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밟고 가라"... 태극기부대 막은 시각장애인들

19.12.28 21:58l최종 업데이트 19.12.29 05:48l


"오늘은 돌아가지만, 또 막는다면 극단적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28일 오후 5시. 태극기를 든 보수단체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아래 국본)'가 돌연 행진방향을 돌렸다. 이들은 청와대 앞까지 행진할 예정이었지만 목적지 앞에서 돌아섰다.
 
 28일 오후 3시 45분께, 서울 자하문로 부근에서 청와대 인근 주민들과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의 대치가 발생했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도로로 나가, 보수단체의 행진을 막았다.
▲  28일 오후 3시 45분께, 서울 자하문로 부근에서 청와대 인근 주민들과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의 대치가 발생했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도로로 나가, 보수단체의 행진을 막았다.
ⓒ 강연주
 
'태극기부대'의 행진을 막은 것은 시각장애인과 그들의 학부모, 청와대 인근 주민 50여 명이다. 이들은 '촛불 집회는 1년이고, 태극기 집회 3년입니다. 저희 많이 참았습니다. 제발 욕설 좀 하지 마세요!' 등이 적힌 커다란 피켓을 들고 거리 한복판에서 태극기부대의 행진을 막았다.

이들 50여 명은 이날 오후 2시 옥인동 신한은행 앞에 모였다. 같은 시간, 광화문광장 인근에서는 낮 12시부터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박근혜) 탄핵반발단체 등 10개의 보수단체가 집회 및 행진을 진행했다.

태극기부대 막은 시각장애인들

"제 아이는 시각장애가 있습니다. 아이가 혼자 걸어 다닐 수 있도록 10년 간 쉬지 않고 이 동네를 익혀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가 집회 때문에 밖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해요. 이 아이들은 잠시라도 교육을 멈추면 인지 능력이 퇴행합니다. 집회의 자유가 우리 아이들의 기본권보다 우선시되는 건가요?"

시각장애인 자녀를 둔 윤은화(49)씨의 말이다. 그는 "아이가 복지관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엄청난 인파와 소음을 견디면서 가야한다는 게 정말 너무 힘들다"며 "일상생활 자체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남정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회 소장도 "시력 상실 이후 가장 중요한 게 청력"이라며 "거주지 인근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집회를 하면 시각장애인들은 외부소리를 들을 수 없어 보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김영민(39)씨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들은 큰 소리가 들리면 쉽게 패닉에 빠집니다. 어디로 피해야 할지 판단조차 불가능해지는 거죠. 시각장애인들에게 있어 소음은 삶에 직결될 정도로 위험한 겁니다."

김씨는 "만일 나이 어린 시각장애인들이 소음 때문에 학업을 방해받거나 보행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집회를 기획한 김경숙 서울맹학교 학부모회장(49)은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시각장애인들에게 '안 보이는데 왜 돌아다니느냐' '나라가 이 지경인데 자식새끼가 뭐가 중요하냐' 등 막말을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에 나서는 거다. 이젠 몸으로 그들의 행진을 막으려 한다"고 말했다.

오후 3시40분 경, 국본이 집회를 마치고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을 시작하자 주민들은 차도로 향했다.

시각장애인-주민 vs. 국본 1시간 20분 대치
 
 28일 오후 3시 45분께, 서울 자하문로 부근에서 청와대 인근 주민들과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의 대치가 발생했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도로로 나가, 보수단체의 행진을 막았다.
▲  28일 오후 3시 45분께, 서울 자하문로 부근에서 청와대 인근 주민들과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의 대치가 발생했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도로로 나가, 보수단체의 행진을 막았다.
ⓒ 강연주
  
 28일 오후 3시 45분께, 서울 자하문로 부근에서 청와대 인근 주민들과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의 대치가 발생했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보수단체의 행진을 막았다.
▲  28일 오후 3시 45분께, 서울 자하문로 부근에서 청와대 인근 주민들과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의 대치가 발생했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보수단체의 행진을 막았다.
ⓒ 강연주
  
"야, 막아! 현수막 들어!"

시각장애인들과 학부모, 주민들은 현수막을 들고 차도를 막아섰다. 국본 측 행진 일정으로 이미 차도 통행이 차단된 상태였다. 주민들은 현수막을 들고 "너희는 한 번이지만 우리는 매일이다" "우리를 밟고 가라" 등을 외쳤다. 약 5분 후, 국본 측 행진단 100여 명이 도착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백주 대낮에 대한민국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까? 우리(국본)는 정당한 법 절차를 따라 행진 신고를 했고, 신고 절차에 따라 (청와대) 행진 중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법을 무시하고 도로를 무단점거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빨리 우리가 행진할 수 있게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본 집회 사회자는 주민들을 향해 "당신들은 우리의 대화상대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바로 세우려 하는 (중략) 태극기 세력을 이렇게 막 막을 수 있습니까!"라고 소리쳤다. "(저희 행진은) 일주일에 한 번이고, 몇 시간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주민들은 "일주일에 한 번이 3년이냐!"라고 맞받아치며 "저희가 면담 요청을 했는데 왜 안 하냐. 여기 와서 얘기를 하자"고 요구했다. 국본 측은 "얘기가 안 된다"며 "우리는 대한민국 민생을 잃게 한 문재인한테 확고하게 규탄하러 (청와대 앞으로) 온 거다. 근데 이걸 여러분이 왜 막냐"고 반박했다.

사회자가 집회참가자들에게 "개인행동 하지 마라, 저들의 목적에 휘말리는 것"이라는 방송을 여러 차례 했지만 일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주민들 얼굴을 근접촬영하거나 욕설을 퍼부었다. 시각장애인들을 향해서는 "이용당한다"고 말했다.

"야 이 빨갱이 새끼들아, 왜 막고 XX야."
"야, 너네가 여기 살아?"
"주민이라고 선동질 한다."
"장애인 앞에 내세워서 뭐 하는 거냐."


약 1시간 20여 분 간의 대치가 이어진 끝에, 결국 국본 측이 물러섰다. 국본 측은 오후 5시경 행진 방향을 돌려 덕수궁 대한문으로 향했다. 국본 관계자는 "오늘은 사정에 공감하고 돌아가겠다"면서 "여러분도 우리의 행동과 목적을 이해하시고 태극기와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상황이 정리된 후, 김경숙 회장은 "우리는 다음 주에도 나올 것"이라며 "매주 토요일 집회가 열릴 때마다 우리도 집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오후 5시께, 청와대 인근 주민들과 보수단체의 약 1시간 20분가량 대치 후, 보수단체가 행진 방향을 돌리는 모습이다. 경찰은 이들이 본래 집회를 시작했던 서울 덕수궁대한문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했다.
▲  오후 5시께, 청와대 인근 주민들과 보수단체의 약 1시간 20분가량 대치 후, 보수단체가 행진 방향을 돌리는 모습이다. 경찰은 이들이 본래 집회를 시작했던 서울 덕수궁대한문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했다.
ⓒ 강연주

이날 집회와 관련, 이희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자기 기본권이나 인권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기본권도 중요하다"면서 "헌법 37조 2항에 질서유지를 위해 관련 법률을 적절하게 규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헌법 37조 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적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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