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집요함, 에버랜드에서 밥 먹은 것까지 뒷조사

19.12.20 07:59l최종 업데이트 19.12.20 07:59l


 지난 19일 경기도 용인 삼성에버랜드에서 열린 삼성노조 건설보고 기자회견.
▲  2011년 7월 19일 경기도 용인 삼성에버랜드에서 열린 삼성노조 건설보고 기자회견.
ⓒ 최지용
 
80년 성역이 깨졌다.

삼성그룹은 1938년 창사 이래 80년 넘게 무노조경영을 고수했다. 하지만 삼성에버랜드 노조와해사건 유죄 판결로, 삼성의 무노조경영은 처음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3형사부(재판장 손동환 부장판사)는 2011년 삼성 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노조와해사건 당시 삼성그룹 무노조경영 사령탑이었던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에게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관련 기사 : 법원, 삼성 노조와해 공작 비판 "19세기 소설 같다").

재판부는 ① 삼성노조 조합원들을 징계함으로써 노조 운영을 방해하고(업무방해) ② 어용노조 설립을 지시하는 등으로 노조를 지배·개입하고(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③ 삼성노조 조합원 뒷조사를 지시하고 그 정보를 받음으로써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는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삼성그룹 최고위층의 조직적인 노조와해 범죄임을 확인한 것이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과 에버랜드 임직원 모두 유죄를 피할 수 없었다. 판결문을 보면, 삼성그룹이 무노조경영을 고수하기 위해 어떤 불법을 저질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업무방해] 삼성 무노조경영 사령탑에선 무슨 일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그룹 전 계열사의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지원·조정하는 삼성그룹 내 최고 의사결정 보좌기관이다. 2010년 12월 전신인 전략기획실에서 이름이 바뀌었고, 2017년 3월 해체됐다.

당시 미래전략실 내 인사지원팀 인사지원파트가 그룹 무노조경영을 이끌었다. 인사지원파트는 매주 계열사 노사 관련 현황 등을 보고받고 '그룹노사전략'을 각 계열사에 전파했다. 삼성그룹 무노조경영 사령탑인 이곳 인사지원파트를 7년 동안 이끌었던 이가 바로 강경훈 부사장이다.

삼성 에버랜드 노조와해사건의 시작은 복수노조 시행 직전인 2011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 에버랜드에서 노조설립 준비 문건이 발견된 것이다. 미래전략실은 이 문건을 '불온문서'로 규정지었고, 대항노조(어용노조)를 설립하고 '진짜노조'를 설립하려는 조장희씨 징계해고·형사고발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강경훈 부사장은 이를 승인하고 감독했다.

7월 조장희씨 등이 삼성노조를 세우자, 미래전략실의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다. 에버랜드는 조합원들을 뒷조사한 뒤 이러한 정보를 활용해 조합원 4명 전원을 차례로 징계했다. 특히 조장희 당시 삼성노조 부위원장을 해고했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김영태 회계감사를 무급 상태로 만드는 정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미래전략실의 행태를 지적했다.

"사용자 측은 처음부터 조장희 등을 문제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장기간에 걸쳐 그들을 감시하고 미행하여 동향을 파악하는 등 불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징계사유를 적극적으로 탐색하였고 감사를 실시하여 밝혀진 사유들에 대하여는 형사고소를 병행하였다. (중략) 사용자 측은 다른 근로자들에게 노조 활동을 하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지 보여줌으로써 삼성노조를 고립시키고자 하였다고 할 수 있다."
 
 6월 12일 해고무효소송 승소 후 에버랜드 노동조합이 승리를 자축하며 찍은 사진
▲  2015년 6월 12일 해고무효소송 승소 후 에버랜드 노동조합이 승리를 자축하며 찍은 사진
ⓒ 안은정

[노동조합법 위반] 어용노조는 어떻게 탄생했나

노동조합법 제81조 제4호는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개입하는 사용자의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미래전략실은 '진짜노조'에 대응하기 위해 에버랜드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이에 따라 에버랜드는 임아무개씨에게 노조위원장직을 제안했다. 임씨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에버랜드는 노조설립신고 등을 교육했다. 또한 노사 단체협약 체결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미래전략실과 에버랜드는 이밖에 임씨를 비롯한 에버랜드노조 집행부에 조합원 교육, 조합비 납부, 조합원 증원, 한국노총 가입 등을 지시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강경훈 부사장 등의 행위는 에버랜드노조의 조직·운영에 관한 의사결정 및 실행행위들의 자율성에 영향을 줄 의사로 행해졌고, 그로 인하여 에버랜드 노조의 의사결정이 좌우되었다고 함이 상당하다"라고 밝혔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에버랜드 놀러간 가족까지 뒷조사

미래전략실과 에버랜드는 이른바 '불온문서' 발견 이후부터 '진짜노조' 삼성노조 조합원들을 뒷조사했다.

에버랜드 쪽은 상황실을 마련한 뒤 차량을 통해 이들을 미행·감시하고, 주변 인물을 통해 이들의 행동과 대화내용을 수집했다. 또한 이러한 내용이 담긴 일일 동향 문건을 만들어 강경훈 부사장에게 보고했다.

에버랜드 상황실 구성원들은 2011년 10월 3일 조장희 삼성노조 부위원장이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에 놀러오자 5시간 20분 동안 조 부위원장의 시간대별 입장 수단, 이동 경로, 식사 주문 내역, 흡연 여부를 수집했다. 이 내용 또한 강경훈 부사장에게 보고됐다.

상황실 구성원들은 또한 김영태 삼성노조 회계감사의 아내가 유방물혹 조직검사 결과를 두고 부서장과 면담한 내용을 몰래 수집하기도 했다.

[양형사유] "삼성의 행위, 이해받을 수 없다"

재판부는 양형사유에서 헌법을 강조하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에버랜드 임직원의 행태를 비판했다.

"우리 헌법은, 근로자는 자주적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선언한다. (중략) 피고인 강경훈 등은 회사 지침, 상사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였을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우리 사회가 기초로 삼은 약속보다 더 무거울 수 없는 위 사정만으로 이들의 행위가 모두 이해받을 수는 없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소속 다른 근로자들이 노조활동을 하는 데 두려움을 가지는 결과를 낳고 에버랜드 내 노사관계의 건강한 발전을 막은 것을 물론 에버랜드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기업으로 올바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게 하였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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