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發 필리버스터 늪에 빠진 국회…'키'는 문희상 손에?
한국당 필리버스터에 격분한 민주당, '4+1'이 돌파구 되려면…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종료를 1주일 앞두고 여야의 극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9일 민생·경제법안을 포함한 199건의 본회의 안건에 전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신청을 하며 국회가 멈춰선 이후 격앙된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을 배제하고 예산·법안 처리를 강행할 뜻을 보이고 있다.
다만 민주당이 이른바 '4+1' 연대로 한국당을 우회하기 위해서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적극적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당은 이를 의식한 듯 문 의장에 대한 사퇴 공세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민주당 "한국당 있는데 무슨 얘기를…협상·대화 없다"
민주당은 2일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오전 정치협상회의에 민주당 실무대표가 참석했다"면서도 "진행된 게 없지 않겠나. 한국당이 있는데 (선거법 협상안 관련) 그런 얘기를 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국당과의 협상은 없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도 강경론이 쏟아졌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신청을 공식 철회하지 않으면 다른 야당과 협력해서 국회를 정상화하겠다"며 "이런 사람들과는 협상·대화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이 연합해 국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정상화하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앞서 같은날 오전 의원총회를 연 한국당은 △최소 5건의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허용을 전제로 '원 포인트' 본회의를 개최하고 △선거법·공수처법 등 일명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 여야 양당 원내대표 간 공개 토론을 벌이자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의 전략 기조는 그대로다. 필리버스터 권한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며 "최소한의 필리버스터 권한을 보장해 주면 '원 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민식이법을 비롯한 법안 처리에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국당의 이같은 제안에 대해 이날 오후까지도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철회가 먼저'라며 "더 이상 한국당에 끌려다니지 않겠다"(이해찬 대표, 최고위에서)라고 선언한 셈이다. 한국당과의 협상을 당장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원내대표 간 회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 "바로 회동을 할 수 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당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일단 과도하게 199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한국당에 대해 민주당이 격앙돼 있는 상태"라며 "제가 민주당과 따로 접촉해서 '국회가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아선 안 된다. 이성을 찾고 방법을 찾자'고 했으나 아직까지 응답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오 원내대표는 "오전에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오늘 매주 회동을 하는 날 아니냐'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변이 없다"며 "나경원 원내대표와는 통과하고 문자를 주고받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오 원내대표는 "만약 민주당이 '4+1'을 통해 한국당과 반대 세력을 제치고 국회를 끝까지 힘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파국이 될 것"이라며 "저는 1주일 남은 시간 동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고, '원 포인트' 본회의는 양당이 거부할 어떤 명분도 없다고 본다"고 민주당이 교섭단체 3당 간 협상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150석만 채워서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3법(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을 말아서(묶어서) 가려고 할 것"이라고 민주당의 수를 예상하면서 "저희는 합의하지 않으면 (4+1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 국회법에는 교섭단체 간 협의를 통해 국회를 운영하도록 돼 있다. 집권당이 그것을 포기하고 법 절차를 어기고 무책임하게 밀어붙이는 운영을 선택한다면 파국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오 원내대표는 한국당 나 원내대표와의 대화 내용에 대해 "데이터2법과 국회법은 한국당이 저에게 '처리하겠다'고 구두 약속을 했고, 민식이법도 처리하겠다고 했다"고 전하면서 민주·한국 양당에 "유치원 3법은 330일 숙려 기간이 지나고 자동 상정되게 돼 있기 때문에 한국당이 안건을 취하고 말고 할 권한이 있는 게 아니다. 그것들을 포함해 원 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3교섭단체' 아닌 '4+1' 합의로 돌파?…관건인 '임시국회 의사일정' 문희상 손에
오신환 원내대표가 경계심을 보인 '4+1' 연대란 △민주당(129석)과 △바른미래당 소수파(당권파)인 손학규 대표 측과 호남계 등 의원 11명 △대안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호남계 의원 10명 △정의당 소속 의원 6명 △민주평화당 5명 등 32명의 의석을 묶어 법안 통과에 필요한 과반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범여권의 구상이다.
