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파시즘이라는 낯선 세계] 극우와 개신교를 분리하려면
릴레이 기고② 파시즘과 극우개신교
- 발행 2025-03-05 19:51:18
- 수정 2025-03-05 20:03:35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내란 사태는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을 거치며 극우파시즘의 발호를 안팎에 과시했습니다. 수면 아래에 있던 극우세력의 음모론적 주장과 폭력적 양태가 거리를 채우고, 보수여당마저 끌려가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극우파시즘이라는 낯선 현상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걱정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억압적 통치와 달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중국타도와 부정선거를 외치는 오늘의 극우파시즘은 낯설고 당혹스럽습니다.
윤석열이 탄핵되고, 여당의 재집권이 저지돼도 극우파시즘의 폭주가 제어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극우파시즘이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깊이 파악하는 것이겠습니다.
그간 여러 방면에서 관련 문제를 다뤄온 연구자, 전문가들의 기고를 몇 차례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극우 파시즘을 넘어 더 진보하고 진화하는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왜 파시즘인가?
윤석열이 벌인 무모한 내란 사태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불안과 갈등에 더해 더더욱 심각한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다. 그에 대한 탄핵과 심판으로 사태가 일단락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해지고 있다. 윤석열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1월 19일 서부지법 난동사태로 그 걱정이 더해졌다.
그 사태 직후 파시즘적 광기 현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대중의 폭력행위가 애국주의로 정당화되는 사태 가운데서 권력자와 그 집단이 벌인 패악 행위와는 또 다른 사회적 현상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파시즘’은 그 현상을 일컫는 개념어로 새삼 부상하였다. 기왕의 권위주의적 정치를 일컫는 ‘독재’라든지 ‘전체주의’ 또는 그와 관련된 이념적 경향으로서 ‘극우주의’ 등이 혼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 사태를 일컫는 개념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널리 통용되고 있음에도 그 실체가 딱 떨어지게 포착되는 것은 아니다. “파시즘은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그와 반대되는 것이며,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다”(José Ortega y Gasset). 파시즘의 개념 정의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우리가 그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등장한 파시즘의 현상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잘 알려진 대로 그 기원은 1920~30년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주도한 파시스트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정작 파시즘을 말할 때 그 전형은 독일의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즘을 연상한다. 훨씬 파급효과가 컸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파시즘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나치즘은, 국가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인종주의와 차별주의 등을 골자로 하여 전 사회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체제를 구축한 데 그 특징이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양상을 덧붙인다면 그것이 단지 일부 집권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대중의 호응을 동반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 파시즘 체제는 합법적 절차를 통하여 형성되었지만, 기존의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민주적 절차를 뛰어넘는 극단적 성격을 띠었다.
파시즘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대략 공통되는 양상을 신진욱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공동체를 위협하는 ‘적’에 대한 공포와 증오의 확산, 둘째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원하고 재건한다는 애국적 열정을 결집하는 대중행동과 조직화, 셋째 지도자들과 대중이 적으로 규정한 집단과 공공기관에 대한 물리적 공격, 넷째 보수 정치권과 기득권층의 묵인과 협력 하에 정치권력 획득, 다섯째 국가기구를 장악한 뒤에 대중을 억압하는 테러독재 체제의 수립.”(한겨레, 2025.2.12.)
더불어 기왕에 파시즘의 사회적 토양과 잠재력이 갖추어져 있는 터에 급기야 헌법기관을 공격하고, 이를 보수 정치세력이 묵인하는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파시즘 현상을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미 펼쳐지고 있던 극우 대중의 정치적 집회에 그치지 않고 공공기관을 공격하고 이를 일부 기존 정치세력이 사실상 옹호하고 있는 사태에서 그 위험한 징후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극우 개신교인가?
