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한국당, 야바위 정치 등장
[기고] 불합리한 분노와 공포를 앞세운 야바위 정치 이제 그만
2019.12.30 10:44:28
분노와 공포의 정치라는 말이 있다. 대중 조작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야바위 정치 방식의 일부다. 오늘날 국회, 길거리, 트위터나 유튜브에서 횡행하는 정치는 대중의 분노와 공포를 유발해서 지지자를 결집하고 반대 세력에게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 시도한다. 트럼프가 탄핵과 관련해 야당을 저주하고 저질 욕설을 퍼붓는 모습, 국내 수구 세력이 시도 때도 없이 들고 나오는 빨갱이 사냥, 이념갈등 유발이 그 사례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도 분노와 공포로 독일인을 광분케 만들어 자행됐다.
지난여름 이후 한국 현실을 보면 조국 사태, 검찰 개혁, 국회의원선거법 개정 등을 놓고 분노와 공포의 정치가 전개됐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대화와 협상, 타협의 정치는 실종된 상태다. 이 상황에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연말 국회에서는 단식, 삭발, 의사당 단상점거, 국회 농성이 일상화되었다. 20대 국회가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으로 시민사회가 이뤄낸 민주주의를 더욱 세련되게 완성할 발판과 정치 발전 청사진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제대로 못했다는 점은 대단히 아쉽고 분통터지는 일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평화통일 등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국내 경제 구조도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는 과정이어서 다당제를 기반으로 한 선진적인 대의정치 제도가 절실했지만 분노와 공포를 앞세운 악취 나는 저질 정치의 탁류에 휩쓸려 그 바람은 좌절되고 말았다. 민생법안 처리도 외면하는 막가파식 여의도 정치 행태가 반복되는 파행 속에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으로 망가진 이미지를 상당부분 회복한 듯하다. 내년 총선 승리를 호언장담할 정도가 되었다. 적폐청산 대상이었던 한국당이 기사회생한 빌미는 촛불의 개혁 요구에 적극 부응치 못한 정부 여당이 제공한 측면이 강했다. 여권은 개혁적 새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적폐정치에 발목이 잡힌 꼴이 됐다.
현 정권은 수많은 개혁 과제를 촛불혁명으로부터 위임받았지만 집권 절반을 넘길 때까지 무의지, 무기력, 무능력 속에 개혁의 골든타임을 흘려보냈다. 국회를 통한 입법 개혁은 거의 전무했다. 전교조 문제나 톨게이트 수금원 부당처우 원상회복 등 행정적 결단으로 해결될 일들도 대부분 방치했다. 최저임금, 비정규직 문제는 너무 서둘렀고 보완조치가 미흡해 논란이 증폭되었다. 북한여종업원 기획납북 등 국정원 개혁 조치는 아예 외면했다. 천안함 사고 의혹에 대해서는 구정권의 태도를 답습했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투표 결과를 보면 의원 299명의 표결 속에 찬성 23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였다. 당시 야당 소속 의원이 171명인 것을 감안할 때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상당수가 동참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집권한 민주당이 정권 출범 직후 연정 등을 통한 포용의 정치로 촛불이 제시한 개혁을 추진하고 인사기준을 격상시켰다면, 오늘날처럼 한국당이 분노와 공포의 정치로 올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특히 현 정부 청와대의 고위공직자 인사는 과거 정부보다 후퇴한 감을 주면서 중도 층의 격렬한 비판을 몰고 왔다. 조국 사태가 검찰개혁과 연계되면서 검찰권의 행사가 무소불위, 치외법권의 특권 지대에 있으며 청와대는 거기에 무력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 인식을 심화했다.
현 정권의 개혁 실종과 헛발질이 지속되는 동안 한국당은 공작 정치의 후예답게 분노와 공포의 정치를 확산하는 방식으로 그 공간을 적절히 활용했다. 조국 사태 이후 불거진 광화문 태극기 부대 시위를 이용해 한국당은 보수층의 공포와 분노를 증폭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현 정권의 내로남불 정치가 한국당을 도와준 결정적 불쏘시개가 되었고, 그 결과 집권세력 지지율 하락이 나타났다. 서초동, 광화문에 수십만 명의 견해를 달리하는 시민이 각각 모여 정상적인 대의정치가 실종된 현실을 드러냈다. 대통령은 당선되면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책무를 지게 되기 때문에 심각한 국론 분열에 대해 그 책임을 면키 어렵다.