다만 '4+1' 연대가 최대로 동원 가능한 161석에 민중당 김종훈 의원, 무소속 김경진·손혜원·이용호 의원 및 문희상 국회의장 등 잠재적 우호표를 다 합쳐도 최대 166석에 그친다. 재적 과반(295명 중 148명) 선은 넘길 수 있지만, 한국당이 쳐놓은 필리버스터 저지선을 뚫을 수는 없다. 국회법은 필리버스터 종결을 위해서는 재적의원 3/5 이상(295명 중 177명)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으로 거론되는 것은 국회법 규정을 이용한 '살라미 본회의' 전술이다. 필리버스터 관련 내용을 규정한 국회법 106조2의 8~9항은 "회기가 끝나는 경우에는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바로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한 번 필리버스터가 실시된 안건은 재차 신청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①정기국회 기간 중에 한 차례 본회의를 열어 한국당이 통과를 막으려는 법률을 상정하고, ②한국당이 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하면 ③무제한토론 종결 표결을 시도하지 않고 회기가 종료될 때까지 놔둔 후, ④회기가 종료되면 즉각 다음 임시국회 회기를 잡고 ⑤해당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지체 없이 표결'을 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한국당이 필리버스터의 실질적 목표로 잡고 있는 패스트트랙 법안은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 검찰청법 개정안 등 4건이다. 국회법은 정기국회 기간은 100일로, 2·4·6·8월 임시회는 30일로 기간을 규정하고 있지만, 비정기적으로 소집되는 임시회는 별도 기간 규정이 없다. 때문에 정기국회 종료 후 임시회를 4회 연달아 소집한다면 역시 '이론적으로는' 한국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패스트트랙 법안 4건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위해서는 국회의장의 전면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시회 소집은 의원 1/4 이상의 요구에 의해(국회법 8조 2항) 성사될 수 있지만, 임시회 의사일정은 관례적으로 각 교섭단체 간 합의에 의해 정해왔다. 국회법에는"회기 전체 의사일정을 작성할 때에는 국회운영위원회와 협의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의장이 이를 결정한다"(법 76조 3항)라고 규정돼 있기는 하지만, 문 의장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문 의장은 한국당의 기습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국회가 파행된 지난달 29일에도 대변인을 통해 "3당 원내대표가 의사일정 등을 합의해 오라"고 하는 등 여야 합의를 중시하는 의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여 왔다. 때문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이른바 '변혁' 15명)의 강경한 반대가 예상되는 의사일정 지정 강행은 문 의장의 평소 소신에 반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문 의장으로서도 이른바 '직권상정'에 대한 부담은 없을 전망이다. 국회의장이 특정 안건에 대해 "심사기간을 지정"하고 "지정된 심사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하였을 때"에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는 이른바 직권상정은 "천재지변의 경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과 합의하는 경우"(국회법 85조 1~2항)로 엄격히 제한된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법안의 경우는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보는 날부터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돼야 한다"(법 85조2의 6항)라고 강제 규정이 마련돼 있다. 패스트트랙 법안들 가운데 선거법은 지난 11월 27일 이미 본회의에 부의됐고, 공수처법·형사소송법·검찰청법은 12월 3일 자동 부의된다.
종합하면, 12월 3일 이후에는 문 의장이 본회의를 열기만 하면 패스트트랙 법안을 바로 상정해 표결할 수 있는 셈이다. 만약 본회의에서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권한을 행사하면 회기 종료를 기다렸다가 다음 회기에서 표결하면 된다. '4+1'이 공동 주장할 단일안을 만드는 작업이나 이탈표 단속 등의 변수를 일단 제쳐 놓고 본다면 말이다. 다만 문 의장이 여야 합의 없이 의사일정 지정을 강행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한국당은 이런 가운데 문 의장에 대한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당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문희상 의장과 민주당의 본회의 봉쇄 규탄대회'를 열고 "본회의장 봉쇄 문 의장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독재 의회의 모습을 만든 국회의장은 사과를 넘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며 "사퇴하라"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이날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넘기게 된 상황과 관련해 입장문을 내고 "부끄러운 국회가 됐다. 국회 스스로 헌법을 어기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입법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으로서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 입장을 밝혔다.