극우 개신교는 어쩌다 그 음험한 사태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까?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극우 개신교의 정치적 집회와 그 사태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은 여러 정황상 분명하다.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전광훈의 메시지와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벌인 이들의 동기가 일치한다는 점에서만 그 상관관계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전광훈은 공공기관의 합법적 절차를 부정하는 언행을 수없이 반복해 왔으며, 윤석열의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한 시점에는 “서부지방법원에 구속영장 청구하면 서부지방법원도 불 속에 넣어 태워버려야 한다”고 하기까지 했다. 실제 난동을 벌인 당사자 가운데 일부가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로 확인되었다. 전광훈은 부인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그 연관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극우세력의 정치행동이 급기야는 헌정질서와 공권력을 부정하는 폭력행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데 그 사태의 위험성이 있다. 이른바 ‘전광훈 현상’은 극우 정치세력이 결집하고 행동하는 포괄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극우 개신교가 그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 주목거리이다. 파시즘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볼 때 종교세력은 대개 그 주도세력에 의해 동원되는 양상을 띠었다. 종교가 지니는 상징성과 그 동원력 때문이다. 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오히려 극우 개신교라는 종교세력이 파시즘을 부추기는 역할을 맡고 있고, 여기에 지지 대중과 일부 정치세력이 동조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가히 극우 개신교가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에는 전광훈을 중심으로 하는 ‘광화문파’와 결별하여 손현보를 중심으로 하는 ‘여의도파’가 경합을 벌이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진영의 분열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역할 분담을 통한 극우 개신교의 확장성과 동시에 극단성을 강화하는 양상일 수도 있어 우려된다. 상호간 주목경쟁은 그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와 더불어 선명성을 강화하려는 방향을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성장해 온 방식을 따르는 경로이다.
과연 극우 개신교는 어떻게 한국 사회의 극우 정치세력을 결집하는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교회가 지닌 조직력과 그에 따른 동원력 덕분일까? 그러나 그것이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요구하는 순종의 미덕이 지도자와 대중의 결속력을 높이는 조건이 되는 것일까? 이 역시 충분조건은 아니다. 교회가 지니는 어떤 특성만으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정곡에서 벗어난다. 유사한 조건에 있는 다른 교회들의 행태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의 일부가 극우화되고 사회 전반의 극우세력을 향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 사연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통찰을 필요로 한다.
한국의 보수 개신교는 한편으로는 반공주의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성장해 왔다. 이는 분단 이후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과 이해관계를 같이해 왔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적 근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형태였다. 거시적 맥락에서 이해관계를 같이해 왔을 뿐 아니라 교회의 유력자들과 정치세력이 긴밀한 유대관계 속에서 가치를 공유해 왔다. 교인들은 그 가치를 내면화했다. 그와는 달리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개신교인들이 의미있는 대안세력으로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강고한 지배체제 안에서 보수 개신교는 그렇게 그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그 양상은 달라졌다. 민주화의 효과는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권위주의와 성장주의를 되돌아볼 여지를 남겼다. 교회는 사회적 민주화가 진척되는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지체된 영역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교회의 흡인력도 줄었다. 그즈음 진보 개신교는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헌신한 역량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언을 발표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은 그간 한국 교회가 견지해 온 반공주의를 공식적으로 철폐하는 의미를 지녔다. 이에 보수 개신교는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 결과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결성하였다. 이후 한기총은 사회적 의제들에 대한 보수적 입장을 표방하는 한편 정치적 발언과 행동에 나서 시민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었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이르는 동안 민주주의의 정착으로 기존 정치적 보수 세력이 더는 이전처럼 확고한 입지를 갖지 못했고,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 또한 분출되었다. 그 가운데 교세 확장은 정체되고 기존 보수 교회의 사회적 효능감 및 신뢰도는 점점 떨어졌다. 보수 개신교는 이를 내적 갱신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선명한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이는 과거 반공주의의 효과를 변형된 형태로 답습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곧 위기의 원인을 외부의 적에게 돌리고 내적 결속을 다지는 방식이다. 그것은 사회적 평등의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주로 성소수자와 무슬림 등 이주민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공격적 태도로 가시화하였다. 세속 문화에 대항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이른바 ‘문화전쟁’이라 할 만한 양상이었다. 보수 개신교가 보수정권을 지지한 것은 그 정권이 자신들이 의도하는 문화전쟁을 대신해 주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반대, 그리고 무속 논란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맹목적 지지는 그 사연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상 그 동맹관계 안에서 극우주의가 싹텄다.
