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이 창창한 수학자는 왜 사형수가 됐을까?
안영민 시민기자yman1209@naver.com전 민족21 편집국장, 경북대 민주동문회 회장다른 기사 보기앞날이 창창한 수학자는 왜 사형수가 됐을까? 문화 모꼬지 입력 2025.04.01 07:20 수정 2025.04.01 09:12 댓글 1 아들이 쓴 아버지 평전 <아버지 안재구> 출간 박정희 유신독재에 목숨 걸고 투쟁한 ‘남민전’ ‘구국전위’ 사건으로 아버지와 아들 함께 구속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에게 배운 지조와 절개 아들이자 동지로서 써 내려간 아버지의 생애 시대와 역사 관통하며 대물림한 그들의 신념 나의 아버지는 수학자였다. 1970년에 37세의 나이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립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전도유망한 학자였다. 아버지가 몸담은 경북대 수학과에서 펴낸 '경북매스매티컬저널'은 국내 최초의 수학 학술지로 세계 여러 대학의 수학과와 교류했다. 그 덕분에 아버지도 미분기하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나의 아버지는 사형수였다. 1976년에 박정희 유신독재 타도를 위해 결성된 지하조직 ‘남민전’의 중앙위원이었던 아버지는 1979년 10월에 조직이 적발되면서 체포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이들은 세계의 수학자들이었다. 200여 명의 수학자가 구명운동에 나섰고, 그 덕분에 아버지는 2심에서 무기로 감형됐다. 1979년 10월에 터진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된 안재구 교수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남민전 사건 재판 때의 안재구 교수 모습. '사형수가 된 수학자, 아버지 안재구' 최근에 내가 쓴 책의 제목이다. 아들이 쓴 아버지의 평전은 보기 드물다. 사형수가 된 수학자도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검색해 봤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이 책이 특이한 평전인 이유다. 나는 앞날이 창창한 수학자의 길을 가던 아버지가 왜 남민전이라는 지하조직에 가입해 변혁운동의 길에 들어섰는지 그 연유가 늘 궁금했다. 박정희 유신독재 치하에서 변혁운동을 한다는 건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