문 의장은 특히 "부진즉퇴(不進則退), 나아가지 못하면 퇴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20대 국회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서 "국민과 역사 앞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두려워해야 할 시점"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문 의장의 입장은 직접적으로는 예산안과 관련된 것일 뿐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나 이후 임시회 일정 등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가 멈춰선 가운데 "부진즉퇴"라는 메시지를 낸 점은 주목된다.
다만 민주당이 이른바 '4+1' 연대로 한국당을 우회하기 위해서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적극적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당은 이를 의식한 듯 문 의장에 대한 사퇴 공세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민주당 "한국당 있는데 무슨 얘기를…협상·대화 없다"
민주당은 2일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오전 정치협상회의에 민주당 실무대표가 참석했다"면서도 "진행된 게 없지 않겠나. 한국당이 있는데 (선거법 협상안 관련) 그런 얘기를 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국당과의 협상은 없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도 강경론이 쏟아졌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신청을 공식 철회하지 않으면 다른 야당과 협력해서 국회를 정상화하겠다"며 "이런 사람들과는 협상·대화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이 연합해 국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정상화하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앞서 같은날 오전 의원총회를 연 한국당은 △최소 5건의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허용을 전제로 '원 포인트' 본회의를 개최하고 △선거법·공수처법 등 일명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 여야 양당 원내대표 간 공개 토론을 벌이자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의 전략 기조는 그대로다. 필리버스터 권한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며 "최소한의 필리버스터 권한을 보장해 주면 '원 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민식이법을 비롯한 법안 처리에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국당의 이같은 제안에 대해 이날 오후까지도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철회가 먼저'라며 "더 이상 한국당에 끌려다니지 않겠다"(이해찬 대표, 최고위에서)라고 선언한 셈이다. 한국당과의 협상을 당장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원내대표 간 회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 "바로 회동을 할 수 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당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일단 과도하게 199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한국당에 대해 민주당이 격앙돼 있는 상태"라며 "제가 민주당과 따로 접촉해서 '국회가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아선 안 된다. 이성을 찾고 방법을 찾자'고 했으나 아직까지 응답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오 원내대표는 "오전에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오늘 매주 회동을 하는 날 아니냐'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변이 없다"며 "나경원 원내대표와는 통과하고 문자를 주고받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오 원내대표는 "만약 민주당이 '4+1'을 통해 한국당과 반대 세력을 제치고 국회를 끝까지 힘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파국이 될 것"이라며 "저는 1주일 남은 시간 동안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고, '원 포인트' 본회의는 양당이 거부할 어떤 명분도 없다고 본다"고 민주당이 교섭단체 3당 간 협상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150석만 채워서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3법(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을 말아서(묶어서) 가려고 할 것"이라고 민주당의 수를 예상하면서 "저희는 합의하지 않으면 (4+1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 국회법에는 교섭단체 간 협의를 통해 국회를 운영하도록 돼 있다. 집권당이 그것을 포기하고 법 절차를 어기고 무책임하게 밀어붙이는 운영을 선택한다면 파국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오 원내대표는 한국당 나 원내대표와의 대화 내용에 대해 "데이터2법과 국회법은 한국당이 저에게 '처리하겠다'고 구두 약속을 했고, 민식이법도 처리하겠다고 했다"고 전하면서 민주·한국 양당에 "유치원 3법은 330일 숙려 기간이 지나고 자동 상정되게 돼 있기 때문에 한국당이 안건을 취하고 말고 할 권한이 있는 게 아니다. 그것들을 포함해 원 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3교섭단체' 아닌 '4+1' 합의로 돌파?…관건인 '임시국회 의사일정' 문희상 손에
오신환 원내대표가 경계심을 보인 '4+1' 연대란 △민주당(129석)과 △바른미래당 소수파(당권파)인 손학규 대표 측과 호남계 등 의원 11명 △대안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호남계 의원 10명 △정의당 소속 의원 6명 △민주평화당 5명 등 32명의 의석을 묶어 법안 통과에 필요한 과반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범여권의 구상이다.