보수 개신교 가운데 일부 세력이 그렇게 극우로 치달으며 보수와 극우가 갈렸다. 한기총은 극우를 대변하는 기관이 되었고, 더불어 지위를 둘러싼 내부 스캔들에 휩싸였다. 한기총을 대신하여 2017년 보수 개신교 연합기구로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결성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극우 잔존 세력의 중심에 전광훈이 우뚝 섰다. 보수 개신교와 극우 개신교가 가치를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도 다른 점은 지난 2월 24일 한교총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데서도 확인된다.
교회적 기반의 확장성에 한계를 지닌 극우 개신교가 자리한 곳은 광장이었다. 지금 그렇게 극우 개신교는 광장에서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극우세력들을 결집하는 중심축으로서 역할을 맡고 있다. 그것은 개신교의 내적 조건에 따라 돌출한 현상만은 아니며 극우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에 힘입어 나타난 현상이다.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
극우 정치가 파시즘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지금 그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전 사회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우려하는 그 사태가 단순히 종교적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 공통의 대안이 절실하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의 위기는 언제나 사회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경제적 격차로 인한 상실감과 사회적 차별로 인한 소외감이 그 자양분이다. 이를 정치세력이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의지를 구현하고자 할 때 파시즘 현상은 파시즘 체제로 귀결된다. 그 누구도 곤궁에 처해 있는 나를 대변해 주지 못한다는 상실감이 깊어갈 때 환상에 기대는 파시즘의 유혹은 떨칠 수 없게 되며, 그 위에 위험한 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사회경제적 평등에 기초한 사회적 연대의 강화, 그리고 그 누구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명실상부한 정치적 대의제 구현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물론 우려할 만한 그 사태에 극우 개신교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만큼 개신교의 입장에서도 절박한 대책이 필요하다. 헌정질서가 위협받고 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는데, 개신교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마땅한 우려이며, 그에 동조하지 않는 개신교의 경각심이 요청된다.
우선 전광훈이나 손현보와 같은 이들이 결코 교회의 입장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실 이미 전광훈에 대해서는 그가 속한 교단에서도 면직 및 제명 처분을 하였을 뿐 아니라 여러 교회 기관에서 누차 그에 대한 우려의 입장을 밝혀 왔다. 최근 부상한 손현보에 대해서도 그와 다르지 않은 대처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이 행세하는 것은, 다양한 교단들이 각기 독자성을 갖는 개신교의 교단 구조상 실효적 제제에 이르지 못하는 한계 때문이다. 개신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교회가 그들을 배태한 책임을 통감하며 그들과 다른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은 교회 대중이 오도된 길에 이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다행히 한국 개신교인들의 평균적인 정치사회 의식은 그렇게 극단화되어 있지 않으며, 대체로 시민사회의 평균적 인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듯 목회자나 교회에 의해 좌우되는 것만은 아니며 대체로 일반적 인식의 경향을 띠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비상계엄 직전에 이뤄진 2024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개신교인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평가에서 비개신교인과 마찬가지로 개신교인 역시 60% 안팎으로 부정적 평가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몇 해에 걸쳐 누적된 인식조사에서 드러난 일관된 경향이기도 하다. 미세하게 보수적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개신교인들의 정치사회 인식의 경향은 시민사회의 인식과 크게 괴리되어 있지 않은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미세하게 보수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점이 어째서 두드러지게 보일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개신교 공적 기관의 대표성이 주로 고령층 남성들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 다른 하나는 언론이 주로 돌출된 극우 개신교의 현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 안에서 특정 세력이 교회 전반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오인되는 과잉대표성의 문제는 교회의 내적 과제로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여론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함께 대처해야 할 과제이다. 여러 교단들이 전광훈과 손현보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밝히고 다수의 개신교인들이 헌정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대열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은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고, 돌출된 극우 집회 현장만 조명을 받는 사태는 개신교의 실상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또한 ‘주목경쟁’을 동원의 중요한 방식으로 삼고 있는 극우 정치집회를 의도치 않게 강화해 주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에서 극우 개신교의 실상을 과대하기보다는 상대화해서 볼 수 있도록 조명하는 언론의 몫 또한 실로 중요하다. 이른바 ‘이대남’을 퉁 쳐서 말해서는 안 되듯, ‘극우=개신교’로 등식화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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