 중남미 이주민 억제에 기여해왔다며 이민 문제를 최우선시하는 트럼프의 정책과 모순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인도적 지원을 무기로 삼은 USAID
주류 언론이 USAID의 인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진정한 인도적 지원은 USAID 활동의 일부일 뿐, 실질적으로는 '소프트 파워' 전략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USAID의 설립 목적은 처음부터 단순한 인도적 지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1961년 USAID를 창설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년 후 기관 책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유가 위협받는 모든 지역에 미군을 보낼 수는 없다. 대신, 당신들을 보낸다".
삭스의 설명에 따르면 USAID는 본질적으로 미국 외교 정책의 도구이며 철저히 정치화된 기관이다. 실제로 USAID가 제공하는 원조의 상당 부분은 미국의 동맹국에게 집중된다. 뉴욕 타임스가 중미 지역의 허리케인 피해 복구를 위한 USAID의 지원을 언급했지만, 미국의 동맹이 아닌 니카라과는 2020년 두 차례의 초강력 허리케인으로 초토화돼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USAID는 전 세계 인도적 지원의 약 42%를 차지한다. 그러나 키호테 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USAID 예산의 대부분은 미국산 식량 공급이나 미국 업체와의 계약에 사용된다. 원조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는커녕 현지 농업을 붕괴시키고 장기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게 만든다. 미국이 원조를 통해 자립을 돕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종속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정 간섭: 정권 교체 프로젝트
USAID의 가장 논란이 되는 역할은 정권 교체다. 삭스는 USAID가 '딥 스테이트'(정부 내부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 기관으로 변질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정부를 전복하는 데 앞장서 왔다고 주장한다.
미 국무부는 때로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2022년 7월 니카라과 대사 지명자는 상원 청문회에서 USAID가 니카라과 정부 반대 단체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니카라과 정부가 그의 대사 임명을 거부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후 니카라과 정부는 정권 교체 자금을 지원받던 단체들을 폐쇄했다.
미국의 중남미 정권 교체 노력은 CIA의 비밀공작에서 시작됐지만 1990년 이후에는 USAID와 미국민주주의기금(NED)이 그 역할을 맡아왔다. 일례로 1990년 이후 쿠바 혁명을 약화시키기 위해 최소 3억 달러가 투입됐다.
이런 공작에는 USAID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워싱턴의 컨설팅 회사 CREA이라는 거대 조직이 개입했다. 미디어 분석가 앨런 맥레오드는 CREA가 쿠바뿐 아니라 중남미 전역에서 유사한 USAID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CREA는 현재 온두라스에서도 활동 중인데, 이곳의 진보 정권은 미국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USAID와 계약을 맺고 자금을 받는 업체는 25곳에 달하며, 계약 규모는 3,200만 달러에서 15억 6,000만 달러에 이른다.
내정간섭: 문화 전쟁
USAID의 정권 교체 작업은 주로 비정치적인 문화·예술·젠더·교육 분야의 NGO 지원이라는 형태로 이뤄진다. 하지만 실제 목적은 반정부 정서를 조장하고 친미적 사고방식을 주입하는 데 있다.
USAID는 쿠바에서 힙합 문화로 침투해 반정부 정서를 퍼뜨리려 했고, '쿠바판 트위터'를 만들려 했으며, 코스타리카·페루·베네수엘라 출신 젊은이들을 쿠바로 보내 서툰 공작을 벌이다 체포될 뻔한 사건도 있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2002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를 축출하려는 미국 쿠데타가 실패한 후 USAID가 개입했다. 2007년까지 360여 개 단체를 지원했고, 이 중 일부는 노골적으로 차세대 '민주 지도자' 양성에 주력했다. 최근 그래미상을 수상한 베네수엘라 록밴드 리야와나도 USAID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반정부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니카라과에서도 2007년 산디니스타 정부가 재집권하자 USAID는 청년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이 과정에서 훈련받은 인원 중 일부는 2018년 쿠데타에 가담했다.
'아쉬울 게 없다'
USAID가 이처럼 반미 정부를 약화시키는 데 주력해왔기 때문에 중남미 지역에서 USAID가 철수하더라도 아쉬워할 정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의 보수 야권은 미국 자금줄이 끊기면서 '위기'에 빠졌다고 시인했다.
트럼프와 가까운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조차 USAID를 신뢰하지 않았다. "USAID는 개발·민주주의·인권 지원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야권 단체와 정치적 목적을 지닌 NGO, 그리고 불안정을 조성하기 위한 운동에 자금을 대고 있다."
USAID가 '인도적 지원'을 무기화해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니카라과·쿠바·베네수엘라를 "인류의 적"이라 칭했다. 이에 대해 이반 길 베네수엘라 외무장관은 이렇게 반박했다. "진정한 인류의 적은 전쟁과 착취로 전 세계에 혼란과 고통을 퍼뜨려 온 자들이다".
USAID는 그 혼란의 한 축이었다. 물론 USAID가 문을 닫더라도 미국의 정권 교체 프로젝트는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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