다만 '4+1' 연대가 최대로 동원 가능한 161석에 민중당 김종훈 의원, 무소속 김경진·손혜원·이용호 의원 및 문희상 국회의장 등 잠재적 우호표를 다 합쳐도 최대 166석에 그친다. 재적 과반(295명 중 148명) 선은 넘길 수 있지만, 한국당이 쳐놓은 필리버스터 저지선을 뚫을 수는 없다. 국회법은 필리버스터 종결을 위해서는 재적의원 3/5 이상(295명 중 177명)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으로 거론되는 것은 국회법 규정을 이용한 '살라미 본회의' 전술이다. 필리버스터 관련 내용을 규정한 국회법 106조2의 8~9항은 "회기가 끝나는 경우에는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바로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한 번 필리버스터가 실시된 안건은 재차 신청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①정기국회 기간 중에 한 차례 본회의를 열어 한국당이 통과를 막으려는 법률을 상정하고, ②한국당이 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하면 ③무제한토론 종결 표결을 시도하지 않고 회기가 종료될 때까지 놔둔 후, ④회기가 종료되면 즉각 다음 임시국회 회기를 잡고 ⑤해당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지체 없이 표결'을 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한국당이 필리버스터의 실질적 목표로 잡고 있는 패스트트랙 법안은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 검찰청법 개정안 등 4건이다. 국회법은 정기국회 기간은 100일로, 2·4·6·8월 임시회는 30일로 기간을 규정하고 있지만, 비정기적으로 소집되는 임시회는 별도 기간 규정이 없다. 때문에 정기국회 종료 후 임시회를 4회 연달아 소집한다면 역시 '이론적으로는' 한국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패스트트랙 법안 4건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위해서는 국회의장의 전면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시회 소집은 의원 1/4 이상의 요구에 의해(국회법 8조 2항) 성사될 수 있지만, 임시회 의사일정은 관례적으로 각 교섭단체 간 합의에 의해 정해왔다. 국회법에는"회기 전체 의사일정을 작성할 때에는 국회운영위원회와 협의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의장이 이를 결정한다"(법 76조 3항)라고 규정돼 있기는 하지만, 문 의장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문 의장은 한국당의 기습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국회가 파행된 지난달 29일에도 대변인을 통해 "3당 원내대표가 의사일정 등을 합의해 오라"고 하는 등 여야 합의를 중시하는 의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여 왔다. 때문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이른바 '변혁' 15명)의 강경한 반대가 예상되는 의사일정 지정 강행은 문 의장의 평소 소신에 반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문 의장으로서도 이른바 '직권상정'에 대한 부담은 없을 전망이다. 국회의장이 특정 안건에 대해 "심사기간을 지정"하고 "지정된 심사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하였을 때"에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는 이른바 직권상정은 "천재지변의 경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과 합의하는 경우"(국회법 85조 1~2항)로 엄격히 제한된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법안의 경우는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보는 날부터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돼야 한다"(법 85조2의 6항)라고 강제 규정이 마련돼 있다. 패스트트랙 법안들 가운데 선거법은 지난 11월 27일 이미 본회의에 부의됐고, 공수처법·형사소송법·검찰청법은 12월 3일 자동 부의된다.
종합하면, 12월 3일 이후에는 문 의장이 본회의를 열기만 하면 패스트트랙 법안을 바로 상정해 표결할 수 있는 셈이다. 만약 본회의에서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권한을 행사하면 회기 종료를 기다렸다가 다음 회기에서 표결하면 된다. '4+1'이 공동 주장할 단일안을 만드는 작업이나 이탈표 단속 등의 변수를 일단 제쳐 놓고 본다면 말이다. 다만 문 의장이 여야 합의 없이 의사일정 지정을 강행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한국당은 이런 가운데 문 의장에 대한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당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문희상 의장과 민주당의 본회의 봉쇄 규탄대회'를 열고 "본회의장 봉쇄 문 의장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독재 의회의 모습을 만든 국회의장은 사과를 넘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며 "사퇴하라"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이날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넘기게 된 상황과 관련해 입장문을 내고 "부끄러운 국회가 됐다. 국회 스스로 헌법을 어기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입법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으로서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 입장을 밝혔다.
문 의장은 특히 "부진즉퇴(不進則退), 나아가지 못하면 퇴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20대 국회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서 "국민과 역사 앞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두려워해야 할 시점"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문 의장의 입장은 직접적으로는 예산안과 관련된 것일 뿐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나 이후 임시회 일정 등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가 멈춰선 가운데 "부진즉퇴"라는 메시지를 낸 점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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