오늘날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행태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국회의원 선거법이 대표적이다. 거대 여야 정당이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을 놓고 대치하다가, 청산되어야 할 거대 정당의 구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큰 제도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이름만 연동형 비례대표제이지 그 내용이 복잡하고 조잡해서 국민은 자신의 투표가 어떻게 현실 정치에 반영되는지 이해하기조차 힘들게 되어 버렸다. 거대 정당의 퇴행적 행태가 만들어낸 새 선거제도는 매우 기형적이고 불완전해서 내년 총선에 '비례한국당'과 같은 유사정당이 출현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정치적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이런 점을 몰랐다면 국회는 무능했던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몇 백 번 청산되어야 마땅하다.
거대 여야 정당은 소수 정당을 깔아뭉개고 다수당이 되려는 욕심에서 공동의 이해당사자다. 그 결과 당리당략에서 벗어나지 못한 형편없는, 무늬만 개혁이라는 선거법이 나왔다.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과 지향성이 국민의 공복 국회의원을 뽑는데 최대한 반영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여당은 공언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교과서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로는 다수 의석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집권이후 차일피일 그 논의를 미루는 등 법제화에 소극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절망적인 집단의 하나가 국회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국회의원 선거는 국회의원이 국민에게 최대한 봉사할 수 있는 제도로 만들어야 하지만 거대 정당은 양당제에 의한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보호해 주는 식의 메시지만을 주로 생산했고 언론은 그 중계방송을 하는데 바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정안 표결 처리시점은 총선이 수 개 월 앞으로 다가온 연말 국회까지 지연되면서 시한에 쫒기는 국면이 연출되고 결국 엉터리 결과물이 나오고 말았다. 오늘날 여의도처럼 대의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분노와 공포의 정치가 등장할 토양이 만들어진다.
한국당은 국회선진화법도 짓밟은 채 선거제도 개정에 대한 격렬한 반대와 투표 불참, 규탄 대회를 강행했다. 집권층에 엄격한 검찰은 한국당 의원들의 국회법 위반에는 본격적인 법집행을 하지 않으면서 야당의 위법에 눈을 감는 모습이다. 검찰이 한국당에 아직 면죄부를 주었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정상적이라 지탄받는 검찰의 일방독주 속에 '비례한국당', '비례민주당'이라는 해괴한 야바위 정치 개념도 등장했다.
특히 한국당은 국회의원 선거제 개정을 반대했기 때문에 '비례한국당'이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를 앞세우는 명분을 얻었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직 속단하기 곤란하다. 유권자를 바지저고리로 여기는 천박한 정치 철학이 바탕에 깔린 '비례한국당'이라는 극한적인 당리당략 술책은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비례한국당'이라는 퇴행적 구상을 큰 소리로 당연하다는 듯이 공언하고 있는 모습은 천박하고 야만적이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정치 공학적 꼼수가 아무리 난무한다 해도 유권자가 현명하다면 그것은 실패할 확률이 크다. 즉 내년 총선에서 거대 여야 정당이 쪼그라드는 것과 같은 긍정적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퇴진을 이끌어낸 촛불, 그리고 침묵하는 다수의 유권자를 고려할 때 추정할 수 있는 전망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4.19 혁명이후 중요한 고비마다 예상을 깨고 세계가 놀랄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저력이 있다.
정치는 그 의지와 철학 등에 의해 여러 형태로 현실화할 수 있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권력의지와 지배욕구를 가졌으므로 이를 적절히 가감치 않으면 비이성적 정치로 치닫게 된다. 물론 역사를 보면 시민사회의 정당한 분노, 합당한 공포가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의 근현대 정치사가 특히 그러하다. 우리 근현대사는 가장 암울한 상황에서 민초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창출했다는 특성이 있다. 기득권층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민초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가 나서서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내년 4월도 비슷한 기적이 나올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 볼 일이다. 새롭고 정의로운 정치문화를 만들 공복을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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